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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칼럼]양심샤워
허수경 hl@ihalla.com 기자
입력 : 2017. 06.20.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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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보다 높은 돌담에서 얼음장 같은 용천수가 콸콸 쏟아지는 곽지 과물 해수욕장의 노천탕에 어느 날부터 작은 푯말이 하나 세워졌다. 딸아이가 막 걸음마를 배우던 때였다. 용천수가 퐁퐁 솟아오르는 곽지 해변의 모래밭을 딸은 무척 좋아했다. 실컷 모래장난을 하고나서 세 줄기 용천수가 폭포처럼 쏟아져 내리는 노천탕에 들어가 한껏 물장구를 치고 나오면 저절로 모래가 깨끗하게 씻겨 내려가 얼마나 시원하고 개운했는지 모른다. 한여름에 나는 하루가 멀다 하고 곽지에 갔다. 노천탕에는 어린 아이들이 튜브를 타고 물놀이를 하고 새벽부터 밭일하다 따가운 햇살에 일을 거둔 할머니들도 땀 씻으러 종종 오셨다. 그 날도 나는 모래가 잔뜩 묻은 아이를 데리고 노천탕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서너 걸음 만에 그만 아연실색하고 말았다. 용천수 폭포아래 서서 머리에 잔뜩 뒤집어 쓴 하얀 거품을 자신의 온 몸을 거쳐 욕탕으로 흘려보내고 있는 한 여자가 있었다. 그 거품은 튜브에 탄 어린 아이들 서넛의 사이를 둥둥 떠다니다 바다로 향해 난 욕탕의 구멍으로 이내 사라졌다. 그 여자는, 아니, 그 '엄마'는 곁에 있는 두 딸에게 샴푸를 건네며 '이젠 네 차례' 라고 손짓하고는 벗어놓은 옷더미 쪽으로 향했다. 나는 그저 입만 벌리고 바라보다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서 달려가 냉큼 샴푸 통을 빼앗고 물었다. "이 거품이 어디로 갈 것 같아?" 아이는 머뭇거리다 답했다. "바다요……." "이 거품이 바다로 흘러가도 괜찮을까?" 나는 다시 물었다. 아이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답했다. "아니요, 물고기가 먹어요." 아이는 샴푸 통을 들고 그대로 엄마에게 갔다. 아이 엄마는 나를 흘깃 한 번 보았다. 그리고 노천탕 물이 바다로 흘러 들어가는 입구에 앉아 빨래를 하고 있던 할머니도 나를 흘깃 쳐다보았다. 하지만 할머니는 마지막 헹굼까지 다 하신 다음에야 일어섰다. 나는 읍사무소에 전화를 걸어 항의했다. 어떻게 이 깨끗한 곽지에서, 어린아이가 몸을 담그고 노는 노천탕에 비누거품을 줄줄 풀어놓게 허용하는지, 한 줌의 거품도 흘려보내선 안 되는 바다의 길목에 어찌하여 단 한마디의 규제사항도 붙여놓지 않은 것인지 나는 맹렬히 따졌다. 그 날 이후, 곽지 노천탕에는 비로소 '비누사용을 하지 마세요'라 씌어진 푯말이 세워졌다. 해마다 순찰하듯 나는 곽지에 들러 푯말이 여전히 잘 세워져 있는지 확인한다. 그런데 꼿꼿하게 서서 노천탕의 거품을 규제하고 있는 푯말을 확인하노라면 안심이 되기보다는 오히려 씁쓸한 마음이 든다. 이런 지극히 당연한 것조차도 글자로 써서 푯말을 세워놓아야 한단 말인가? 쓰레기가 넘쳐나고 거의 매일 상당량의 오폐수가 바다 속으로 잠입하는 지경에 이른 제주의 오늘날은 일일이 지키고 앉아 양심을 규제하지 않은 결과인 것일까? 규제 해야만 가까스로 지켜지고 그마저도 지키기 불편하면 소용없는 네 글자, '청정제주'이다. 집 밖에 '청정제주'를 만들기 위해 집 안에 쓰레기를 쌓아두어야 하는 쓰레기 요일별 배출제는 지키기 힘든 규제임에 틀림없다. 집 안팎의 쓰레기를 합치면 이전과 매 한가지 일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지키기 힘들어도 규제니까 지킨다. 하지만 불편함의 목적인 '청정함'을 피부로 느낄 수 있는 방법이 나왔으면 좋겠다. 규제보다 강한 것이 '보상'이기 때문이다. 나는 제주에 이주해 12년간 쓰레기를 보태왔다. 나 한 사람만 스스로를 규제했어도 제주도의 오늘은 조금 더 청정했을 것이다. 얼음장 같은 용천수에 내 양심부터 씻고 싶다. <허수경 방송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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