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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제주섬 글로벌 에코투어] (13) 벌라릿굴-수산2리포제단-남거봉-알벌라릿굴-통한못-수산한못-수산굴-사려물-유건에오름-1119번지방도 (9.7㎞)
겨울 문턱에서 제주 화산 3대 지형의 길을 만나다
고성현 기자 kss0817@ihalla.com
입력 : 2025. 12.26. 03:00:00

참가자들 한못습지를 걷고 있다. 사진 김정자

벌라릿굴부터 유건에오름까지
겨울 하늘 아래 가을처럼 걸은 하루
화산 지형 걸으며 올해 일정 마무리

[한라일보] 겨울 속 가을 같은 하루, 하늘은 선물처럼 맑고 화창했다. 12월 6일은 2025 제주섬 글로벌 에코투어 마지막 일정인 13차가 있는 날이었다. 버스 안은 이 특별한 순간을 함께 하려는 사람들로 가득 찼다.

안내자 강정금 해설사는 도입부에서 에코트레일이 왜 진행되는지에 대해 물었다. "제주도는 유네스코가 인정한 생물권보전지역·세계자연유산·세계지질공원 등 유네스코 3관왕을 공인받을 만큼 아름다움을 갖고 있다. 이러한 곳을 둘러보고 느끼며 소중함을 알기 위해 진행되는 프로그램이다. 진행에 많은 도움을 부탁드린다" 며 시작했다.

'벌라릿굴'에 이르러 굴 이름의 유래에 대한 설명은 매우 독창적인 방식으로 전달됐다. 굴 이름의 '깨지다'라는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 해설사는 실제 그릇이 깨지는 모습을 사진을 보이며 몸짓으로 표현해 참여자들의 흥미를 끌어올렸다. 동굴의 형성과정과 동굴 안의 생성물들을 듣고 참가자들은 벌라릿굴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며 다음 장소로 이동했다.

알벌라릿굴

걷는 길은 칡넝쿨이 엉킨 거친 길로 이어지다가 습지가 있거나 넓은 목초지가 펼쳐지기를 반복했다. 푸른 무밭 너머로 비치는 태양빛은 더욱 선명하고 멀리 보이는 한라산 꼭대기는 잔설로 하얀 털모자를 쓴 모습과 흡사했다. 두꺼운 야외 차림을 벗어내며 그 풍광이 주는 길 위에서 원초적 평온함을 느끼며 걸었다.

포제단에 이르러서는 더욱 이색적인 설명이 이어졌다. 안내요원 중 마을 주민인 오영삼 씨는 포제 예법에 대해 설명했다. "제물은 희생이라 하여 익히지 않은 생돼지를 통째로 올리고, 내장과 피는 따로 올린다"고 했다. 그는 직접 제관 역할을 맡아 의례 시연을 보이며 참가자들에게 참여를 독려했다. "집례관이 '국궁 배'라고 외치면 제관들이 절을 하고, 절이 끝날 때마다 집례관이 '으 흥' 하고 반복 세 번 절을 올린다"며 동작 시범을 보였다. 참가자들의 반응은 두 갈래로 나뉘었다. 의례에 따라 몸을 굽혀 함께 절을 올리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익숙지 않은 의식 절차에 어색한 표정을 짓고 조심스럽게 지켜보는 이들도 있었다. 다음 목적지를 향하며 방금 전 들은 포제의식이 화제가 됐다. 특히 통으로 올리는 돼지에 대한 의문은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 같았다.

참가자들이 벌라릿굴 앞에서 설명을 듣고 있다.

남거봉(낭끼오름)으로 향해 걸었다. 제주의 오름 들은 지명이 다양하다. 인근 주민들이 모양새나 쓰임새에 따라 붙인 이름이긴 하나 설명을 듣지 않고는 이해할 수가 없다. 벌라릿굴 아래에 있어 이름이 붙여진 알벌라릿굴을 지나 '수련'이 많아 습지가 빠르게 육지화(陸地化) 되어가는 '통한못'은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습지전경이 아름다운 '수산한못'에 이르렀다. 수산한못이 있는 수산평은 고려 원나라 시대에 '탐라통관부'가 설치됐었고 제주에서 처음으로 목축이 시작된 장소다. 이곳에는 가축이 물을 먹었던 넓은 물통과 그 옆에 사람이 사용했던 물통, 또 다른 한쪽 에는 가축의 해충을 방제하던 '부구리통'이 남아 있다. 옛날 이 광야를 누볐던 테우리(목동)들의 고단했을 삶이 겹쳐지며 스쳐 지나갔다. 습지 주변에는 귀한 대접을 받는 전주물꼬리풀이 길게 이삭을 늘어뜨리고 있고 송이고랭이와 택사 등 수생식물들은 계절에 밀려 퇴색됐다. 습지 끝자락에서는 쇠물닭이 여유롭게 먹이를 찾고, 가까운 물가에서는 연꽃을 정리하는 일꾼들의 모습이 이어지며 시선을 분주하게 만든다.

