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광장]명절, 유쾌한 홈커밍 기대

[문화광장]명절, 유쾌한 홈커밍 기대
  • 입력 : 2017. 09.22(금) 00:00
  • 김현석 기자 ik012@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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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막내 아들 집이라 하여 제사 명절을 집에서 하지 않는 혜택을 누렸는데 몇 해 전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우리 집에서도 제사 명절을 하기 시작하여 일 년에 3번은 대 행사를 치른다. 직장 다니는 핑계로 집안일에 신경을 안 쓰기도 했지만 손 솜씨가 전혀 없는 나로서는 여간 체면이 안 서는 행사이다. 그럼에도 일정 역할을 해야 하기에 항상 커피 바리스타로 정해져 있지만 음식 준비를 걱정하는 팔순 노모 앞에서 마냥 편치 않아 마이너스 손이라도 보탤 수밖에 없다. 그러면서 왜 이렇게 음식을 많이 해야 할까? 누구를 위한 것일까? 라고 투덜거려보지만 정성을 다해야 한다는 어머니의 말 한마디에 툭 나왔던 입은 본전도 못 뽑고 만다.

명절 음식의 하이라이트는 전(煎)인 것 같다. 아침부터 시작한 음식 만들기로 온 집안이 기름 냄새로 가득한다. 음식이 귀했던 시절 전은 모처럼 배에 기름기를 충족시켜주는 특별한 음식으로 출발된 것 같은데 시대가 바뀌어도 옵션이 아닌 필수 음식이다. 전은 제사상에 빠질 수 없는 음식이기도 하지만 모처럼 모인 가족이나 찾아온 손님에게 나눠줄 만큼 넉넉하게 전을 부친다.

지금은 음식이 모자라서 전전긍긍하는 시대는 아니다. 물론 음식도 전통이다. 그러나 전통이라는 것도 살아온 방식을 반영하는 시대의 산물이다. 그 전통이 마련되는 데에 얼마나 많은 시간과 공이 들었을지 생각하면 고마운 일이다. 하지만 예전부터 해왔으니까 무조건 지켜야 하는지는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 많은 음식을 준비하는 일도, 음식 장만과 정리를 온통 여성에게만 떠넘기는 것도, 남은 음식을 버리는 것도 변화가 필요하다. 육지에서 내려오는 며느리들은 힘겨운 교통대란에 시달리고 기껏 도착해서는 필요한 양 이상의 음식을 장만해야 하는 전투의 연속이다.

이번 추석에도 명절 전투가 끝난 후 동네 목욕탕과 사우나에 여성들로만 가득한 진풍경을 계속 봐야 하는 것일까? 더구나 몇 날을 명절 음식 처리하느라 고생하다가 끝내는 물려서 버리거나, 남은 음식 활용법 레시피까지 나올 정도인 이런 낭비가 올해도 반복되어야 할까?

더구나 올해는 10월 2일이 임시 공휴일로 지정됨에 따라 긴 명절 연휴를 맞이하게 되었다. 임시 공휴일로 지정된 배경 중 하나는 국민들이 충분한 휴식을 취해 일과 삶, 가정과 직장생활에서 조화를 누릴 수 있기를 바라는 이유도 한 대목이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고유문화처럼 되어버린 명절 증후군과 명절 이후 높아지는 이혼율을 보면 걱정이 앞서기도 한다.

명절증후군은 우리 사회에서만 발병하는 정신적·육체적 현상으로 주로 명절을 전후해 주부들이 제사 준비, 음식 장만, 차례상 차리기, 손님상 차리기 등과 같은 가사노동으로 가장 큰 스트레스를 받아 발생하는 증상이다.

명절은 흩어진 가족이 모여 조상께 살아온 한 해를 고하고 감사하며 서로 덕담하며 축복하는 날이다. 아무쪼록 이번 명절 연휴가 여성들에게 전투의 시간이 되지 않기를 기대해 본다. 명절 연휴에 모처럼 가족이 다함께 참여하여 즐길 수 있는 좋은 계획들을 가져보면 어떨까? 우리 제주는 가족의례의 전통은 강하지만, 가족 구성원들이 친밀하게 함께 하는 문화는 익숙하지 않은 듯하다. 이번 기회에 가족 전체가 제주 한 바퀴를 쉬엄쉬엄 여행하는 것은 어떤가? 남아도는 명절 음식이라도 싸가지고 말이다.

남성과 마찬가지로 여성도 직장 일과 '가사 일'을 멈추고 휴식의 즐거움, 홈커밍의 즐거움을 원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이번 명절은 남녀 모두가 유쾌한 홈커밍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이은희 제주여성가족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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