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성의 한라시론] 스승의 날 뒤안길에서

[김용성의 한라시론] 스승의 날 뒤안길에서
  • 입력 : 2018. 05.17(목) 00:00
  • 김현석 기자 ik012@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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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의 날 즈음해 올해 유독 눈에 띄는 기사가 있었다. 바로 스승의 날 폐지 청원 기사였다. 현직 초등학교 교사가 제기한 이 청원은 현장 교사들이 의외로 많이 호응해 이슈가 된 바 있다. 교사들은 왜 자신들의 날을 스스로 폐지해 달라고 했던 걸까?

스승의 날을 맞아 선생님께 편지 쓰고 옛 스승을 찾아 인사드리는 경우도 많긴 하지만, 현실에서 스승의 날은 이처럼 아름답지만은 않다. 스승의 날이 다가올수록 선생님들은 더 많이 긴장하게 된다. 학생 수는 줄었지만 학생 하나하나는 예전과 달리 일당백을 하고, 학부모는 자기 아이에게 조금이라도 해가 되면 '이해관계 당사자'로 교사를 압박한다. 행여 촌지라도 받을까봐, 아이를 차별이라도 할까봐 교사를 잠재적 범죄자로 보는 듯한 사회 분위기도 교사의 마음을 무겁게 한다. 일부 교사의 잘못된 일탈이 이런 분위기를 만드는데 일조했다는 점을 충분히 인정하더라도 말이다.

간혹 상담 때 아직도 선물을 들고 오는 학부모들이 있어도 서운하지 않게 정중히 거절한다. 밤 10시인데도 알림장에 기록한 내용을 문자로 물어보는 학부모도 있다. 마냥 친구 사이처럼 아무 때나 카카오톡 문자를 보내기도 한다. 선생님에게 욕설하고 폭력 휘두르는 일 등의 사례도 심심찮게 있다. '가르침'과 '배움'을 사소한 '이해관계'의 하나로 접근해, 부당한 압력으로 '사적 이익'을 얻고자 하는 사례가 교육현장에서 늘어나고 있다. 이제 교육현장에서 '군사부일체'라는 말은 식상하기까지 하다.

선생님들은 스승의 날을 왜 부담스러워할까? 좋은 대우를 못 받아서? 아니면 존경을 못 받아서? 모두 아니다. 무엇보다 선생님들을 더욱 힘들게 하는 것은 선생님을 선생님으로 바라보지 않고, 스승으로 존중하지 않는 분위기가 어느덧 우리 사회에 만연되어 가고 있다는 점이다. 스승의 보람을 깎아 내리는 분위기에서, 단지 직업인으로서 '스승의 날'을 즐기라 한다면 어느 스승이 이날을 맘 편히 즐긴다 하겠는가?

빠르게 변해가는 사회는 지식뿐만 아니라 삶의 지혜와 바른 인격교육과 전인교육을 선생님들에게 요구하고 있다. 아울러 학습자 눈높이에 맞게 학교가 더욱 정교한 수요자 맞춤형 교육을 해주길 요구하고 있다. 이에 선생님들은 이러한 변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세상이 변했고 적응해야 하는 과정으로 이해한다. 교육 서비스를 수요자 눈높이에 맞추어 학습자의 만족도를 최대한 높이려고 노력한다. 학교는 분명 변하고 있고, 선생님은 그 중심에 있다. 선생님들은 스스로 부족함이 없도록 연수 받고 연구하고 더 나은 교육 방법을 위해 대화하고 토론하면서 교육현장에서 열심히 땀을 흘리고 있다.

지난 2월에 있었던 고교 졸업 30주년 동창회 영상을 본 적이 있다. 어느덧 퇴임을 하신 선생님이 눈물을 흘리면서 제자들과 정을 나누는 모습을 보면서 울컥했다. 30년이란 시간이 지났어도 사제의 정은 변한 게 하나 없었다.

요컨대 선생님들이 바라는 건 다른 것 없다. 선생님을 그저 선생님으로 인정하고 존중해달라는 것밖에. 선생님들이 '스승'으로 보람을 가질 수 있도록, '스승'으로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우리 사회가 끊임없이 교육적인 분위기 조성에 관심을 갖고 그 토대를 마련해 줘야 한다. 교단에서 자긍심을 가지고 교육에 임할 수 있도록 우리 사회가 선생님들의 어깨를 펴드려야 한다. 그래야 선생님들은 '스승의 날'을 '스승으로서' 기쁘게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김용성 시인·번역가·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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