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팟캐스트
[양기훈의 제주마을 백리백경.. 가름 따라, 풍광 따라] (111)한림읍 동명리
좋은 물 풍부하여 유구한 역사 품은 마을
양기훈 hl@ihalla.com 기자
입력 : 2026. 04.17. 03:00:00
[한라일보] 선사시대부터 사람이 살기에 적합한 필수 요소를 모두 갖고 있는 마을이다. 청동기시대 유물이 출토되는 것으로 보아 탐라국시대부터 정주공간이 있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태종실록(1416년)에 명월현(明月縣)으로 기록돼 있다. 이 의미는 고려 때, 원 지배 탐라총관부 99년간 호장세력이 자치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14개 현을 뒀는데 조선이 건국됐지만 패권지역의 명칭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음을 파악할 수 있는 근거다. 동명리는 역사적인 그 명월리의 동쪽 지역이다. 지금의 상명리가 명월리의 윗마을인 것처럼. 제주삼읍전도라고 하는 곳에 명월진이 있고 동명리(東明里)라고 마을 명칭이 선명한 것은 그 당시부터 지역구분이 돼있었다는 뜻. 명월진성이 그림으로 상세하게 표현된 탐라순력도를 보면 지금 복원된 남문 북동쪽 지역이 지금의 동명리 지경과 대부분 겹친다. 성곽 안에서 인근 지역의 중심지라는 자부심 속에서 살았던 것을 알 수 있다. 그러한 역사적 중심지 역할을 배경으로 자연스럽게 식자층이 두껍게 형성되고 인재 양성에 자존심 경쟁을 할 수 있었으리니 출중한 인물들이 많이 배출된 것. 동명리를 이루고 있는 네 개의 자연마을이 있다. 진근동·남문동·한천동·문수동이다. 이곳들도 별도의 설촌 유래가 있을 정도로 오랜 역사성을 가졌다.

고성봉 이장

동명리는 '좋은 물'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이 강하기로 유명하다. 조상 대대로 내려온 전통이라고 이구동성으로 이야기한다. 마을 어느 곳을 파도 물이 솟아나는 풍부한 지하수를 보유하고 있기에, 지성을 쌓은 것은 이 귀중한 물들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으리라고 우스갯소리를 하는 어르신들도 있다. 용천수의 명칭 속에 녹아 있는 제주어의 깊이가 느껴진다. 대표적인 곳만 하여도 16개소다. 두융물, 문두물, 작지물, 오좌물, 강생이물, 조물, 쌍계수물, 마구물, 문수물, 생이물, 논두물, 가무니물, 여묵이물, 한세미물. 얼마나 많은 사연들이 이 용천수에서 오고 갔을까? 생명수로 작용했을 이 물들을 기반으로 번창해 나간 마을의 젖줄이다. 다른 지역 물들이 가뭄에 말라버려도 결코 마르지 않는 물들이 있었기에 물맛과 그 지속성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던 것이다. 그러한 수자원이 현재에 이르러 '한림정수장'이라고 하는 상수원을 제공하는 형태로 동명리에 있는 것이다.

마을공동체문화 측면에서 연구 대상이라고 할 수 있는 독특한 전통이 있다. 단 한 번도 이장을 주민투표 경선에 의해 선출해 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동명리 불문율이 지속적으로 유지돼 온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한편으로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이장을 추대에 의해 그 직을 승계한다. 마을 운영위원을 4년 하면서 마을의 각종 현안에 대해 자신의 일처럼 헌신하는 과정에서 이장직을 수행할 수 있는 역량이 운영위원 누구에게나 자리 잡을 수 있게 된다. 그 운영위원들이 이장을 추대하면 마을 주민 모두가 승인하게 된다는 사실. 동명리 태생이 아니라 이주해 온 주민도 운영위원이 될 수 있다. 이장 선출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후유증을 미연에 방지하는 것이 마을공동체 발전에 더 도움이 된다는 판단을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마을공동체 구성원들이 구축한 양반고을다운 권위라고 할 수 있다.

