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외국인 처제 성폭력사건 새 국면

제주 외국인 처제 성폭력사건 새 국면
1심 "절박한 위험 모면 시도 없어" 무죄 판결
전국 38개 단체 공동대책위 구성 강력 반발
검찰, 항소심서 공판·성폭력전담검사 투입
  • 입력 : 2017. 12.18(월) 17:58
  • 표성준기자 sjpyo@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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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국적의 처제 성폭행 사건에 대응하기 위해 전국 38개 여성단체로 구성된 '이주여성 친족성폭력 사건에 따른 공동대책위원회'가 18일 제주도의회 도민의 방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피고인에 대한 엄벌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결혼 3일을 앞두고 필리핀 국적의 예비처제를 성폭행한 혐의로 1심 재판을 받은 피고인이 무죄를 선고받자 전국의 38개 단체가 대책위를 구성하고 공동 대응에 나섰다. 이들 단체는 재판부가 친족성폭력 피해자의 처참한 고통을 외면했다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 검찰도 항소심에 공판검사와 함께 성폭력전담검사를 투입하겠다고 밝혀 항소심 결과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 처제 성폭행 사건의 전말

 A(38)씨는 필리핀 국적의 여성과 결혼을 3일 앞둔 지난 2월 15일 새벽 처제 B(20)씨를 성폭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B씨는 당시 거실에서 잠을 자던 중 1차 강제추행을 당했으며, 잠에서 깨어난 뒤에는 안방에 끌려가 2차 성폭력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사건 당시 현장에는 B씨의 조카가 자고 있었으며, 옆방에는 부친과 오빠가 있었지만 B씨는 두려워 저항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B씨는 재판 과정에서 "위협적인 행동이나 폭행 없이 위에서 누르는 방법으로 항거를 억압했지만 과거 경험으로 인한 트라우마가 있는데다 무섭고 당황스러워 목소리도 나오지 않았다"며 "아버지가 심장병을 앓고 있어 도움을 요청할 수도 없었다"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반면 A씨는 성관계를 가진 사실은 있지만 피해자가 달리 거부 의사를 표시하지 않은 상황에서 이뤄졌다며, 폭행이나 협박으로 성폭행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는 증거가 부족하다며 지난 10월 19일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해자가 '몸부림을 쳤다'거나 '겁이 나 이불을 뒤집어쓴 채로 누워있었다'거나 또는 '이후 울다 잠이 들었다'는 것 이외에는 절박한 위험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어떤한 시도도 하지 못했다는 것은 수긍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며 "성폭행당했다는 15일 피해자와 피고인이 단 둘이 차를 타고 결혼식에 사용할 답례품을 찾으러 갔다가 카페로 가서 차를 마시고 사진을 찍기도 하는 등 성폭행 피해를 당했다는 사람이 그 직후에 보일 수 있는 행동이라고 보기에는 납득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고 무죄 선고 이유를 밝혔다.

# 공대위 "저항 안한 게 아니라 못한 것"

 피해사실을 접한 전국 단위의 기관과 지역단체들은 의견을 모아 재판부에 단체 연명 탄원서를 제출했다. 그러나 무죄 판결이 나오자 4명의 공동변호인과 함께 제주외국인평화공동체를 비롯해 전국 38개 단체로 이주여성 친족성폭력 사건에 따른 공동대책위를 구성해 대응에 나섰다. 공대위는 18일 제주도의회 도민의방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친족성폭력의 특성을 고려해야 한다 ▷항거불능 상태로 자고 있는 피해자에게 강제추행을 했다 ▷피해자는 형부 초청으로 입국한 외국인 가족으로 적극 대응할 수 없는 위치에 있었다 ▷피해자에게 성폭력이었음을 입증하라는 논리는 바뀌어야 한다고 재판부에 요구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강혜숙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공동대표는 "재판부는 피해자에게 왜 저항하지 않았냐고 묻지만 옆에 있는 조카가 깰까봐 저항하지 못하고, 옆방의 심장병을 앓는 아버지가 쓰러질까봐 저항하지 못하고, 결혼을 불과 3일 앞둔 언니의 삶이 어떻게 전개될지 몰라 걱정이 되어 저항하지 못한 것"이라며 "더욱 중요한 것은 한국에서 언니의 체류권을 쥐고 있고, 현재 한국에서 유일하게 믿을 존재인 형부가 처제인 나를 강간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고, 그 놀라운 충격과 공포에 휩싸여 몸은 얼음처럼 굳어져버려 저항하지 못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강 대표는 이어 "재판부는 피해자에게 왜 저항하지 않았냐고 물을 것이 아니라 가해자에게 왜 집에 와서 안방에 가지 않고 거실에서 자는 처제를 성추행했는지, 왜 강제로 안방에 끌고 가서 강간했는지, 왜 잠에서 깬 조카를 재우면서까지 집요하게 처제를 강간했는지 물어야 한다"며 "저항하지 못한 것이 동의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재판부는 가해자에게 피해자로부터 적극적인 합의의 말이나 행동을 들었느냐고 물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 정부에 치유 위한 체류권 보장 요구

 이 사건은 언니와 형부가 신혼여행을 떠난 뒤 피해자가 언니 친구에게 고백하면서 세상에 드러났다. 사건 피해자는 현재 성폭력 피해자지원기관의 상담을 받으며 보호시설에 입소해 보호를 받고 있다. 공대위에 따르면 성폭력의 충격으로 정신과 진료와 심리치료를 받고 있는 피해자는 그동안 언니와 함께 법원에 출석해 적극적으로 입장을 피력해왔다.

 공대위는 향후 항소심 진행과정에서 법원에 공동 의견서를 제출하고, 각 단체별로 개별 릴레이 의견서를 제출해 피해자의 입장을 적극 개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한 녹취록도 재판부에 제출할 예정이다. 또한 정부에는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치유와 피해에 대한 보상, 충분한 치유를 위한 체류권 보장을 요구했다.

 한편 검찰은 20일 예정된 항소심 공판에 1심 공판검사와 함께 성폭력전담 검사를 투입해 유죄선고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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