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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觀] 시라트
죽음으로 하여금
고성현 기자 kss0817@ihalla.com
입력 : 2026. 02.02. 02:00:00

영화 '시라트'

[한라일보] 생의 다음이 죽음이라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내일은 대개 희망으로 가득한 단어지만 한편으로는 죽음과 더 가까워지는 하루의 시간을 뜻하기도 한다. 생의 끝에 죽음을 두는 것은 당연하게 느껴지지만 '죽음 앞의 생'이라는 말을 쓰는 것은 어쩐지 지나친 비관으로 느껴진다. 살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죽음은 당연히 홀로 맞기 마련이다. 삶이 수많은 관계들로 이루어진 복잡하고 미묘한 퍼즐과도 같은 것이라면 죽음은 명료하고 단호한 개인의 것이다. 아무리 가까운 그 누구도 하나의 죽음을 함께 나눌 수는 없다. 누군가는 죽고 누군가는 살아간다. 애도와 망각이 뒤섞인 채로, 수많은 삶과 죽음들이 뒤엉킨 채로 우리는 다음으로 내딛는다.

영화 <시라트>는 '천국과 지옥을 잇는 다리'를 뜻한다. 영화 초반 자막으로 '건너려는 자 명심하라 그 길은 머리카락보다 가늘고 칼날보다 날카롭다'는 이 다리의 위험천만함이 명시된다. <시라트>의 초반부는 아무것도 시야에 걸리지 않는 주홍빛의 사막 위에 거대한 스피커로 탑을 쌓고 레이브 파티에 흠뻑 취한 레이버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노랫말이 없는 비트 위로 몸을 던져 소리를 받아내듯 움직이는 이들은 거대한 덩어리처럼 꿈틀댄다. 무아지경만을 위해 모인 사람들처럼 대화도 쉼도 없이 사막 위에서 음악과 몸짓으로 혼연일체가 된 이들의 모습은 어쩐지 경이롭기까지 하다. 그 안에서 사라진 가족을 찾는 루이스와 에스테반 부자가 마치 이방인처럼 전혀 다른 방향성을 가진 채 움직이고 있다. 누구도 이들에게 딱히 관심을 보이지 않는 와중 그래도 부자의 절박함에 호의를 표하는 이들이 있다. 군대의 저지로 인해 광란의 파티가 중단되고 루이스 부자에게 호의를 보였던 그 레이버들의 무리가 막힌 길을 뚫고 이탈을 시도한다. 루이스와 에스테반 또한 그들을 따라 나선다. 이제 모래바람으로 자욱한 사막으로 없던 길을 내는 이들의 레이스가 이어진다. 영화는 그때 관객들 눈 앞에 <시라트>라는 작품의 제목을 내어 놓는다. 마치 지금부터 그 다리 위의 위태로운 곡예가 시작된다고 예고하듯이.

<시라트>는 관객의 가슴을 여러 번 쓸어 내리게 만드는 영화다. 그런데 이 안도가 어쩐지 불편함을 남긴다는 측면에서 이 영화가 남기는 충격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제3차 세계대전을 암시하는 설정, 사막 위에서 벌어지는 로드무비라는 장르적 특성을 갖고 있지만 <시라트>는 칸영화제 심사위원상을 수상한 아트하우스 계열의 영화로 소개되는 편이 더 적합한 영화임에는 틀림이 없어 보인다. 캐릭터들의 개성이나 갈등, 볼거리의 현혹으로 대중성을 택하지는 않지만 묘하게도 블럭버스터 영화들의 장치들을 싣고 달리는 <시라트>는 레이브 뮤직이라는 음악의 강렬함과 사막의 공간음 위에 지뢰의 폭발음을 더한 음향의 강력함을 바퀴처럼 쓰는 작품이기도 하다. 대사는 적은 편이지만 귀로 전달되는 소리들의 양이 상당한 영화다. 이 영회의 충격을 견인하는 것 또한 움직임을 예고하는 소리라는 측면에서 <시라트>는 일정 부분 공포 영화의 장르적 특성을 내포하고 있기도 하다.

<시라트>는 삶과 죽음 사이의 다리를 건너는 이들이 만들어내는 위태로운 의태어들에 관객 각자의 탄성과 비명, 한숨 같은 의성어로 답하는 영화이기도 하다. 채 언어가 되지 못한 것들이, 차마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 죽음을 설명한다. 갑작스레 닥쳐오는 타인의 죽음에 망연자실한 이들이 다음 장면을 숨죽이며 기다린다. 우리가 살아 있는 관객이기 때문이다. <시라트>는 질문과 의문의 모래바람 속에 관객들을 데려다 놓는다. 그들은 왜 죽는가, 인간의 죽음 앞에서 신은 응답하는가, 전쟁이라는 죽음의 복판에서 삶은 어떤 방향으로 움직여야 하는가, 희망과 절망은 혹은 행운과 불행은 그리고 삶과 죽음은 어떻게 다른가. <시라트>의 후반부 연이은 폭발 사고는 명백한 죽음으로 가시화 된다. 인간이 묻어 놓은 지뢰는 다른 방식으로 작동이 불가능한 살상무기이며 여기에 신의 선의지가 개입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 모두는 알고 있다. 죽음은 단순히 비극으로 끝나는 페이지의 마지막이 아님을 <시라트>는 미사여구 없이 기록하는 쪽으로 엔딩을 마무리한다. 이제 충격이라는 뭉뚱그려진 감각을 관객들 스스로가 해체해야 한다. 무엇이 그토록 얼얼했는지, 어떤 순간이 무서웠는지, 왜 소리 내어 반응하게 되었는지를 스스로에게 되물을 때 이 잔인할 정도로 건조한 충격의 영화가 남긴 것들, 그 가늘고 날카로운 감각의 실체를 더듬을 수 있을 것이다.

<진명현 독립영화 스튜디오 무브먼트 대표(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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