고성봉 이장에게 동명리가 보유한 가장 큰 자긍심을 묻자 간명하게 제주어로 대답했다. "게건 경 해여불어게!" 선조들이 써온 흐뭇한 정신문화 '놈이 대동'이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자신의 주장도 분명 있지만 이웃의 주장에 동조해 주는 것을 미덕으로 삼고 살아온 마을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한 표현이리라. 이러한 정신적 풍토 속에서 살아온 주민들이기에 이장 선출에 있어서 경선이 아닌 마을지도부라고 할 수 있는 운영위원회의 추대를 주민들이 반발 없이 승인해 주는 문화. 민주적 가치관의 입장에서 획일적으로 바라볼 것이 아니라 평생을 이웃해 서로 도우며 살아가야 할 마을공동체의 가치 중심에 무엇이 있어야 하는지 알고 있는 집단지혜다. <시각예술가>





명월성문화제를 한다기에
<수채화 79㎝×35㎝>




포스터처럼 풍경화를 그렸다. 반대로 생각하면 풍경화를 그리는 과정에서 명월진성 자체가 하나의 응축된 심벌로 느껴지도록 형상화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이다. 어느 위치와 각도에서 실루엣으로 단순화시키는 것이 현무암으로 쌓은 성의 느낌을 그대로 나타낼 수 있을 것인가 수십번을 맴돌았다. 그러다가 찾은 해법이 이 모습이다. 북제주군 시절에 복원한 명월진성 남문과 서쪽으로 뻗은 성담을 현무암의 회색을 통해 일체감을 발휘하도록 하는 것. 전체적인 연출은 요즘 용어로 아날로그적 감성이다. AI시대의 현란한 포스터가 아니라 고전적 느낌을 주는 4색 이내의 단순화. 노랑, 보라, 쑥색이 회색과 만나면 어울리니 이를 조합해 풍경 이미지에 담았다. 가장 중요한 묘사는 성의 배경이다. 전통문양의 이미지들을 보라색 선으로 흘러가게 했다. 풀잎문양과 나뭇가지문양, 구름문양, 물이 흐르는 느낌을 주는 문양까지 절묘하게 결합해 명월성축제가 지닌 전통계승 마인드를 마치 코러스 합창단처럼 배경에 깔아준 것이다.

명월리와 동명리가 공동으로 손잡고 올해 10월 하순에 처음으로 여는 명월성축제가 성공적으로 개최되고 알토란 같은 지역축제로 자리 잡을 수 있게 되기를 염원하는 마음으로 그렸다. 역사적 뿌리가 같은 두 마을이 힘을 합해 이룩해 낼 또 하나의 시대적 문화 콘텐츠. 사람 사는 세상에 문화의 소중한 가치를 과거에서 미래로 오롯이 연결하고자 하는 노력에 응원을 보내는 풍경포스터다.





징검다리에 내려온 하늘
<수채화 79㎝×35㎝>




옅은 구름이 낀 봄날 오후, 물 좋기로 유명한 동명리 하천생태공원을 걷다가 만난 장면이다. 풍부한 수량을 자랑하는 모습이 정겹기도 하거니와 거울이 돼 하늘을 내려받은 신비로움이 맑은 햇살에 눈부셔서 그렸다. 하늘이 물에 내려오니 징검다리는 하늘을 날아가고 있다. 저 징검다리를 건너면 옹포리다. 그린 곳은 동명리지만 저 물은 옹포리와의 경계이자 공유지다. 현무암을 툭툭 던져 놓은 것처럼 자연스럽게 발 보폭에 맞도록 배려한 느낌도 보이는 너무도 정겨운 원초적인 다리다. 이쪽은 연두색, 물 건넌 곳은 짙은 초록색의 대비효과가 음악적 화음을 만들어 낸다.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아니하더라도 두 개의 명도 관계를 보면 태양의 위치가 어디 있는지 시각적 경험으로 파악할 수 있다.

이 장면을 그리게 된 것은 동명리 고유지명 중에 '건남닥리'라는 곳을 알게 되면서 그 뜻에 흥미를 느꼈기에. 건너는 다리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지명이 주는 정겨운 토속성은 이 지역의 자연적 풍토성과 무관하지 않다. 수량이 풍부한 하천이 있어서 당연하게 최소한의 징검다리 정도는 있어야 했던 조상들의 생활반경을 생각하면 이 그림에 등장하는 저 정도로 공업적 직각이 있는 돌은 아니로되 디디고 건널 수 있는 평평한 돌을 다듬어서 남녀노소 누구나 건널 수 있는 징검다리를 놓았을 것이라는 흐뭇한 상상이 흐른다. 동명리와 옹포리가 공동으로 허락한다면 정을 들고 저 징검다리 모서리를 자연석에 가깝게 곡선으로 만들고 싶다.



■기사제보
▷카카오톡 : '한라일보' 또는 '한라일보 뉴스'를 검색해 채널 추가
▷전화 : 064-750-2200 ▷문자 : 010-3337-2531 ▷이메일 : hl@ihalla.com
▶한라일보 유튜브 구독 바로가기
이 기사는 한라일보 인터넷 홈페이지(http://www.ihalla.com)에서 프린트 되었습니다.

문의 메일 : webmaster@ihall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