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한라일보] 옛 이름 엄장리(嚴莊里)의 명칭만 앞뒤를 바꿔서 읽으면 장엄(莊嚴)이다. 마을의 역사와 환경, 정통적 기질 등을 종합해 바라보면 신엄리는 이름값을 그대로 하고 있는 마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조선 정조임금 시절 1780년에 간행된 '제주읍지'에 신엄장리, 구엄장리, 중엄장리로 이미 나뉘어 있었다. 세 마을의 인구를 합해보면 세 마을로 나뉘기 전 인구가 127가호에 710명으로 상대적으로 대촌이었음을 알 수 있다. 토질 좋은 풍부한 농경지와 바다 자원, 정이 가득한 마을 인심이 사람이 많이 모여 살 수 있는 배경이 됐을 것이다. 신엄리에 포함된 자연 마을들을 작은 단위로 살펴보면 지명 자체에서 향토적 정감이 우러난다. 윤남동, 안골, 베룻골(배렛골·벼룩골), 가운메기(과원목이), 동삭거리, 창남거리(너븐팡거리 포함), 시(세)커리, 큰동네, 답단이, 당거리, 섯동네 등으로 구분해 부르고 있다. ![]() 신엄리에 대한 이해를 돕는 표지석이 마을회관 마당에 비석 형태로 서있다. 명칭이 '신우면사무소 옛터'라고 써진 표지석의 핵심 내용은 1906년부터 1914년까지 신우면 사무소가 있던 자리였다는 내용. 조선말 엽과 대한제국시기에 신엄리의 위상이 주변 지역의 중심지로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역사적 사실을 밝혀준다. 이러한 역사적인 배경이 있어서일까. 리 단위 명칭을 가진 신엄중학교를 1970년대 초반에 설립해 전통적인 교육열을 유감없이 발휘해오고 있는 것이다. 중학교 정도는 우리 마을에서 보내야 한다는 생각이 마을공동체 내부에서 공론화되고 실행에 옮겨지기까지 과정을 살펴보면 주민 결속력에 대해 다른 이유를 들지 않아도 될 것이다. 하성엽 이장에게 신엄리가 보유한 가장 큰 자긍심을 묻자, 단박에 한 단어로 대답했다. "열정." 마을 일에 한 번 시동이 걸리면 그 저돌적인 추진력은 외부인들이 혀를 내두를 정도라고 한다. 조상들이 대촌을 형성해 상부상조하던 전통이 유전자처럼 몸과 마음에 그대로 계승됐다고 봐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마을공동체가 그 고귀한 열정을 바치는 대표적인 사업이 있다. 정주공간 인근 자연녹지 지역에 공원지구를 마련해 '기후 대응 숲 조성사업'을 차곡차곡 준비해 설계용역을 마치고 시설공사 전 단계까지 왔다는 것이다. 슬로건도 감칠맛 나게 '느랏놀멍 공원'을 표방하고 있다. 마을 주민들의 심신건강을 위하여 만들어지는 사업이다 보니 관심도가 엄청나게 높다. 도·농복합지역화를 현실적 사회환경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너무도 필요한 시설임은 분명하다. 행정적 마인드로 접근한다면 다른 지역의 공원들을 벤치마킹 한다는 사고방식으로 '모방과 답습'이라는 딜레마에 빠지진 않을까 하는 우려도 엄존한다. 누군가에게는 공원을 설계하고 시공하는 일이지만 결국 신엄지 주민들이 주인의식을 가지고 후손들에게 물려줄 명소여야 한다는 것이다. 주변 지역에 펼쳐진 숙박시설들은 관광객 인프라가 엄청나다는 것을 의미한다. 열린 공원을 표방하고 있지만 경쟁력 있는 관광자원으로 활용될 수 있는 콘텐츠 개발에 마을공동체 구성원들과 심도 있는 협의가 필요하다. 진정한 의미의 신엄리 랜드마크가 되기 위한 독창적 자원화가 절실한 것이다. <시각예술가> 밭과 바다 사이에 <수채화 79cm×35cm> ![]() 극명한 대비효과에 의해 발생하는 위치적 강점을 추출하는 과정에서 회화적 예술성보다 지역적 아름다움을 더 탐닉하게 된다. 어떤 놀라운 풍경보다 평범한 일상과도 같은 자산을 통해 새로운 시각적 사유를 선물 받게 되는 곳. 역발산기개세(力拔山氣蓋世) <수채화 79㎝×35㎝> ![]() ■기사제보 ▷카카오톡 : '한라일보' 또는 '한라일보 뉴스'를 검색해 채널 추가 ▷전화 : 064-750-2200 ▷문자 : 010-3337-2531 ▷이메일 : hl@ihalla.com ▶한라일보 유튜브 구독 바로가기 <저작권자 © 한라일보 (http://www.ihalla.com) 무단전재 및 수집·재배포 금지 > |
| 이 기사는 한라일보 인터넷 홈페이지(http://www.ihalla.com)에서
프린트 되었습니다. 문의 메일 : webmaster@ihalla.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