점심식사 후 참가자들이 에코투어 마지막회 기념으로 사진을 찍고 있다.

그때 멀지 않은 곳에서 들려오는 해설사의 오카리나 연주 소리가 고요한 풍경에 잔잔히 스며든다. '산골 소녀의 사랑 이야기' 음률은 습지에 일렁이는 물결처럼 퍼지며 모두의 시선을 멈춰 세웠다. 주어진 20분의 휴식이 그 어느 때보다 달콤하게 느껴졌다. 습지에 반사되는 태양, 억새와 어울려 사람들이 걸어가는 모습이 물에 비친다.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길을 통과해 수산굴에 도착했다. 쇠 철망에 가려진 수산굴을 마주 하니 내부를 보지 못한 아쉬움이 많아졌다. 안내자가 "동굴 암반이 얇아 안전망을 해놨다"고 설명했다. 굴의 길이가 520m로 제주도에서는 세 번째로 긴 동굴이다. 동굴의 규모와 내부 생성물들이 기이 했다. 안내자가 동굴 내부 사진을 펼쳐 보이자 "와~!"하고 함성이 터져 나왔다. 세계자연유산이 주는 가치가 오롯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사려물 습지로 향하며 긴 행렬을 모아 다시 오지 않을 이 순간을 사진기록으로 남겼다. 사려물 앞에 펼쳐진 빌레(암반)를 식탁 삼아 점심을 먹고 주변 경관을 돌아보니 마음과 몸이 치유되는 듯했다.

마지막 목적지 유건에오름을 향하며 안내자는 무엇인가 준비한 물건을 꺼내 머리에 썼다. 조선시대 유생들이 쓰던 모자 유건(儒巾)을 쓴 모습이 의아했다. 모두들 그 모습을 보며 웃는다. 유건을 닮은 오름이 바로 유건에오름이다.

연꽃열매(연밥)

산초열매

우묵사스레피(수꽃)

즐거운 여운으로 오름을 오르며 한 일행이 "설마 정상은 안 가겠지?"하는 소곤거림이 들렸다. 점심 식사 후 이어진 산행은 누구나 힘들다. 속으로는 쉬운 길로 '우회하겠지'하는 기대를 품었지만, 아뿔싸! 곧장 정상 행이다. 상수리나무 잎이 두껍게 깔린 길 쪽으로 방향을 틀며 그 기대는 바스락 거리는 나뭇잎 소리에 묻혀 사라졌다. 숨소리는 길게 뿜어져 나오고 짧게 오가던 대화는 끊어져 적막이 흐른다. 오름 사면에는 오가피나무, 자금우, 산초 등이 열매가 앙증맞은 모습으로 응원 나온 듯했다. 인내가 바닥을 드러낼 때쯤 정상에 도착하니 수많은 오름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안내자는 그 풍경을 가리키며 오름 군들을 나열하며 설명했다. 하산길 어귀에서 안내자가 참가자들을 한 곳에 모았다. 준비해 온 불씨 도구를 꺼내 들고 화승(火繩)의 의미로 "우리의 염원이 오래도록 남아 있길 기대한다"며 "우리 삶이여 건강 하라!" 등을 구호를 함께 외쳤다.

동굴·습지·오름 등 제주를 대표하는 화산의 3대 지형을 한 동선으로 모아, 안내자의 창의적인 리드로 알차고 즐거운 '2025 제주섬 글로벌 에코투어'를 마쳤다. 함께 걸었던 길 위에 서로의 발자국이 쌓여 올해의 기록이 마무리된 것이다.

<글 김정자(글 쓰는 자연관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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