백만 년이 넘도록 맺힌 이슬-최승호 [한라일보] 이슬을 건너가는 여치 뒷다리에 이슬이 걸리더라 이슬을 건너가는 여치 뒷다리에 이슬이 걸리오 은하수를 건너가는 여치 뒷다리에도 이슬이 걸립니까 이슬을 건너가는 여치 뒷다리에 이슬이 걸리는군요 이슬을 건너가는 여치 뒷다리 삽화=배수연 무서운 시다. 아니, 시란 이렇게 무서울 수 있다. 이슬에 걸리는 여치란 바로 세상을 건너는 당신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문득, 마주친다. 풀밭에 녹색 여치 한 마리. 눈이 휘둥그레지며 날아야 할지 뛰어야 할지 모르는 당신은 뒷다리를 이용해 뛸 수 있지만 날개가 퇴화해 날아갈 때 민첩할 수 없다. 당신의 방어 행동은 이슬을 지나가는 거지만 뒷다리가 이슬에 걸려 있다. 말의 저편으로 넘어가려는 생각의 감옥에서 빠져나올 수 없는 당신은 실은 투명한 이슬 한 방울에 갇혀 있는 게 아닙니까. 시치미를 뗄 수 없어 누군가 당신을 부추길 수 있지만 은하수는 멀고 당신의 몸부림은 보는 사람의 눈에는 그게 그저 고요하다. 이슬을 건너가는 중이니까. 아무것도 아니면서 이슬을 건너가는 당신의 뒷다리에 이슬이 걸리오. 그런 마음에 걸리는, 이슬을 묻히고 걸어가는 한 글자 같은 여치. 한 글자의 반 같은 작은 여치. 이슬은 백만 년이나 되었고 당신의 무거운 짐은 이슬을 건너가는 것만으로도 다행인 짧은 인생의 한 컷을 선사한다. <시인> ■기사제보 ▷카카오톡 : '한라일보' 또는 '한라일보 뉴스'를 검색해 채널 추가 ▷전화 : 064-750-2200 ▷문자 : 010-3337-2531 ▷이메일 : hl@ihalla.com ▶한라일보 유튜브 구독 바로가기 <저작권자 © 한라일보 (http://www.ihalla.com) 무단전재 및 수집·재배포 금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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