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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라일보] 올해 지방선거는 기대에 비해 유난히 맥이 풀리고 뒤끝이 길었다. 전 국민이 분노하는 투표용지 부족 사태는 굳이 말할 필요도 없지만 보통의 필부들에게는 차선이 없었기에 거시적인 측면으로 차악을 선택해야 하는 내적 갈등이 컸다. 선거 자체가 이미 스트레스였다. 이보다 더 큰 문제도 있었다. 바로 제주 지역 '무투표 당선자'가 8명이나 된다는 것이다. 법적으로는 하자가 없다지만 민주주의 관점에서는 결코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니다. 주인 없는 안방에 무혈입성하는 권력이 늘어날수록 민주주의의 기초 체력은 고갈되기 때문이다. 선거는 단순히 대표를 뽑는 요식 행위가 아니다. 시민이 권력을 위임하는 과정이자, 후보자는 검증받고 유권자는 선택하는 민주주의의 핵심 장치다. 경쟁이 사라진 선거에는 검증도, 선택도 없다. 투표함이 열리기도 전에 권력이 주어지는 순간, 유권자는 관객으로 전락하고 민주주의는 형식만 남은 껍데기가 된다. 최근 지방선거에서 드러난 일부 후보들의 전과와 탈세 의혹은 시민들에게 깊은 실망감을 안겼다. 세금은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약속이다. 지역사회의 살림을 도맡아 공적 예산을 집행하겠다는 사람이라면 성실하게 납세 의무를 이행했어야 마땅하다. 그럼에도 의무는 저버린 채 권리만 누리려는 이들이 공직에 도전하는 현실은 우리 정치의 민낯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었다. 공적 의무의 울타리를 탈탈 털어 도망친 이들이 정작 법을 집행하는 자리에 앉겠다는 모순을 시민들은 납득하기 어렵다. 그러나 거대 정당의 독점이 심한 지역이나 무투표 당선 지역에서는 이러한 치명적인 흠결마저 '선량(選良)의 배지'라는 강력한 세탁기를 거쳐 손쉽게 면죄부를 받곤 한다. 지금의 정당들은 검증의 칼날을 무디게 가공할 뿐이다. 선거철만 되면 도덕성과 자질은 뒷전으로 밀리고, 오직 '당선 가능성'이 공천을 지배한다. 결국 정당이 걸러내지 못한 결격 후보들은 무투표로 직행하거나, 유권자들에게 무기력한 '차악'만을 강요하는 악순환을 낳는다. 이제는 단독 출마 시 유권자의 거부권을 보장하는 '찬반 투표제'나 부적격 후보를 낸 정당에 페널티를 가하는 '공천 책임제' 등 제도적 보완을 고민해야 한다. 견제 장치가 없다면 정당의 책임 방기와 무투표 직행이라는 악순환을 끊어낼 길이 없다. 민주주의는 투표 당일에만 잠깐 켜지는 스위치가 아니다. 후보를 발굴하고 검증하는 정당의 책임, 부적격자를 가려내는 시민의 눈, 공직자의 윤리의식이 맞물려 돌아갈 때 비로소 숨을 쉰다. 어느 하나라도 고장 나면 민주주의라는 거대한 시스템은 작동을 멈춘다. 민주주의는 투표율이라는 수치로만 증명되지 않는다. 시민에게 실질적인 선택권이 보장되는지, 깨끗한 후보들이 링 위에 오르는지가 본질이다. 견제받지 않는 권력은 오만해지고, 검증받지 않은 권력은 부패한다. '빈 의자'에 앉은 권력은 위험하다. 지방자치의 미래는 당선자의 수보다 민주주의의 품격이 우선이다. <고나해 시인> ■기사제보 ▷카카오톡 : '한라일보' 또는 '한라일보 뉴스'를 검색해 채널 추가 ▷전화 : 064-750-2200 ▷문자 : 010-3337-2531 ▷이메일 : hl@ihalla.com ▶한라일보 유튜브 구독 바로가기 <저작권자 © 한라일보 (http://www.ihalla.com) 무단전재 및 수집·재배포 금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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