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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시라트' [한라일보] 생의 다음이 죽음이라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내일은 대개 희망으로 가득한 단어지만 한편으로는 죽음과 더 가까워지는 하루의 시간을 뜻하기도 한다. 생의 끝에 죽음을 두는 것은 당연하게 느껴지지만 '죽음 앞의 생'이라는 말을 쓰는 것은 어쩐지 지나친 비관으로 느껴진다. 살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죽음은 당연히 홀로 맞기 마련이다. 삶이 수많은 관계들로 이루어진 복잡하고 미묘한 퍼즐과도 같은 것이라면 죽음은 명료하고 단호한 개인의 것이다. 아무리 가까운 그 누구도 하나의 죽음을 함께 나눌 수는 없다. 누군가는 죽고 누군가는 살아간다. 애도와 망각이 뒤섞인 채로, 수많은 삶과 죽음들이 뒤엉킨 채로 우리는 다음으로 내딛는다. 영화 <시라트>는 '천국과 지옥을 잇는 다리'를 뜻한다. 영화 초반 자막으로 '건너려는 자 명심하라 그 길은 머리카락보다 가늘고 칼날보다 날카롭다'는 이 다리의 위험천만함이 명시된다. <시라트>의 초반부는 아무것도 시야에 걸리지 않는 주홍빛의 사막 위에 거대한 스피커로 탑을 쌓고 레이브 파티에 흠뻑 취한 레이버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노랫말이 없는 비트 위로 몸을 던져 소리를 받아내듯 움직이는 이들은 거대한 덩어리처럼 꿈틀댄다. 무아지경만을 위해 모인 사람들처럼 대화도 쉼도 없이 사막 위에서 음악과 몸짓으로 혼연일체가 된 이들의 모습은 어쩐지 경이롭기까지 하다. 그 안에서 사라진 가족을 찾는 루이스와 에스테반 부자가 마치 이방인처럼 전혀 다른 방향성을 가진 채 움직이고 있다. 누구도 이들에게 딱히 관심을 보이지 않는 와중 그래도 부자의 절박함에 호의를 표하는 이들이 있다. 군대의 저지로 인해 광란의 파티가 중단되고 루이스 부자에게 호의를 보였던 그 레이버들의 무리가 막힌 길을 뚫고 이탈을 시도한다. 루이스와 에스테반 또한 그들을 따라 나선다. 이제 모래바람으로 자욱한 사막으로 없던 길을 내는 이들의 레이스가 이어진다. 영화는 그때 관객들 눈 앞에 <시라트>라는 작품의 제목을 내어 놓는다. 마치 지금부터 그 다리 위의 위태로운 곡예가 시작된다고 예고하듯이. <시라트>는 관객의 가슴을 여러 번 쓸어 내리게 만드는 영화다. 그런데 이 안도가 어쩐지 불편함을 남긴다는 측면에서 이 영화가 남기는 충격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제3차 세계대전을 암시하는 설정, 사막 위에서 벌어지는 로드무비라는 장르적 특성을 갖고 있지만 <시라트>는 칸영화제 심사위원상을 수상한 아트하우스 계열의 영화로 소개되는 편이 더 적합한 영화임에는 틀림이 없어 보인다. 캐릭터들의 개성이나 갈등, 볼거리의 현혹으로 대중성을 택하지는 않지만 묘하게도 블럭버스터 영화들의 장치들을 싣고 달리는 <시라트>는 레이브 뮤직이라는 음악의 강렬함과 사막의 공간음 위에 지뢰의 폭발음을 더한 음향의 강력함을 바퀴처럼 쓰는 작품이기도 하다. 대사는 적은 편이지만 귀로 전달되는 소리들의 양이 상당한 영화다. 이 영회의 충격을 견인하는 것 또한 움직임을 예고하는 소리라는 측면에서 <시라트>는 일정 부분 공포 영화의 장르적 특성을 내포하고 있기도 하다. ![]() <진명현 독립영화 스튜디오 무브먼트 대표(전문가)> ■기사제보 ▷카카오톡 : '한라일보' 또는 '한라일보 뉴스'를 검색해 채널 추가 ▷전화 : 064-750-2200 ▷문자 : 010-3337-2531 ▷이메일 : hl@ihalla.com ▶한라일보 유튜브 구독 바로가기 <저작권자 © 한라일보 (http://www.ihalla.com) 무단전재 및 수집·재배포 금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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