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한라일보] 2021년 3월 16일 제주지방법원 201호 법정. 시인은 "하늘의 사람들이 출석하고 가물거리는 핏줄들이 그들과 만난" 그 법정에 있었다. 재판장은 순서대로 피고인들을 호명했고 아침에서 저녁까지 행방불명된 희생자 333명과 생존 수형인 2명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그날 시가 그에게 왔다. 제주4·3연구소장을 지낸 허영선 시인이 제78주년 4·3희생자 추념일을 앞두고 두 권의 시집을 나란히 내놨다. 마음의숲에서 펴낸 '법 아닌 법 앞에서', '우린 천둥의 밤을 지나온 자들이어서'로 '4·3 법정 일기', '4·3 레퀴엠'이란 부제를 각각 달았다. "우리 말 들어 봅서, 우리 말 들어 봅서." 살아낸 사람들은 시인에게 그런 소리를 하는 듯했다. 시집 '해녀들', 산문집 '당신은 설워할 봄이라도 있었겠지만', 역사서 '제주4·3을 묻는 너에게' 등 독자들의 공감대 속에 제주 4월의 의미를 나눠온 시인은 그렇게 "참혹한 땅에서 씨앗처럼 살아 남아 다시 싹을 틔우고, 다시 틔우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한데 묶게 됐다. '법 아닌 법 앞에서'에는 "부당하게 죽은 봄이 다시 살아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이들이 있다. "아침에 본 사람 저녁에 안 보이던,/ 사람씨 풀씨마저 안 보이던 시절/ 죄 없이 죄가 된, 법 아닌 법 앞의 사람들"('법 앞에서' 중에서)은 이번 생에서 더 이상 꽃이 피지 않을 줄 알았다. 그런데 4·3 재심이 이어지는 동안 한 톨 싹이 얼굴을 내밀었다. 이제 법 앞에서 산 자와 죽은 자들의 대화가 오간다. "거기 꽃 피었습니까// 여기 꽃 피젠 헴수다". '우린 천둥의 밤을 지나온 자들이어서'에는 그 시절 사납게 몰아치는 파도를 헤쳐온 여자들과 아이들이 있다. "어디가 풀밭인지/ 어디가 사람의 길인지 몰라/ 눈은 그저 쌓이고 쌓여/ 생이지름 없어서 왁왁한/ 동굴 입을 막았어/ 사람 입도 막혀버렸지/ 기어이 홀로 기어 나온 그 겨울"('밋밋, 살다 보니 눈이 녹아서' 중에서)이란 구절처럼 4·3의 복판에 태어나고 도망치던 아이들은 철을 잃었다. 4·3의 불 속에서 여자들은 남편이 없다는 이유로 폭도 각시가 되었다. 살아도 산 것 아닌 삶이었다. 4·3이란 말만 들어도 "가슴이 탕탕탕 친다"는 깊은 트라우마는 70여 년 전의 시간이 과거가 아닌 현재임을 보여준다. 이 시집의 '에필로그'에서 시인은 이렇게 적는다. "스스로 길고도 끈질긴 기억 전쟁을 벌이는 당신들의 기억을 어떻게 다 만날 수 있다는 건지. 그러나 어디서든 죽은 자들의 자리는 있을 것이고, 그 영혼들은 죽지 않는 꿈의 자리에서 있을 거라는 희망 한 조각. 시가 당신들에게 보내는 위안이라 한다면 어떤지." ■한라일보 기사제보 ▷카카오톡 : '한라일보' 또는 '한라일보 뉴스'를 검색해 채널 추가 ▷전화 : 064-750-2200 ▷문자 : 010-3337-2531 ▷이메일 : hl@ihalla.com ▶한라일보 유튜브 구독 바로가기 <저작권자 © 한라일보 (http://www.ihalla.com) 무단전재 및 수집·재배포 금지 > |
| 이 기사는 한라일보 인터넷 홈페이지(http://www.ihalla.com)에서
프린트 되었습니다. 문의 메일 : webmaster@ihalla.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