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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라일보] 1992년 미국 볼티모어의 메릴랜드 역사학회 박물관에서는 그전까지 시도된 적 없는 전시가 열렸다. 5만 5000명 이상의 관람객이 찾았고, 지금까지도 계속 언급되는 이 전시를 만든 작가는 프레드 윌슨이다. 작가는 전시를 위해 작품을 만드는 대신 박물관의 유물이 쌓여있는 수장고를 뒤졌다. 그래서 전시 제목도 '박물관 채굴하기(Mining the Museum)'다. 작가가 발굴해 낸, 한 번도 전시된 적 없던 유물은 기존에 전시되어 있던 유물 옆에 나란히 놓였다. 그러자 감춰져 있던 미국 역사의 한 부분이 드러났다. 바로 인종차별의 역사다. 작가는 흑인 노예를 묶어놓았던 족쇄, 그들을 처벌하기 위해 사용했던 형틀과 같은 유물을 찾아냈기 때문이다. 은으로 만들어진 화려하고 섬세한 주전자와 컵으로 둘러싸인 족쇄 그리고 고급스러운 의자 앞에 놓인 형틀은 그러한 배치만으로도 강력한 의미를 발생시켰다. 30여 년 전 윌슨이 박물관 전시품에 개입함으로써 던진 질문 '누가 전시품을 결정하고 설명하는가?', '무엇이 배제되고 은폐되었는가?'는 70주년 이후 4·3이 대한민국의 역사로 여겨지고, 4·3 기록물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오늘날의 제주도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4·3의 전국화와 세계화를 성취했다는 기쁨 뒤에 가려진 기억과 기록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미 건립된 4·3 평화기념관도, 건립을 염원하고 있는 4·3 기록관도 이러한 질문 아래 다시 살펴봐야 한다. 의도했던, 의도하지 않았던 무엇을 배제하고 있고, 배제하려고 하는지를 말이다. 과연 정명을 위한 기억과 기록이 담겨 있는지 말이다. 어쩌면 국공립 기념관은 이러한 질문에 답하려 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답을 찾을 수 없다는 말이 더 정확할 수도 있다. 선택과 배제는 기념관이 지닌 일종의 숙명처럼 보인다. 기념관이라는 제도 안에 무엇이 선택됐다는 말은 무엇인가 배제된다는 말과 별반 다르지 않다. 즉 제도화된 기억과 기록 너머에 배제된 기억과 기록이 있다. 그래서 예술가의 눈이 필요하다. 예술가는 항상 가려진 너머의 것을 꿰뚫어 봐왔다. 이런 의미에서 4·3 예술의 기억 투쟁은 영원히 끝날 수 없어 보인다. 심지어 더 어려워질 수도 있다. 숨기는 것이 없어 보이기에 제도가 감춰버린 기억과 기록은 더 찾기 어렵다. 올해 서른세 번째 4·3예술제와 4·3미술제가 열렸다. 두 축제가 지속됨으로써 윌슨이 은 공예품과 족쇄를 함께 놓았듯, 기념관이 선택한 4·3의 기억과 기록 옆에 예술가가 발굴한 배제된 기억과 기록이 앞으로도 계속 놓일 수 있기를 바란다. 또한, 4·3을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보는 예술가가 더욱 많아졌으면 좋겠다. 이와 같이 제도를 꿰뚫는 예술 작업이 이어질 때 4·3은 진실에 한 발 더 다가갈 수 있다. <김연주 문화공간 양 기획자> ■기사제보 ▷카카오톡 : '한라일보' 또는 '한라일보 뉴스'를 검색해 채널 추가 ▷전화 : 064-750-2200 ▷문자 : 010-3337-2531 ▷이메일 : hl@ihalla.com ▶한라일보 유튜브 구독 바로가기 <저작권자 © 한라일보 (http://www.ihalla.com) 무단전재 및 수집·재배포 금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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