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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언어의 갈라파고스 193] 3부 오름-(152) 거린오름
익숙한 말이나 산의 생김새에서 지명을 찾으려 해
김찬수 hl@ihalla.com 기자
입력 : 2026. 10.20. 03:00:00
두 오름과 깊은 골이 빚은 풍경


[한라일보] 하나의 오름 같기도 하고 두 개의 오름 같기도 한 오름이 있다. 서귀포시 남원읍 한남리에 있는 거린오름이다. 거인악이라고도 부른다.

거린오름. 서쪽에서 촬영한 사진으로 오름 건너 동쪽에는 서중천이 흐른다. 김찬수

지질학적으로는 두 오름으로 나뉜다. 북쪽의 높은 봉우리를 중심으로 한 오름과 남쪽 봉우리를 중심으로 한 오름이다. 표고 532.7m인 북쪽 오름은 큰거린오름, 표고 493.2m인 남쪽 오름은 족은거린오름이라고도 불린다.

예전에는 북쪽의 가장 높은 봉우리를 중심으로 하나의 오름으로 본 듯하다. 한남리 향토지인 '내 고향 한남리'는 반달 모양의 두 등성마루가 등을 맞댄 모습으로 설명한다. 두 등성마루가 만나 X자 모양을 이루고, 여기에서 사방으로 등성이가 뻗어 내린다는 것이다. 크게 보면 두 갈래이고, 자세히 보면 네 가닥의 등성이로 이루어진 산이다.

두 오름이 맞붙은 동쪽에는 넓고 깊은 골짜기가 있다. 그 동쪽 자락을 따라 서중천이 흐른다. 깊은 산속에 들어선 듯한 풍경을 보여주는 이곳을 '어우창'이라고 한다. 한남리 10경 가운데 제1경으로 꼽히는 곳이다.

거린오름이라는 이름은 어떻게 생겼을까? 두 오름이 골짜기를 사이에 두고 갈라져 있어서 붙은 이름이라고 풀이하는 것을 보게 된다. '갈리다'에 해당하는 제주어가 '거리다'이므로, '거려 있는 오름'이 '거린오름'이 됐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옛 기록의 표기를 살펴보면 다시 생각할 여지가 있다. 1872년 '제주삼읍전도' 등에는 '거로악(車路岳)', 1899년 '제주군읍지'에는 '거인악(巨仁岳)', 같은 해 '정의군지도'에는 '거로치(車路峙)'로 나온다. 1965년 '제주도'에는 '걸인오름'·'걸인악(傑人岳)'으로 적혀있다. 제시된 기록 가운데 가장 이른 표기는 '거로악'이다.



옛 표기로 되짚는 거린오름의 뜻


갈라진 모습에서 이름이 생겼다는 설명에서는 '거로악'을 '고론오름' 정도의 소리를 한자로 옮긴 것으로 본다. 또 '거로'는 '거린'과 비슷한 소리를 나타낸 표기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고론'과 '거린'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거린'을 왜 '거로'로 적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당시의 발음과 한자 표기 관행을 보여주는 근거가 필요하다.

서중천. 흙붉은오름에서 발원하며 여러 지류가 합쳐져 남원리·태흥리 해안으로 흘러든다. 김찬수

물론 기록에 먼저 나왔다고 해서 그 이름이 반드시 더 먼저 생겼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기록되기 전부터 주민들이 쓰던 이름이 있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갈라진 오름'이라는 풀이가 타당하려면 가장 이른 표기인 '거로악'도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지명을 풀 때 오래된 기록을 중요하게 보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말은 세월이 흐르면서 소리와 뜻이 달라진다. 이름이 생겼을 때는 누구나 알던 말도 나중에는 뜻을 알 수 없게 된다. 그러면 사람들은 익숙한 말이나 산의 생김새에 맞추어 이름을 새롭게 풀이하기도 한다. 현재의 모습만으로 옛 이름의 뜻을 정하기 어려운 이유다.

그렇다면 '거로악'을 달리 읽을 수는 없을까? 여기서는 옛말 '걸'에 주목해 볼 수 있다. '거로(車路)'의 '거'에 '로(路)'의 첫소리 'ㄹ'을 붙여 '걸'을 나타낸 것으로 보는 해석이다. 지명에서 이처럼 차자하는 관행은 종종 보인다. 도랑이나 개천을 뜻하는 '걸'이라는 말 자체도 옛 문헌에서 다양하게 나타난다.



옛말 ‘걸’에서 찾는 이름의 실마리


1461년 '능엄경언해'에는 "수플와 걸와 전당과랄 두르 보며"라는 구절이 나온다. 오늘날 말로 옮기면 "숲과 개천과 전당을 두루 보며"라는 뜻이다. 여기서 '걸'은 개천을 가리킨다.

1463년 '영가집언해'에도 '거레', '거리' 같은 말이 나온다. '거레'는 '걸'에 조사 '에'가 붙은 말로 '개천에'라는 뜻이다. '거리'는 '걸'에 조사 '이'가 붙은 말로 '개천이'라는 뜻이다. 지금 쓰는 '길거리'의 '거리'와는 다른 말이다.

1481년 '초간두시언해'에는 작은 돌로 도랑을 만드는 대목과 흐르는 물이 개천을 헤치는 대목에서 '거를'이라는 말이 쓰였다. '걸'에 조사 '을'이 붙은 형태다. 1482년 '금강경삼가해'에도 물이 이르면 개천이 이뤄진다는 뜻으로 '거리'가 나온다.

1575년 '광주천자문'에서는 도랑을 뜻하는 한자 '渠(거)'를 '걸 거'로 풀이했다. '걸'이 도랑이나 개천을 뜻하는 말이었음을 직접 보여주는 예다. 1632년 '두시언해'에도 '거른'이라는 형태가 보인다. '걸'에 조사 '은'이 붙은 말이다.

거린오름 위치도. 네이버지도 제공

이 말들을 오늘날의 표현과 나란히 놓으면 이해하기 쉽다. '걸'은 '개천', '거리'는 '개천이', '거레'는 '개천에', '거를'은 '개천을', '거른'은 '개천은'에 해당한다. 서로 다른 말처럼 보이지만 모두 '걸'에 조사가 붙은 형태다. 이 용례들은 '걸'이 실제 쓰였던 우리말임을 보여준다.

거린오름의 이름을 이 옛말과 연결해 보게 하는 또 하나의 단서는 지형이다. 오름 동쪽에는 넓고 깊은 골이 있고 그 자락을 따라 서중천이 흐른다. 상류에는 흙붉은오름샘과 성널샘이 있으며, 머체왓 일대에도 여러 샘이 있다. 물길과 샘이 이어진 골짜기라는 점에서 옛사람들이 이곳을 '걸' 곧 개천으로 불렀을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서중천이 역사적으로 화등지천, 부등지천 또는 부등개라고도 불렸다는 점도 살펴볼 대목이다. 오름 이름을 주변 물길의 이름과 연결해서 검토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이러한 이름들이 서로 어떤 관계인지는 각 기록의 시기와 위치를 대조해 밝혀야 한다.

이렇게 보면 거린오름은 '갈라져 있는 오름'이라기보다는 옛말 '걸'과 관련된 이름일 가능성이 훨씬 높다.

'거로악'이라는 옛 표기, 개천을 뜻하는 '걸'의 문헌 용례, 오름 곁의 깊은 골짜기와 물길을 함께 놓고 보는 해석이다. 이 해석에 따르면 거린오름은 '개천가에 있는 오름'이라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김찬수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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