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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영의 건강&생활] 분갈이
고성현 기자 kss0817@ihalla.com
입력 : 2026. 03.04. 02:00:00
[한라일보] 화분의 낡은 흙을 새 흙으로 교체하고 더 큰 화분으로 옮겨 심어 식물의 성장을 돕는 분갈이. 필자는 식물을 키우는 일에 대해 잘 몰라서 화분에서 식물이 잘 크려면 때때로 분갈이가 필요하다는 것 정도만 안다.

제주에서 제주 외 지역으로 진학하려면 "물 건너" 유학을 가야 하는데, 필자도 그중 한 명이다. 제주에서 태어나 초·중·고를 마치고, 오랫동안 어느 곳인가의 외지인으로 살았다. 학교를 바꾸고, 전공을 바꾸고, 직장을 바꾸느라 이 도시와 저 도시, 이 나라와 저 나라를 오가며 거의 매해 옮겨 다니며 지내다 보니 어느 순간 이사 다니기가 너무 지겹고 언젠가는 한 곳에 정착하고 싶다는 소망이 강해졌다. 단지 머무르는 집뿐만 아니라 뭔가 인생에 안정을 찾고 싶다는 생각이었던 것 같다. 이제 드디어 정착했나 싶었는데 또 이사를 해야 하기도 했다. 그렇게 살다가 지금 사는 곳에 온 지는 삼 년, 곧 여기는 내가 제주를 떠난 이후 가장 오래 머무른 곳이 된다. 왠지 안심되고, 조금은 자랑스럽기도 한 나의 작은 기록이다.

어릴 때부터 오래 앓은 우울증으로 나를 보러 오던 한 환자가 있다. 증상이 좋아지기도, 나빠지기도 하며 한동안 동고동락하던 이 환자가 어느 날은 다른 주로 이사를 가기로 했다고 했다. 미국은 땅이 넓어 다른 주가 물리적으로 멀뿐더러, 심지어 의사 면허가 주마다 다르게 발급되기 때문에, 내가 그 주의 의사 면허를 따로 취득하지 않는 한, 다른 주에 있는 환자는 진료할 수 없다. 어떤 이유로 그리 먼 이사를 결심하게 되었느냐고 물으니 돌아온 환자의 대답이 재미있었다. 식물이 분갈이가 필요한 것처럼, 사람도 자기가 담긴 그릇을 바꿀 필요가 있는데, 그게 지금인 것 같다고 했다. 한두 달 후의 재진에서 집이 쉽게 팔렸고 새로운 주에서 적당한 집도 찾았다며 나에게 작별을 고하고 그 환자는 그렇게 훌쩍 떠났다. 일이 그렇게 빨리 진행될 줄은 몰랐는데 말이다. 아주 멀리, 내가 가본 적 없는 곳으로 향하는 이사가 이렇게 '분갈이'처럼 긍정적이고 희망적이게, 그리고 홀가분하게 이뤄질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에 한동안 그 말을 여러 번 곱씹었다.

분갈이가 우울증에 효과가 있을까? 답은 '예'와 '아니오', 둘 다다. 우울증은 외부적인 요인과 내부적인 요인이 있기 때문에, 외부 환경을 바꾼다고 해서 내면에 있는 우울증의 원인이 사라지진 않는다. 약이나 상담을 대체할 수도 없다. 대신 이사를 가지는 않더라도 생활공간을 청소한다든지, 가구 배치를 바꾼다든지, 산책을 하며 아침 햇볕을 쬐는 등 내가 담긴 화분을 좀 더 좋게 가꾸는 건 뇌에 긍정적인 신호를 준다.

그 환자는 새로운 곳에서 더 뿌리를 깊게 내렸는지 더 많은 가지를 뻗었는지 모르겠다. 여전히 나의 계획은 이곳에 오래 - 어느만큼의 시간이 될지는 모르지만 3년보다는 좀 더 오래 - 정착해 사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 있는 동안 내 화분을 잘 가꾸고, 다시 분갈이를 해야 할 시기가 왔을 때 그걸 놓치지는 않으려고 한다. <이소영 하버드대 매스제너럴브리검 정신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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