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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산 코발트광산 학살터 유해 제주4·3희생자 첫 확인
4·3 행불인 7명 70년여 만에 신원 밝혀져
유가족 채혈 결정적 내달 3일 결과 보고회
이상민 기자 hasm@ihalla.com
입력 : 2026. 01.23. 11:21:52

4·3희생자 유해 발굴. 한라일보DB

[한라일보] 한국전쟁 당시 민간인들이 집단 학살된 경산 코발트광산의 유해에서 처음으로 4·3희생자 신원이 확인됐다.

경산 코발트 광산은 한국전쟁 초기인 1950년 7월 대구·부산형무소 수감자와 국민보도연맹원 등 민간인 3500여명이 집단 학살·암매장 된 곳이다. 그동안 대구형무소에 수감된 4·3 수형인 200여명이 한국전쟁 직후 행방불명 돼 이들 상당수가 경산 코발트광산에서 집단 학살 됐을 것이란 추측만 있어왔는데 이번 신원 확인으로 사실로 드러났다.

제주특별자치도와 제주4·3평화재단은 유전자 감식 등을 통해 행방불명된 4·3희생자 7명 신원을 새롭게 확인했다고 23일 밝혔다.

7명 중 2명은 제주공항에서 각각 발굴된 4·3희생자 유해이고, 5명은 대전 골령골과 경산 코발트 광산 등 도외에서 수습된 유해이다.

그동안 행방불명 상태로 남아 있다 이번에 신원이 확인돼 가족 품으로 돌아오는 4·3희생자는 제주읍 이호리 출신 김사림(당시 25세)씨, 제주읍 도련리 출신 양달효(당시 26세)씨, 제주읍 연동리 출신 강두남(당시 25세)씨, 애월면 소길리 출신 임태훈(당시 20세)씨, 서귀면 동홍리 출신 송두선(당시 29세)씨, 제주읍 오라리 출신 송태우(당시 17세), 한림면 상명리 출신 강인경(당시 46세)씨다.

김사림씨와 양달호씨, 강두남씨는 4·3당시 군경에 붙잡혀 대전형무소에 수감됐다가 행방불명됐으며 6·25전쟁 발발 직후 모두 대전 골령골에서 집단 학살 당한 것으로 조사됐다.

임태훈씨와 송두선씨는 경산 코발트 광산에서 집단 학살된 희생자다. 임씨는 1948년 12월 경찰에 연행돼 목포형무소에 수감됐다가 대구형무소에 이감된 뒤 행방불명됐으며 이후 그의 유해는 경산 코발트광산에서 발굴됐다. 송씨는 1949년 봄 경찰에 연행된 후 대구형무소로 수감됐다가 임씨와 마찬가지로 경산 코발트광산 집단 학살로 희생된 것으로 조사됐다.

경산 코발트 광산 집단 학살 피해자 중 4·3 희생자가 포함된 사실은 이번에 처음 확인된 것이다.

송태우씨와 강인경씨는 1948년과 1950년 토벌대와 경찰에 각각 연행된 후 행방불명됐으며 이들의 유해는 제주공항에서 발굴됐다.

이들의 신원은 유족들의 적극적인 채혈 덕분에 확인할 수 있었다. 김사림·임태훈씨는 조카의 채혈로, 강두남·강인경·양달효·송두선·송태우씨는 손자와 외손자의 채혈로 신원을 되찾아 70여년 만에 가족 품으로 돌아온다.

제주도와 평화재단은 오는 2월3일 이들에 대한 신원 확인 보고회 제주4·3평화공원 4·3평화교육센터 대강당에서 연다

지금까지 제주와 다른 지역에서 발굴된 4·3희생자 추정 유해는 426구다. 이 가운데 419구는 제주공항 등 도내에서, 7구는 도외에서 발굴됐다. 또 유해 중 154명의 신원은 밝혀졌지만 나머지 272구는 여전히 확인되지 않아 가족을 찾지 못하고 있다.

제주도는 나머지 희생자들의 신원을 확인하기 위해선 직계와 방계를 아우르는 8촌(조카, (외)손, 증손 등)까지 가족 단위 채혈이 필요하다며 보다 적극적인 채혈 참여를 당부했다. 오영훈 지사는 "7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유족들은 가족을 기다리고 있다"며 "단 한 사람의 희생자라도 찾기 위해 끝까지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상민기자 hasm@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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