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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기훈의 제주마을 백리백경.. 가름 따라, 풍광 따라] (115)성산읍 수산2리
20여 곳 봉천수에 문화재적 가치 가득한 마을
양기훈 hl@ihalla.com 기자
입력 : 2026. 06.26. 03:00:00
[한라일보] '곶앞'이라는 옛 이름에 마을 정체성이 그대로 드러난다. 곶자왈 바로 앞에 정주공간을 마련해 살아갔던 사람들, 그들의 마을. 마을 북쪽이 산전이어서 숲이 우거지고 큰 나무들이 많았다. 자연스럽게 가시덤불과 바위언덕, 동산 따위가 많은 숲이 우거졌을 터. 1899년 기록인 제주군읍지에는 이 마을의 명칭으로 상수산리, 화남리 등 11개 이름이 등장한다. 이렇게 다양하게 불린 마을이 또 있을까. 분명한 것은 1439년 세종실록에 수산으로 기록돼 있다. 1702년 탐라순력도의 '수산성조(首山城操)'라는 그림 기록을 볼 때 조선왕조 입장에서도 중요지역이었다는 것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오영삼 이장

일주도로에서 서쪽으로 4㎞ 지점에 위치한다. 서쪽으로는 표선면 성읍리 일부, 남쪽으로는 난산리와 온평리, 북쪽으로는 시흥리와 구조읍 일부에 접하고 있는 마을이다.

역사적 사실이 유서 깊은 마을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원나라의 지배를 보여주는 탐라총관부 설치 초기인 1276년, 몽고에서 말을 들여와 처음으로 목장을 설치한 곳이 여기다. 조선시대만 해도 중산간 지역 전체에 10소장을 둘 정도로 목장 기능을 보유한 곳은 많았다. 그렇다면 어찌하여 당대 최고의 축산전문가라고 할 수 있는 몽고족들이 이곳에 최고의 가치를 뒀을까?

이 궁금증에 대해 필자가 다양한 경로를 가지고 파악한 소견은 이러하다. 아이러니하게도 농경민보다 유목민이 '마시는 물'에 더 예민하다는 사실. 수질에 대해 끔찍하리만치 엄격한 문화를 보유한 그들이 목장을 관리하면서 봉천수로 마실 수 있는 물이 지천으로 널려 있고, 가축들이 마실 수 있는 연못이 여러 곳에 있는 지역이야말로 저들이 가장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목장지대였다는 것이다. 탐라총관부시절 아주 중요한 곳으로 여겨졌다는 점을 통해, 수산평이 단순히 '옛날 봉천수였던 곳' 정도의 장소가 아니란 걸 알 수 있다. 물맛에 까다로운 유목민들이 입도해 최고 품질의 봉천수를 발굴해 낸 역사를 지금 이 시대에 과학적인 방식으로 풀어내야 할 필요가 절실하다. 수돗물이 보급되기 전 용천수 샘과 더불어 봉천수도 식수로 자연스럽게 사용하던 문화적 배경과 무관하지 않기 때문.

마을 영역 내에 오름들도 매력적이다. 낭끼오름, 궁대악, 후곡악, 돌림이오름. 곶자왈과 연동해 바라보게 되는 수산동굴, 벌라리동굴, 앞벌라리동굴, 구레기동굴. 솟아난 오름과 땅 속 깊은 곳에 흐르는 굴, 그 사이에 고인 봉천수의 자연적 관계를 통해 마을 이름 '물과 산(水山)'이 형성된 건지 밝힐 시대적 의무가 있다. 이러한 자연생태와 지속적인 연구대상으로서의 가치를 인식해 올해 3월 국립생태원과 성산읍 수산2리, 곶자왈공유화재단이 상생협약을 맺은 것은 참으로 의미가 크며 다행스러운 일이다. 공동협력사업과 발전방향에 대한 상호 협력이 미래지향적인 생산성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는 확신에 차 있다.

오영삼 이장에게 수산2리가 보유한 가장 큰 자긍심을 묻자 간명하게 한 글자로 대답했다. "순할 순(順)". 평생 살아오면서 이렇게 순한 사람들이 사는 곳이 세상 어디에 있을까? 순하다는 의미가 착한 사람들이라는 관점보단 순리에 맞게 살아가려는 마을공동체 본연의 모습이라고 강조하고 있는 것. 조상 대대로 그러한 문화풍토 속에서 이어져 온 전통 때문에 언성을 높여 싸우는 일이 없다는 사실. 갈등요인이 있어도 그 순한 심성을 가지고 자연스럽게 해소하는 지혜가 가득하다.

