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오피니언
[김정호의 문화광장] 부모 자식 간의 인연은 500겁의 인연보다 깊다
김정호 hl@ihalla.com 기자
입력 : 2026. 07.07. 01:00:00
[한라일보] 불교에서 인연법은 천지 만물이 있는 이유가 다 있다는 것이며,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데 그러려면 전생에 500겁의 인연이 있어야 한다. 하물며 부모와 자식 간의 인연은 저 큰 바위가 모래가 될 세월 동안 인연의 결과다.

'구르는 수레바퀴'(2019)에서 동자승 혜진은 밥과 옷을 주는 사람을 아버지라며 스님 도법에게 아버지라고 부르다가 부모와 자식 간의 인연에 관한 이야기를 듣는다. 어려서 부모로부터 버려진 혜진은 그런 인연을 저버린 부모가 원망스럽다.

서울에 큰 절 주지 스님으로 성장한 도법 스님의 문중 맏상좌 혜진은 주지 스님 선거 운동 기간의 바쁜 와중에 도법의 행자로부터 도법이 위중하다는 연락을 받고 도법을 찾아뵈러 간다. 도법의 문중에는, 속세의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에서 보듯이 다양한 상좌 스님들이 있다. 개고기와 술을 먹고, 보살과 불륜관계인 둘째 상좌 혜견은 형제가 많은 집안에서의 말썽꾸러기와 같다. '악인은 너무 많다'(2011)에서 주연을 맡았고, 주로 조연으로 악당의 역할을 맡았던 배우 김준배가 열연한다. 셋째 혜용은 봉안당 사업 등 불사를 열심히 하면서 보살과 은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넷째 혜승은 서울대와 하버드를 나온 SNS 스타이며 작가인 스님으로 비트코인 투자 등 속세의 이재에도 밝다.

얼핏 보면 불교계를 풍자하고 고발하는 듯한 영화이나, 사실은 불가의 삶도 속세의 삶과 닮은 구석이 많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들 네 명의 상좌들은 도법스님이 과거의 천지를 호령하던 큰 스님이 아니라 치매와 중풍으로 육신의 고통에 시달리는 병든 노인이 됐음을 보게 된다. 요양병원이나 시설에 모셔야 하는 것이 아니냐, 맏상좌가 잘 모셔야 하는 거 아니냐 등 서로 원망하기도 하고, 도법 스님이 남기게 될 문중의 토지를 어떻게 할지, '행자가 아니면 도법을 모실 분이 없으니 그에게 잘하자' 등 다양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야기의 다른 한 축은 맏상좌 혜진이 어린 동자승에서 한 명의 홀로 선 스님이 되기까지의 도법 스님과의 관계에 대한 회상으로 이뤄진다. 어린 동자승에게 어머니의 정을 느낄 수 있게 해 준 강릉 보살과의 인연도 있다. 도법은 이들 상좌를 사대천왕이라고 하며, 밥을 안 주어 배가 고프다고 하기도 하고, 도리천으로 가려면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묻는다. 도리천은 불교에서 세계의 중심에 있는 수미산에 있는 천상계로 고타마 붓다의 어머니인 마야부인이 죽은 뒤 다시 태어난 곳이다.

진제와 속제, 깨달음의 관점에서의 진리와 세상에서 체감되는 일반적 진리가 다르지 않음을 보여주는 이 영화는 코로나 시기인 2020년에 개봉됐으나,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문정윤 감독이 오래전, 시나리오 작업차 머물던 절에서의 모습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었다. '바보 선언'(1983)과 '서편제'(1993)에서 좋은 연기를 보여주고 2006년 문화관광부 장관을 역임한 김명곤 배우가 혜진 스님으로서 열연을 보여준다. 속세에서 영화 속 상황과 유사한 처지에 있다 보니 영화가 가슴에 와닿는다. <김정호 경희대학교 연극영화학과 교수>



■기사제보
▷카카오톡 : '한라일보' 또는 '한라일보 뉴스'를 검색해 채널 추가
▷전화 : 064-750-2200 ▷문자 : 010-3337-2531 ▷이메일 : hl@ihalla.com
▶한라일보 유튜브 구독 바로가기
이 기사는 한라일보 인터넷 홈페이지(http://www.ihalla.com)에서 프린트 되었습니다.

문의 메일 : webmaster@ihall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