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일보] 원래 이름은 '한흘'이다. 크다는 의미의 '한' 뒤에 펄, 연못 등의 의미를 가지 우리말 '흘'이 붙어서 마을 이름이 되었다는 해석이 주를 이루고 있다. 냇가라고는 한 곳도 없는 지역임에도 수없이 많은 연못과 봉천수가 있어서 생활은 물론 목장지대에서 자라는 마소들이 마실 물이 풍부했다는 것을 마을 이름에서 그대로 적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대흘은 일제강점기 한자표기로 바뀌면서 대흘(大屹)이 되었다. 동쪽에 와산리와 서쪽에 와흘, 남쪽에 교래, 북쪽에 대흘2리와 함덕리가 있다. 세미오름에서 내려다보면 웅장한 지세를 느끼게 된다. 대흘2리까지 아우르던 시기에는 것구리오름에서 완만한 내리막을 달리며 펼쳐지는 목장지대와 농경지, 그리고 정주공간들이 대촌의 면모를 보여줬을 터. 지금은 편리한 교통 여건을 기반으로 농촌마을에 이토록 많은 전원형 주택단지가 들어서 곳이 없을 정도로 중산간 마을 리 단위 마을 중에 상대적으로 인구가 많은 편이다. 자동차 시대의 긍정적인 영향은 마을 발전의 커다란 원동력이 되고 있는 것이다.

송승현 이장
마을 어르신들이 전하는 설촌의 역사는 족보와 비석이라는 기록을 통하여 확인되어지는 것이 3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한다. 1730년 경에 유제룡이라고 하는 헌신교사 훈련원검정 벼슬을 지냈던 무관에 의하여 설촌된 것으로 보고 있다. 당시 90세까지 장수하셨던 기골이 장대한 분이었다고 한다. 대대로 축산을 중심으로 밭농사를 해온 분들이지만 기질이 강인하고 결속력이 강한 마을이다. 4·3 이전까지 200호가 넘는 거대한 마을이었지만 소개령을 전후하여 70명 넘는 주민이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다른 중산간 마을의 운명처럼 바닷가 마을로 내려가서 살다가 올라와 재건하였지만 이전의 모습과 규모는 회복하지 못하였다. 주목 해야 할 사실은 그 많은 인구가 살아갈 수 있는 생활용수와 관련하여 소규모로 다양하게 펼쳐져 있었던 음용수들에 대한 자료가 없다는 것이다. 아주 작은 샘물이라 하더라도, 설령 봉천수 자원이라고 하더라도 조상들이 활용했던 실질적 자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삶이다. 우연의 일치 일지 모르나 '광역수자원관리본부'가 이 마을에 들어와 3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났다. 대흘1리의 지하수 자원에 대한 연구가 옛날 번성했던 대촌의 위상을 실질적으로 설명해준 근거가 될 수 있기에 조사를 권하게 되는 것이다. 지금은 중산간 도로와 번영로가 마을의 위아래를 동서로 관통하고 있어서 달라진 환경만큼이나 변화에 대응하는 마을공동체의 몸부림이 치열하다. 특히 번영로와 남조로가 교차하는 마을이라는 도로 여건은 많은 관광업체와 다양한 사업장들이 들어와 마을의 면모를 바꿔가고 있다. 세미오름을 중심으로 반경 3km 안에 관광지들이 10 여 곳이 들어서 있다. 이러한 장점을 살린 마을 발전 전략을 지속적으로 펼치고 있지만 행정적 지원이 턱없이 부족하여 분통을 터트리는 경우가 많다는 것. 지리적 강점을 살린 농업과 관광을 연결하는 사업에 행정이 먼저 나서줘야 함에도 기계적인 형평성에 안주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묻고 있는 것이다.
마을 곳곳을 돌아보는 과정에서 독특한 자원을 눈여겨보게 되었다. 것구리오름과 인접한 '원물'이라고 하는 샘물과 그 주변 700여 평 상당이 마을 소유 부지라고 했다. 그냥 보존의 형태로만 남아 있는 것이 아쉽다.