곶자왈 환경을 주민들 스스로가 지키고자 하는 수산2리 환경지킴이 활동을 통해 지금 이 시대가 요구하는 지속가능성을 마을공동체가 주도적으로 실천하고 있으니 참으로 감동적이다. 모두가 생업을 가지고 있지만 마을일이 곧 내 가정의 미래요 생태계 수호가 삶의 질 확보에 필수요소라는 의식이 깔려 있다. 주민의식 수준과 격이 높은 마을이다. <시각예술가>



돌창고가 전하는 메시지
<수채화 79cm×35cm>


마을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아름다운 의미를 찾던 중에 발견한 뜨거운 감동. 봉천수를 식수로 사용하던 시절을 살았던 분들이 쌓아서 만든 돌담창고라는 생각에 진한 대물림의 향기가 감돌았다. 마을 어르신이 우직한 모습으로 앉아서 오후의 눈부신 햇살을 받고 있는 모습이 연상돼 그린 것이다.

엉뚱한 발상이 저 시멘트 바른 돌담 벽에서 떠올랐다. 봉천수 못이 많은 마을이라는 사실과 연관 지어, 저 벽이 입면이라면 만일 평면으로 눕혔을 때, 그 많은 연못들의 위성지도가 저런 형태로 파여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 수산2리의 연못들 평면도가 모두 망라됐다는 억지 주장을 위해 미소 지으며 그렸다. 공산품과 같은 규칙적인 반복이 결코 허용되지 않는 돌담창고의 미의식을 부각하고자 하는 열망이라고나 할까. 뒤에 배경으로 등장하는 비닐하우스 농업현장을 태양광선과 함께 그려나가는 것이야말로 진한 보람이다.

눈 여겨보면 참으로 풍부한 그림 소재가 쌓여 있는 마을임에도 선택적으로 저 돌담창고 벽을 그리게 된 것은 세월의 흐름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어렵던 시절이었지만 그래도 희망의 땀방울을 주저 없이 흘릴 수 있었던 두 세대 전 그 청년들의 불굴의 의지가 있었기에 오늘이 있다는 생각을 저 돌담 문자는 전하고 있으니. 세상이 바뀌고 세월 또한 따라서 흐른다. 그러나 변하지 않는 것에 대한 열망과 존중은 미래가 우리를 버리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과 상통하기에. 마을공동체를 품은 어느 장소든 역사다.



수산2리 한못에서
<수채화 79cm×35cm>


산수화(山水畵)로 수산(水山)을. 글자의 앞뒤가 바뀌니 그냥 그대로 전달하고자 하는 현실이 그대로 드러난다. 생태계의 보물창고와 같은 마을에서 대표적인 연못을 그리려고 하니 참으로 다양한 시도와 과정을 겪어야 했다. 그러다가 한못에서 온종일 그릴거리를 찾아 관찰하고 또 관찰하던 차에 오름과 같은 형상이 조형물 크기로 풀과 작은 나무에 의해 형성된 모습을 발견하고서 나도 모르게 탄성이 터져 나왔다. "앗! 산이다." 물과 만나니 산수화가 따로 없다는 희열이 밀려와 상징성이 충분하여 그리기로. 물은 동양화의 전통적 방식 그대로 흰색 여백으로 처리한다. 그리고 원경에 빼곡하게 들어선 곶자왈의 이미지가 수산2리 최고 경쟁력과도 연동되니 좋다.

산수화의 철학적 토대 위에 그리면서 깨우치게 된 사실이 있다면 흰 백색 여백을 물이라 하여 그대로 남겨뒀던 조상들의 사유체계다. 백색은 아무것도 없는 시각적 상태이기에 무엇이든 품을 수 있다는 가능성. 여기 한못의 물은 그냥 그대로 산수화의 그 물색과 다르지 아니하다. 얼마나 많은 사연과 생태계를 품을 수 있을까. 스케치하는 도중에도 탐방객들이 수없이 찾아드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흐뭇. 유월의 초록이 그 풍성함을 햇살과 함께 더해가는 날, 이 연못에 마소를 몰고 와서 물을 먹이던 장면을 연상하게 된다. 750년 전, 수산평에 목장을 마련하기 위해 답사하던 사람들이 여기 한못을 발견하고 얼마나 기뻐서 날뛰었을까? 지금 풍경 시야에 들어오는 면적의 10배가 넘는 물 자원이니 말이다.

<제작 지원=제주특별자치도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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