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광장]노인 vs 바다
  • 입력 : 2017. 07.25(화) 00:00
  • 편집부 기자 hl@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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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의 조그만 어촌마을 쪽배를 타고 홀로 고기잡이하는 노인이 있었다. 몇 달 동안 물고기 한 마리 잡지 못한 그를 마을에서는 '운이 다한 노인' 취급하며 아무도 가까이하려 하지 않았다. 어느 날 홀로 배를 타고 나간 그의 낚싯대에 거대한 물고기가 걸려들고 그의 쪽배보다 더 큰 청새치에 의해 망망대해로 끌려 나온다. 며칠 밤낮으로 사투를 벌인 끝에 드디어 청새치를 잡은 그는 의기양양하게 마을 항구를 향해 돛을 올린다. 하지만 해안에 도착했을 때 그가 끌고 온 청새치는 피 냄새를 맡고 몰려든 상어들에 의해 이미 다 뜯어 먹히고 앙상한 뼈만 남은 상태였다. 무사히 돌아온 노인은 자신의 조그만 오두막집에 지친 몸을 누이고 다시 아프리카의 사자가 되는 꿈을 꾸며 잠이 든다.

누구나 다 아는 이 이야기는 20세기 대문호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이다. 바다라는 자연을 무대로 펼쳐지는 이 드라마는 자신에게 주어진 고난을 정면에서 받아들이고 묵묵히 시련을 견디는 강인한 노인의 모습을 통해, 휴머니즘의 정수를 보여준 걸작 중 걸작이다.

거친 바다에 오롯이 인생을 맡기며 한평생 산 강인한 노인의 이야기가 어디 이뿐이랴? 제주도에 따르면 지난해 말 도내 현직 해녀 수는 4005명이며 이 중 65세 이상이 2921명으로 73%나 된다. 우리나라에서는 65세 이상을 노인이라 규정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제주 해녀는 우리나라에서는 '노인'이라 부르는 그리고 미국에서는 '은퇴연령'인 65세에 가장 최고의 시절을 누린다. 자식들은 이미 출가시켰고 천성이 부지런한 탓에 노후 걱정은 안 해도 된다. 수십 년 간의 물질은 최고의 기량으로 노련해졌고 물질하는 앞바다는 마치 당신의 부엌 찬장마냥 훤히 꿰뚫고 있어 수확량도 상당하다.

하지만 바다는 마냥 낭만적이거나 녹록한 상대만은 아니다. 거친 바다에 찢긴 낡은 고무 옷 사이로 살이 에이는 겨울 바닷물이 들어갈세라 손수 깁고, 높은 수압으로 인한 고질적인 두통과 귀의 염증 그리고 관절 마디마디 쑤시는 신체적 고통을 진통제로 다스리며 물질하는 고령 해녀들께 물질이 힘들지 않으시냐고 물으면 한사코 아니라고 손사래를 치신다. 바다 잠수를 전문으로 하는 필자에게 그들의 말이 곧이곧대로 들리지는 않는다. 그들의 고통은 잠수복을 입고 물에 들어가 본 사람만이 안다.

고령의 제주 해녀는 1년에 10여명씩 조업 중 사망한다. 하지만 고령 해녀의 사고 예방 해법을 단순히 물질의 나이 제한이나 조기 은퇴로 풀어서는 안 된다. '할망바다' 같은 나눔과 상생의 방법으로 그 해법에서 찾아야 한다. 왜냐하면, 해녀란 직업이 아니라, 그들이 평생 바다와 더불어 살아온 정체성이며 그들에게 물질은 단순한 돈벌이가 아니라, 그 이상의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도정은 지속적으로 해녀에 대한 관심과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이제는 산업적 측면뿐만 아니라 문화적 측면에서 해녀의 가치와 의미를 이해하고 그에 따른 보존과 전승에도 힘을 써 왔다. 조금 더 바란다면 대다수가 해녀이기 이전에 노인인 이들을 이제는 도차원을 넘어서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지원 정책이 절실히 요구된다.

이들 고령 해녀들이 건강하고 안전하게 물질을 계속할 수 있게, 그리고 그들이 그들의 전통을 보존하고 전승하게끔 지원하는 것은 단지 그들만의 혜택으로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제주도의 전통이며 상징인 해녀의 지속가능성은 제주도의, 더 나아가 대한민국의 건강함을 함의(含意)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한영 비영리법인 제주해녀문화보존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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