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한라신춘문예]소설 당선자 김선희 '끝없는 밤'

[2017한라신춘문예]소설 당선자 김선희 '끝없는 밤'
더 멋진 소설을 주세요
  • 입력 : 2017. 01.02(월) 00:00
  • 편집부 기자 hl@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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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자 김선희

[당선소감]

아! 그 수많은 여릿여릿했던 밤들! 구석 자리에 놓인 낡은 책상에 촛불을 밝혀 두고 노트북을 켜서 모니터를 뚫어지게 바라만 보다 몇 자 적고 몇 줄 쓰고 지웠다가 다시 똑같은 글을 쓰던 그 많은 밤들! 밤마다 어둠 속에서 그렇게 웅크리고 앉아 숨 막힐 것 같은 수많은 가능성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심지어 글 쓰는 것보다 그 가능성이 현실이 되는 상상을 더 열심히 했습니다. 방 벽에 떡 하니 붙여 놓은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문구가 적힌 흰 종이가 누렇게 되고 귀퉁이가 죄다 꼬부라지고서야 저는 이 문구가 붙어 있는 벽장 앞에 떳떳하게 섰습니다. 대견합니다. 눈물이 납니다. 오랜 시간 습작을 하는 동안 내가 헛짓거리를 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의구심에 세상을 노려보고 밥 먹는 것도 죄스러웠던 우스꽝스러운 시간들을 이제는 껄껄껄 호기롭게 웃으며 너그럽게 과거에 허락하기로 합니다. 그렇다면 미래에는 무엇을 허락하면 좋을까요? 모든 것을, 모든 것을요. 촛불 대신 램프를 켜 두고 최신형 노트북에다 흰 우유 한 잔을 옆에 두고 건빵을 씹으며 한껏 거만한 자세로 자판을 두드리는 것입니다. 대신 새 소설을 달라고, 더 멋진 소설을 달라고 미래에 요구할 생각입니다. 떳떳하게요. 이제는 짜릿짜릿한 밤을 보낼 수 있습니다. 고질병인 두통 따위 진통제로 날려 버리고 글을 쓰고, 영감을 얻는데 이것만 한 게 없다며 대놓고 만화영화를 보며 글을 쓰고, 뉴스에 등장하는 정치인들을 한껏 조롱하며 발가락으로 리모컨을 눌러 예능프로그램으로 채널을 돌리고 글을 쓸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엄마. 당신 없이는 저의 글도 없습니다. 이렇게 당당히 당신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어서 행복합니다. 사랑합니다.

▶약력 ▷1979년 서울 출생 ▷숭실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졸업 ▷경기 광명 거주

[심사평]
삶을 보는 깊이와 인식

사진 왼쪽부터 문학평론가 허상문, 동화작가 장수명

신춘문예라는 등용문의 과정을 통해 문단에 선을 보이고자 하는 신인 작가는 여러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작가로서의 기본적인 문학적 능력을 갖추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신인다운 참신성과 패기를 지니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심사자들 손에 들어온 올해 신춘문예 소설부문 작품은 총 122편이었다. 양적인 면에서는 작년보다 많은 작품이 들어왔다. 그러나 양적인 풍요로움이 질적인 수준을 담보해주지 못해 아쉬웠다. 작품의 전반적인 수준은 다소 미흡하였고, 소재와 주제의 면에서도 참신함을 찾기 어려웠다.

심사자들은 전 작품을 충분히 완독한 후, 구성력과 문장력 그리고 신인다운 참신성과 패기 등을 중점적으로 살폈다. 그 결과, 최종적으로 네 편의 작품을 집중적인 논의의 대상으로 삼았다.

'브리태니커 박사와 앙대여 여사'와 '은총이 가득한 집'은 구성력과 스토리를 이끌어가는 솜씨는 좋았지만, 중간 중간에 보이는 작위적인 상황설정과 작가의 지나친 개입으로 인해 작품의 무게와 완성도를 크게 떨어뜨렸다.

'밤의 찬가'는 동성애자라는 흔치 않은 소재가 다른 작품들과 차별화되어 심사자들의 시선을 끌었다. 그러나 스토리 구성의 평이성이 감점의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끝없는 밤'은 이야기의 구성, 비교적 신선한 소재와 주제, 함축적이고 상징적 문체 등의 여러 가지 면에서 심사자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특히 읽는 사람의 생각을 자극하고 상상케 하는 서술적 힘은 이 작품의 큰 장점으로 여겨졌다. 이것은 한 편의 소설을 통해 다의적인 해석과 울림을 만들어내는 작가의 능력이기도 하다. 다만, 이런 전개의 모티브가 지나치게 영화텍스트로부터 원용되고 있다는 점이 작품의 결함으로 지적되었다.

소설은 당대적 삶의 언어습관이나 가치관을 치열하게 반영하며 표현하는 문학 양식이다. '끝없는 밤'은 삶에 대한 일정한 깊이와 인식을 보여주는 신인다운 신선함과 패기를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심사위원들에 의해 어렵지 않게 당선작으로 선정되었다. 앞으로 정진하여 훌륭한 작가로 성장하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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