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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내 이름은'. [한라일보] 누군가의 얼굴은 스스로 공들여 가꾼 매끄러운 정원일 수도 있을 것이다. 세월의 풍파를 가까스로 잠재운, 한때가 갖는 아름다움을 박제한. 그런데 어떤 이들은 자신의 얼굴 위로 야생이 출몰하는 것을 괘념치 않는다. '마음대로 쓰시오' 라고 허락한 것처럼 무성하게 돋아나는 것들을, 솟구쳐 올라 펄떡이는 것들을 그대로 둔다. 그렇게 자신의 얼굴을 너른 품으로 내어주는 이가 배우라는 직업을 만나 관객들을 비밀의 숲 안으로 초대한다. 어떤 얼굴은 그렇게 여러 층의 시간들이 겹쳐져 만들어진 형상을 온전히 가지고 있다. 표정이 만들어 내는 주름의 틈에서는 시간이 숨긴 것들이 드러나 얼굴이라는 표면 위에 돋아난다 잊히지 않을 사연들과 잊어서는 안될 진실들을 힘주어 안고서 안내자인 동시에 기록자로 그리고 대상과 하나가 된 유일한 목격자로. 2026년 상반기 배우 염혜란은 두 편의 개봉작에서 연이어 춤을 춘다. 조현진 감독의 <매드 댄스 오피스>와 정지영 감독의 <내 이름은>은 각기 다른 장르의 작품이지만 춤을 추는 배우 염혜란의 모습을 온전히 각인 시키는 작품이기도 하다. 두 작품 속 그의 춤은 누군가를 나아가게 하고 무언가를 움직이게 만드는 춤이다. <매드 댄스 오피스>의 구청 공무원 국희는 내내 억눌렸던 자신의 속내를 플라멩코의 박동으로 풀어내는 이다. 일 분 일 초도 허투루 쓰지 않을 만큼 성실하게 살아 왔다고 자부하지만 가정도, 일도 그녀의 마음처럼 되지 않는다. 엉키고 꼬인 삶 앞에서 정박의 순리로 내달렸던 그녀가 춤이라는 엇박의 느낌표를 마주한다. 주저함도 잠시 이내 'Vamos!' 라고 외치며 힘차게 발을 구른다. 심장의 박동이 발 끝으로 느껴지는 쾌감을 국희가 느낄 때 스크린을 마주하는 관객들의 심장도 박동한다. <매드 댄스 오피스>의 염혜란은 이 길 밖에 없을 것 같아서 주저하던 이들에게 다른 길로 나설 자유를 허락하는 시연자다. 작품 속에서 그는 경직된 국희의 얼굴을 차근차근 무너뜨리는 방식으로 새로운 각을 꺼낸다. 일상에 균열을 내고 들어오는 빛을 받아 들인 광합성의 표정을 얼굴에 새긴다. 탐스럽게 돋아난 국희의 새싹이 그 얼굴 위로 푸릇하다. <내 이름은>속 염혜란의 춤은 침묵을 흔들어 깨우는 제의에 가깝다. 제주 4.3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는 1949년과 1998년을 오가며 잃어버린 이름을 찾아가는 모자의 여정을 담고 있다. <내 이름은>은 제주 4.3 사건을 정면으로 다룬 극영화답게 영화는 에둘러 피해가지 않는 방식으로 관객들을 역사의 현장으로 데려간다. 이 중심에 배우 염혜란이 있다. 어머니인 동시에 딸이고 할머니인 동시에 영옥이었고 또 정순인 한 사람, 영화<내 이름은>속 염혜란은 그가 지금까지 쌓아온 필모그래피의 모든 조각들을 이어 붙인 듯한 너른 스펙트럼으로 정순을 연기한다. 특유의 정감 어린 생활 연기와 비감을 몸의 언어로 구체화하는 놀라운 표현력, 앙상블 안에서 더욱 또렷해지는 그만의 존재감이 생생하다. 국가 폭력에 의해 희생된 이들이 잃어버린 것들이 제주의 봄에 묻혀 있다. 그리고 그 제주를 살아가는 이들의 봄에는 어김없이 찾아오는 묵지근한 통증이 있다. 염혜란은 기꺼이 춤으로, 표정으로, 온몸과 마음의 힘으로 비극이 남긴 침묵을 깨우는 이를 연기한다. 기술이나 예술로 접근하기 어려운, 밀착의 진심만이 가능한 종류의 연기다. ![]() ■한라일보 기사제보 ▷카카오톡 : '한라일보' 또는 '한라일보 뉴스'를 검색해 채널 추가 ▷전화 : 064-750-2200 ▷문자 : 010-3337-2531 ▷이메일 : hl@ihalla.com ▶한라일보 유튜브 구독 바로가기 <저작권자 © 한라일보 (http://www.ihalla.com) 무단전재 및 수집·재배포 금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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