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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기훈의 제주마을 백리백경.. 가름 따라, 풍광 따라] (112)표선면 표선리
관광명소로 가득한 도농복합 행복마을
양기훈 hl@ihalla.com 기자
입력 : 2026. 05.15. 03:00:00
[한라일보] 사람은 환경의 지배를 받게 된다는 사실을 신뢰하게 만드는 마을이다. 매오름에서 해안가까지 탁 트인 자연조건이 빚어낸 것은 사람들의 시원시원한 성격이다. 막힌 곳이 없는 소통구조를 통해 마을공동체의 결속과 위상을 증대시켜 온 것이다. 강인한 생활력으로 인식되는 기질은, 난관을 극복하는 방식이 활달하고 트인 사고체계를 만들어 마을문화로 발전해 온 결과라고 한다. 여러 가지 면에서 배울 점이 많다.

표선리는 면소재지로, 매오름 동쪽·달산봉 남쪽 해안 일대에 걸쳐 형성된 마을이다. 북동쪽은 하천리, 서쪽은 세화리 등과 접하며 남쪽은 바다와 맞닿아 있다. 마을의 정신적 주봉이라고 할 수 있는 매오름 정상에 올라보면 네 방향이 모두 급경사 낭떠러지로 이루어져 있어서 공중에 떠있는 최고 수준의 전망대에 오른 기분이다. 표선에서부터 서귀포 해안선들이 서쪽으로 길게 뻗어나가는 장관과 일출봉뿐만 아니라 한라산까지 조망할 수 있는 매력적인 관광자원이다. 학술적 가치도 크다. 해안지역에서 형성된 천혜성 수중분화구의 하나로서, 형태적으로는 응회구의 특징을 보여준다. 표고는 136m 정도. 북서향의 말굽형태를 띠고 있다. 동남사면에 얼핏 보기에는 분화구가 뚜렷하지 않으나 말굽형 분화구인 새끼오름(도청오름)이 있는데 시대적 전후관계를 고려할 때, 수중분화에 의해 매오름이 생성 후에 육상환경으로 바뀐, 전형적인 스트롬볼리식 분화에 의한 구조라고 한다.

금세훈 이장

설촌 기록에 따르면 약 700년 전 고려 말 충렬왕 무렵에 '웃말캐미(서상동)'에 현 씨가 설촌해 시작됐고, 이후 안가름과 뒷가름 일대에 사람들이 옮겨와 정착하는 한편, 한못 일대에도 박 씨 성을 가진 사람들이 들어와 살면서 마을이 번성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1996년 안가름에서 선사시대 돌도끼가 발견된 것을 고려하면 사람이 살기 시작한 건 그 증거물이 이야기하는 시기부터라고 해야겠다.

일주도로와 번영로가 교차하는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는 교통여건이 유동인구의 증가와 관광서비스업 등 상업의 괄목할만한 성장을 견인하고 있다. 단순히 행정적인 중심지라는 위상을 넘어, 하나의 경제적 축으로 자리매김하는 마을이다. 학교와 1차 진료시설들이 있어서 하나의 생활권을 형성하고 있기도 하다.

현재와 같이 표선리에 상가들이 형성되기 시작한 것은 1914년 일주도로가 뚫리고 1917년 표선리에서 성읍장터로 도로가 연결되면서부터라고 한다. 1915년 쯤부터 당캐포구를 근거지로 한 어로활동이 활발해지면서 인근에 상가들이 생겨났다. 1917년부터 오일장이 서기 시작했고, 1935년 면사무소가 옮겨오면서 표선면의 중심지로 부상하게 된 것이다. 지금은 표선해수욕장 백사장을 중심으로 제주민속촌과 해비치호텔 등 관광숙박시설이 즐비하고, 매력 만점의 올레코스, 관광과 휴양 명소로 각광받고 있다. 이러한 경제적인 위상에 걸맞게 인구도 증가해 2025년 말 기준 가구수는 3054세대에 인구는 5953명이다. 아무리 면소재지라 하더라도 리 단위 인구가 6000명에 달하는 것은 유입인구가 얼마나 많은 상황인지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금세훈 이장에게 표선리가 보유하고 있는 가장 큰 자긍심을 묻자 간명하게 대답했다. "융합능력이지요!" 오늘날과 같은 마을발전을 이룩한 것은 강골기질을 극복의지로 승화시킨 결과라는 것이다. 세상에 텃세 없는 지역이 어디 있으랴마는 이를 물리치지 아니하고서는 현상유지 답보상태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자각을 통해 개방적이고 포용력 있는 마을문화를 형성하고자 끊임없이 노력해 왔다는 설명이다. 조선시대 정의현 시절 읍성의 변두리마을이었으나, 일제강점기를 거치는 과정에서 500년 전통을 가진 지역의 무게중심을 표선리로 옮겨온 원동력은 참으로 강인한 결속력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열린 사고로 무장한 극복의지의 표상으로 표선을 바라보게 되는 마음이다. 더 나은 내일은 외부의 누구도 약속해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미 꿰뚫고 있었던 마을이었기에. <시각예술가>



