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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녀 생활에 대해 이야기하는 조규석 씨. 장태봉기자 24살에 남편과 포항 이주… “바다 넓어 물질하기 좋아” 구룡포서 우뭇가사리 채취해 일본 수출… 울릉도 물질도 “100살까지 물질해도 퇴직금 없어… 바다에 투자해야” ![]() 해녀 생활에 대해 이야기하는 조규석 씨. 장태봉기자 [한라일보] 경북 포항시 남구 구룡포읍에서 물질을 하는 제주 출신 조규석(86) 씨의 다리에는 한여름임에도 두터운 보온 밴드가 감겨 있었다. 얼마 전 수술한 왼쪽 다리가 시도 때도 없이 시려서다. 70년 가까이 바다를 누빈 조 씨의 몸은 예전 같지 않지만, 조 씨는 여전히 바다를 찾는다. 제주시 구좌읍 김녕리 출신인 조 씨는 18살에 물질을 배웠다. 여느 해녀들과 마찬가지로 집 근처에서 해수욕을 하며 자연스럽게 물질을 익혔다. 10대 때부터 경남 창원으로 1년간 출향물질을 나갈 만큼 일찍이 생계 노동에 뛰어들었다. "엄마들 하는 거 보면서 18살에 물질을 배웠어. 제주도가 옛날엔 곤란했다게. 돈이 없어서 무레질(물질)하러 여기저기 댕겼지. 어릴 적에 무레질 할 때는 쪼매난 수경 끼고, 그때는 갑옷(고무옷)도 없이 물질을 했어." 제주에서 22살에 결혼해 딸을 낳은 조 씨는 가족의 생계를 위해 24살에 포항으로 이주했다. 넓고 물질하기 좋은 바다가 있었고, 먼저 건너와 자리를 잡은 제주 출신 해녀들도 많았다. 조 씨의 가족은 제주와 부산을 잇는 연락선을 타고 바다 건너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낯선 땅에서 만난 제주 사람들은 서로 의지하며 이웃이자 가족처럼 지냈다. ![]() 경북 포항시 남구 구룡포읍 앞바다. 구룡포 해녀들의 주 수입원은 천초(우뭇사가리)였다. 조 씨는 "제주도 사람들이 여기 올 적에는 바다에 천초가 많았다"며 "그걸(천초) 뜯으면 수협에서 와서 걷어가고, 일본으로 수출을 했다. 그거 뜯으러 제주도 사람들이 포항에 많이 왔다"고 했다. 바다에서 일하는 해녀들이 언제나 자유롭게 물질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미역이 자라는 바위에 주인이 따로 있던 시절도 있었다. 이른바 '곽암주(藿巖主)'다. 곽암주는 미역이 자생하는 바다 바위에 대한 소유권을 내세워 해녀들에게 채취 대가를 요구했다. 해녀들은 일당의 일부를 지불하거나 생산량의 절반 이상을 넘겨야 하는 등 착취적인 어업 관행이 있었다는 연구도 있다. 곽암주는 1950년대까지 동해안 등지에서 남아 있는 문화였으나, 1960년대 들어서 수산업법이 개정되면서 사라졌다. ![]() 구룡포에 정착한 뒤에도 조 씨는 울릉도로 출향물질을 나섰다. 그의 기억에 따르면 울릉도에는 해녀가 부족해 미역 수확이 필요할 때마다 육지에서 해녀 3~5명을 초청했다. 이들은 약 한 달간 섬에 머물며 일당을 받고 물질을 했다. 오전 7~9시쯤 바다에 들어가 서너 시간씩 작업했다. 조 씨가 집을 비우는 동안에는 오징어 장사를 하는 남편이 아이들을 돌봤다. 그렇게 평생 물질해 온 조 씨는 이제 은퇴를 앞두고 있다. 바다를 떠나야 한다는 사실도 아쉽지만, 평생 일해도 퇴직금이나 노후를 위한 보상이 마땅치 않은 해녀들의 처우가 우려스럽다고 했다. "공부한 사람들은 나이 들어서 퇴직금도 타지만 해녀들은 100살까지 무레질 해도 그런 게 없어. 그게 좀 아쉬워. 회사원들도 해녀들도 다 먹고살자고 노력하는 건데. 할매는 다 늙었지만 후손들이라도 그런 게 있으면 열심히 바다에서 일하고 바다를 살릴 텐데. 해녀가 없으면 바다를 안 살려." 최근 들어 바다에 '물건'이 없다고도 반복해서 토로했다. 해녀들의 생계가 바다에 달려 있는 만큼 수산자원에 대한 투자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해녀들이 논이 있나, 밭이 있나. 바라보는 건 바다 하나인데… "옛날에는 물건이 많아서 많이 땄는데, 요즘에는 물건이 없어. 옛날에 한번 가면 10㎏을 잡았다면, 이젠 1㎏도 못 잡아. 그러니까 돈벌이가 안 되지. 바다에 전복, 성게 같은 걸 뿌려서 저축을 해줬으면 좋겠어. 투자를 해줘야 해녀들이 먹고살거든. 해녀들이 논이 있나, 밭이 있나. 바라보는 건 바다 하나인데." 조 씨는 올해를 끝으로 물질을 그만둘 계획이다. 구룡포에 남은 제주 출신 해녀는 이제 4~5명뿐이다. 그 역시 고령으로 바다를 떠날 준비를 하면서도 바다를 향한 마음은 여전하다. 그는 "이젠 나이 들어서 바다에 가고 싶어도 몸이 말을 안 듣는다. 가만히 있으면 적적해서 자꾸 바다를 찾게 된다"며 "바다를 생각하면 아직도 좋다. 생계를 유지하게 해 줬으니까"라고 말했다. <특별취재팀=양유리 기자·장태봉 기자(사진·영상 촬영)> ■기사제보 ▷카카오톡 : '한라일보' 또는 '한라일보 뉴스'를 검색해 채널 추가 ▷전화 : 064-750-2200 ▷문자 : 010-3337-2531 ▷이메일 : hl@ihalla.com ▶한라일보 유튜브 구독 바로가기 <저작권자 © 한라일보 (http://www.ihalla.com) 무단전재 및 수집·재배포 금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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