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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학주의 시(詩) 읽는 화요일] 제주어 풀이(133)농짝 뒤에 숨겨둔 노을-박상봉
황학주 hl@ihalla.com 기자
입력 : 2026. 10.27. 00:00:00
[한라일보] 노을은 날마다 얼굴이 달랐다 더러는 감잎처럼 어두운 주홍 간혹 수박 속 살 같은 분홍 비가 온 뒤에 젖은 천 말리다 만 듯 흐릿하고 바람 드센 날 붙잡을 새 없이 흩어졌다 엄마는 그 차이를 보고 그날의 피곤함을 가늠하는 것 같았다 농짝 뒤쪽은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는 틈을 품고 있었다 거기에 쓰다 남은 하루의 숯불 같은 노을을 숨겨놓았다 엄마는 저녁밥 짓다 말고 잠깐씩 농짝 뒤를 살폈다 손에는 늘 빈 대야나 마른행주가 들려 있었다 나는 그게 노을 덮어 두는 이불이라고 생각했다 엄마가 힘들어 보이는 날이면 농짝 뒤 노을은 유난히 두툼했다 벽에 붙은 빛이 쉽게 떨어지지 않고 마치 하루를 더 견디라고 눌러앉은 것처럼 어쩌면 그 노을은 엄마가 밭에서 캐 온 것인지도 모른다 장터에서 흘려보낸 것들을 몰래 모아 둔 것일지도 몰라 내일 다시 쓰기 위해 조심스레 접어 두는 종잇장 같은



한 번은 왜 농짝 뒤가 늘 붉으냐고 물은 적 있다 엄마는 잠깐 나를 보더니 웃으며 말했다 해가 거기서 쉬어 간단다



그 대답이 너무 정확해 나는 아무 말 하지 못했다

삽화=배수연



이 시의 중심에는, 삶의 고단함을 놓을 수 없는 희망으로 바꾸어 간직한 어머니의 마음이 놓인다. 어머니는 노을의 색깔을 보며 하루의 피곤함을 헤아리고, 그 노을을 농짝 뒤에 숨겨 둔다. 여기서 '숨겨 둔다'는 행위는 은닉이 아니라 자신의 고통을 함부로 드러내지 않으면서 완전히 버리지 않으려는 태도에 가깝다. 노을은 “감잎처럼 어두운 주홍” “수박 속 같은 분홍”으로 그려져 자연의 색채가 식물과 과일의 감각으로 번역되며, 이 비유들은 노을을 추상적 풍경이 아니라 손으로 만질 수 있을 듯한 생활 감각으로 끌어당긴다. 노을은 그 친숙함을 입고 어머니의 하루와 연결되고 있다. 무엇보다 이 시의 독창성은 '농짝 뒤'라는 공간에서 비롯될 것이다. 노을을 감추는 장소가 오래된 가구의 뒤편이라는 사실은 시의 정서를 결정하는 중요한 장치이다. 살림살이를 품는 생활의 사물 뒤편 평범한 공간에 노을을 넣어 둠으로써,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일상의 감정이 어디에 머무는지를 보여 준다. 어머니는 노을을, 노을은 다시 어머니의 마음을 덮어준다. "해가 거기서 쉬어 간단다" 라는 한 문장은 이 작품 전체를 응축하는 시적 결정이다. 해가 쉬어 가는 자리, 거기는 어쩜 어머니가 평생 마련해 온 마음의 방이며 이제는 그 어머니를 기억하는 우리의 마음속에 흔들리는, 그리고 새롭게 놓이는 작은 쉼터인지도 모른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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