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림의 현장시선]영화, 영화관 그리고 원도심 재생

[고영림의 현장시선]영화, 영화관 그리고 원도심 재생
  • 입력 : 2017. 11.17(금) 00:00
  • 김현석 기자 ik012@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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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세기 넘게 자리를 지켰던 제주시 원도심의 영화관들이 다 사라졌다. 건물은 남아있을지 모르지만 영화관 기능은 소멸됐다. 제주극장, 제일극장, 아세아극장, 동양극장, 코리아극장은 이제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중장년 세대에게 이 영화관 이름들이 불러일으키는 추억은 하늘의 별만큼이나 많을 것이다. 명절날 부모님 손 잡고 가서 본 영화, 학교 단체관람으로 본 영화, 울적할 때 친구와 함께 본 영화, 연애할 때 본 영화 등 이 영화들이 준 기쁨과 위안으로 살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필자에게도 특별한 추억의 영화관이 있다. 동양극장과 코리아극장이다. 1965년 준공된 동문시장 2층에 자리한 동양극장은 당시 제주도민에게 최고의 공간이나 다름없었다. TV가 일반화되지 않았던 시절에 1000석 가까운 넓은 공간에서 큰 화면으로 영화를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동양극장의 보안을 책임지던 완장 찬 아저씨는 필자의 기억에 각인된 분이다. 초등학생이었던 필자를 가끔 후문으로 들어가게 해서 무료로 영화를 보는 특권을 누리게 해주었다. 그리고 코리아극장은 탑동이 매립되기 전, 제주시 앞바다에서 가장 가까운 장소에 있는 영화관이었다. 겨울에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대단했지만 영화를 본다는 설렘과 기대로 바람 따위는 문제가 아니었다.

시대가 바뀌면서 단관 대형 극장들이 하나둘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칠성로 인근의 코리아극장은 신축 건물로 꿋꿋이 같은 자리를 지켜왔다. 2010년부터 제주영상위원회가 운영하는 영화문화예술센터로 재탄생하였고 제주시 원도심의 유일한 공공재 영화관이 되었다. 제주특별자치도가 제주시 원도심을 문화예술적으로 재생하겠다는 야심 찬 정책으로 코리아극장에 영화문화예술센터를 설치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필자가 대표로 있는 단체가 주최하고 있는 제주프랑스영화제가 시작된 계기는 코리아극장이 같은 장소를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제주도민의 희로애락을 함께 했던 이 영화관에 다양한 세대가 찾아와서 원도심의 역사적 가치를 공유하면서 소통하는 기회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된 영화제다. 코리아극장 즉 영화문화예술센터에서 청년, 중장년, 노년세대가 함께 지구 반대편에서 만들어진 다양한 장르의 프랑스 영화를 감상하는 모습만큼 보람 있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10년도 버티지 못하고 영화문화예술센터는 코리아극장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영화관 건물이 외지 자본에 팔렸기 때문이다. 제주특별자치도가 건물을 매입하지 않고 임대료를 내면서 운영하고 있었는데 이런 결과를 예측하지 못한 용두사미 정책을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 상업시설에 둘러싸여 있는 영화문화예술센터가 제주의 퐁피두센터 역할을 하고 있다는 도민의 자부심을 무참히 무너뜨린 것이나 다름없다. 영화문화예술센터는 올해 4월부터 옛 제주의료원 맞은편에 있는 영화관에 옹색하게 세 들어서 이전했다. 단독건물에 있었던 영화문화예술센터가 이렇게 초라한 모습이 되었으니 자존심이 상하지 않을 수 없다.

결론을 대신하여 제주특별자치도에게 묻는다. 첫째, 영화문화예술센터의 셋방살이 신세가 맞는 것인가. 둘째, 원도심에서 노력하고 있는 문화예술인들의 어려움을 비롯한 현장의 문제를 파악하려는 역지사지의 진정성 있는 행정의 의지가 있는가. 셋째, 원도심의 문화예술적 재생정책이 제주시 원도심 전체가 아닌 옛 제주의료원 지역에 집중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도민의 질문을 공허한 메아리로 만들지 않는 성실한 대답을 기다린다.

<고영림 (사)제주국제문화교류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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