한라산이 올려놓아진 곳은
<수채화 79㎝×35㎝>

이런 구도를 가지고 한라산을 그릴 수 있는 곳은 여기 뿐이다. 한라산 남동쪽에서 바라보는 편안한 느낌의 능선 흐름을 그리고자 했다. 해가 서쪽 지평선에 도달했을 때 울려 퍼지는 장엄한 빛의 오케스트라를 시각적으로 만나게 되는 것이다. 드넓은 모래사장 위에 가로획처럼 한 일(一)자로 늘어선 그림자 속 마을. 수평구도의 극한값이다. 그래서 너무도 차분하다. 튀지 않는 역할은 음악적 베이스로서의 기능을 충실하게 수행하고 있다. 오직 한라산이라고 하는 프리마돈나를 위한 헌신의 모습. 누구를 도와야 하는 어시스트 배역. 저 조연이 없다면 찬란한 일몰 태양광선을 받은 한라산이 장엄한 아름다움을 뽐낼 수 있을까? 억지스러운 추론이지만 '표선(表善)', 즉 그림을 통해 사람들의 심성이 나타난다. 착함이 드러나는 방식은 더 큰 가치를 위해 묵묵하게 바탕이 돼주는 일. 그러한 가치관을 떠올리게 된다. 표선의 시각적 상징체계를 풍경으로 그리려고 한 것이다.

연필담채화 기법을 사용해 마을 속 건물들의 흐름을 그렸다. 이미 해가 저문 그림자 속 상황이라서 무게감을 더 하고 많은 이야기가 숨겨져 있는 느낌을 얻어내기 위해서 담백하게 다가서는 것이 좋겠다는 판단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시간성이다. 한라산은 어느 위치에서 어느 시간에 태양광선과 만났을 때 보여주는 신비로움이 달라지기에 그렇다. 표선 바닷가에서 바라보는 한라산의 신령스러운 삼각형을 고대 그리스인들도 알고 있었다. 파르테논 신전의 지붕 각도와 흡사하다는 사실.



가장 눈부신 바닷가
<수채화 79㎝×35㎝>

태양광선은 어디에 내리쬐느냐에 따라 그 느낌이 달라진다. 인상파 화가들이 탐닉했던 지고지순한 과제 앞에서 그 유명하다는 고흐, 르노아르, 고갱을 불러다가 이렇게 넓게 펼쳐진 모래사장에 반사되는 빛을 표현하라고 하고 싶다. 모르긴 몰라도 환장할 것이다. 눈부신 광선을, 저 반사광의 폭발을 화면 속에 잡아들이는 일이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 필자 또한 스스로의 능력을 반신반의하면서 그렸음을 실토하게 되는 것은 이 광활한 느낌의 공간과 모래반사광의 강도를 표현하는 것은 곧 이 공간이 보유하고 있는 가치와 동일하기 때문이다.

더욱 매력적인 것은 밀물이라고 하지만 얇게 모래사장 위에 펼쳐진 바닷물과 모래와의 관계를 그리는 작업. 전 세계 숱한 바닷가 모래사장들이 있다지만 바닷물이 이런 상황을 연출해 내는 곳은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이러한 시각적 가치를 의미 없이 그냥 지나치고 마는 현실이 안타까워서 그림으로 도전한 것이다. 단순한 묘사력의 문제가 아니라 저 멀리 수평선 위에 떠있는 구름과의 거리감을 통해 이 모래사장의 규모를 가늠하게 되는 마력이 이 해변에 숨어있다는 것. 이 놀라운 천혜의 자원을 시각적 사유의 관점에서 증폭해 대중들에게 널리 알릴 수 있는 다양한 노력이 필요하다. 제주를 대표하는 모래해변인 이유는 학술적으로나 규모면에서 이곳을 능가하는 곳은 없기 때문이다. 활용방안에 따라서 무한대의 가치가 창출될 수 있는 태양광선의 환희공간. 바닷물의 얇은 두께가 발생시키는 독보적 시각자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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