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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라일보] 이동은 언제나 능동적 선택처럼 보이지만, 정주는 그보다 더 복합적인 층위를 가진다. 우리는 흔히 이동을 자유의 표지로, 정주를 안착의 상태로 이해한다. 그러나 실제의 삶에서 이동은 생존의 전략이 되기도 하고, 정주는 오히려 끊임없는 재구성의 과정이 되기도 한다. 이 둘은 대립하는 개념이 아니라, 서로의 결을 드러내는 관계적 상태에 가깝다. 최근 기획자로 참여한 제주국제평화센터 박정근·양동규 2인전 '결에 머문 숨' 전시를 통해 의미를 확장해 보고자 한다. 두 작가는 머묾과 스밈에 관한 질문을 자연을 통해 제기한다. 양동규는 나무와 돌, 흙의 표면을 오래 응시하며 축적된 시간을 드러내고, 박정근은 바다와 바람, 빛의 흐름을 따라 생성의 순간을 포착한다. 멈춤과 흐름, 응축과 스밈은 서로 다른 태도처럼 보이지만, 결국 동일한 장소 안에서 교차한다. 정주는 고정이 아니라 오히려 반복과 축적을 통해 형성되는 시간의 밀도에 가깝다. 나무의 결이 한 해의 성장을 기록하듯, 한 장소에 머무는 삶은 수많은 계절을 통과하며 자신만의 층위를 만든다. 이때 정주는 움직이지 않음이 아니라, 지속을 견디는 방식이다. 표면 아래에 겹쳐진 시간은 눈에 띄지 않지만, 결이라는 구조로 남는다. 이동은 관계의 재구성이다. 바다는 늘 흐르지만, 그 위를 건너는 사람과 기억은 각기 다른 방향으로 이어진다. 박정근 작가의 작업에서 슬로우 셔터로 포착된 바다는 고정된 풍경이 아니라 흔들림의 잔상이다. 이미지는 멈춰 있지만, 너머에는 여전히 시간이 흐른다. 즉, 이동은 다른 자리와 새롭게 관계 맺는 과정이다. 특히 섬이라는 공간은 이동과 정주의 긴장을 더욱 또렷하게 드러낸다. 섬은 고립의 상징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수많은 바깥의 흐름이 스며드는 경계의 장소이기도 하다. 누군가는 외부에서 건너와 새로운 결을 남기고, 누군가는 오랜 시간 그 자리를 지키며 축적된 층위를 만들어간다. 이때 스며드는 움직임은 외부의 파동을 불러오고, 머무르는 존재는 그것을 흡수하며 새로운 결을 형성한다. 미학적 관점에서 정주는 '결'을 남기고 이동은 '숨'을 남긴다. 결은 축적된 시간의 구조이며, 숨은 그 위를 스치며 변화를 일으키는 미세한 운동이다. 결이 없다면 숨은 머물 수 없고, 숨이 없다면 결은 굳어버린다. 결국, 두 요소는 상호 의존적이다. 한 장소의 정체성 또한 고정된 본질이 아니라, 머묾과 스밈이 반복되며 만들어내는 관계의 장으로서 형성된다. 우리는 모두 어느 정도는 정주민이고, 동시에 이주민이다. 이동과 정주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존재의 리듬에 가깝다. 응축과 생성이 한 화면 안에서 공존하듯, 우리의 삶 또한 머무는 시간과 스며드는 시간이 겹쳐 이뤄진다. 장소는 그렇게 단일한 배경이 아니라, 복수의 시간과 경험이 얽혀 만들어지는 하나의 장이 된다. 우리는 머무르며 이동하고, 이동하며 머문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각자의 결과 숨을 남긴다. <권주희 스튜디오126 대표·독립기획자> ■기사제보 ▷카카오톡 : '한라일보' 또는 '한라일보 뉴스'를 검색해 채널 추가 ▷전화 : 064-750-2200 ▷문자 : 010-3337-2531 ▷이메일 : hl@ihalla.com ▶한라일보 유튜브 구독 바로가기 <저작권자 © 한라일보 (http://www.ihalla.com) 무단전재 및 수집·재배포 금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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