송승현 이장에게 대흘1리가 보유하고 있는 가장 큰 자긍심을 묻자 곰곰하게 생각하다가 "屹이라고 하는 한문에 모두 들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열되는 의미가 모두 마을공동체의 위상이며 주민들의 기질과 직결되어 있다는 설명. 치솟을 屹, 우뚝 솟을 屹, 산 높을 屹이라고 하는 의미 속에 녹아있는 자부심은 커다란 부담감으로 와 닿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름값을 해야 한다는 무언의 결의가 대대로 마을공동체정신을 관통하고 있다는 의미다. 屹이라고 하는 한문의 의미 앞에 큰 大자까지 붙었으니 이름에 걸맞은 위상을 확보하기 위하여, 현실적인 모습으로 입증하기 위하여 끊임없이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결기가 느껴진다. <시각예술가>
어떤 농부의 올레길<수채화 79cm×35cm>
제목을 파격적으로 달게 된 이유는 저 멀리 창고로 보이는 건물 속에 놓인 것들이 비료 종류라고 짐작 되어서다. 너무도 평범하고 소박한 마을길이 주는 잔잔한 감동은 나무 그림자가 설명하는 강렬한 오후의 햇살에서 비롯한다. 수묵담채화 같은 담백함을 얻기 위하여 먹을 대신하는 연필을 감각적으로 활용하였다. 밭담과 축대의 돌담이 밝은 위치와 어두운 위치에서 좌우에 배치되어 가운데 길을 협시하고 있는 듯하다. 어디에서나 쉽게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상황을 그리는 것이 가장 큰 묘미를 만나게 되는 것은 그 속에서 섬세한 특색을 표현해내야 가기 때문이다. 화면 속에서 광선의 위치는 복잡미묘하고 다양하다. 마치 심포니오케스트라의 풍부한 악기들처럼 각자의 위치에서 자기만의 음색으로 태양광선을 노래하고 연주한다. 나뭇잎 하나에서 돌담의 틈들에 이르기까지 디테일한 연필과 붓 동작이 수놓아진 농촌의 어느 일상 이야기다. 오른쪽에서 들어오는 햇살이 절묘한 지점에서 화면구성을 위하여 차단되고 증폭된 상황이다. 눈이 부시도록 강렬한 광선의 느낌은 사진에서는 얻을 수 없는 회화 영역의 강조용법이다. 강약을 운율에 맞게 조절하며 통일성을 저해하지 않고 획득하는 과장법. 연필의 매력은 이러한 광선의 가벼움에 추를 메달아 놓은 것처럼 무게감으로 작용하며 전반적인 조화를 견인하고 있다. 겨울이 지나고 봄. 드디어 빛의 향연이 나뭇잎들 속에서 광합성에너지를 발생시키기 시작하였다. 그 강렬함이 저 농부의 길을 힘차게 활보하고 있다.
아침, 찬연한 봄기운<수채화 79cm×35cm>
중산간 마을 특유의 봄기운이 있다. 그것도 아침 햇살이 밭과 나무 사이에 돌담까지 구도적 완결성을 가지고 하모니를 이룰 때 증폭되는 신비한 원근감. 대흘1리가 보유하고 있는 놀라운 강점이 있다면 완만한 경사 사이에 너른 평지들이 밭으로 작용하면서 발생시키는 태양광선의 향연이다. 안개라기보다는 따스한 봄기운이 아침햇살에 부서지는 아름다움을 공간적 풍요로 만끽하는 것이다. 동쪽 멀리 은은하고 희미하게 보이는 알바메기 오름과 빛으로 덮여있는 지붕들과 나무들을 배경으로 파란 기운을 뿜어내는 무대의 주인공 같은 짙파란 이미지의 나무. 파란색으로 청명함을 느끼게 하였다. 아침이 주는 신선함과 태양광선과의 조화를 위하여 인상주의적 요소를 투입한 것이다. 그린 곳의 위치가 주는 메시지를 위한 밭의 질감과 기지개를 켜는 봄 땅을 그리려 하였다. 결국 우주적 관점에서 태양과 지구의 흙 사이에 시각적으로 펼쳐진 모든 것들이 존재하고 있음을 그리는 과정에서 사유 할 수 있었다.
이 마을에 사람들이 전원적 매력을 느끼는 이유는 이러한 빛의 마력을 보유하였기에 그럴 것이다. 싱그럽고 신비한 햇살만큼 사람들에게 힐링을 선물하는 것이 어디 있으랴? 어떤 축복의 공간을 태양광선을 통하여 발견하게 되는 것은 아침이 주는 혜택이다. 살아 숨쉬는 자연을 다른 곳도 아니 밭에서 느낀다. 흙 한 줌도 우주와 대화한다는 마음으로 섬세하게 그려나간 대흘1리의 그림일기다. 수채화로 표현 할 수 있는 태양광선의 극한값을 바라보며.
■기사제보▷카카오톡 : '한라일보' 또는 '한라일보 뉴스'를 검색해 채널 추가
▷전화 : 064-750-2200 ▷문자 : 010-3337-2531 ▷이메일 : hl@ihalla.com
▶한라일보 유튜브 구독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