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보육교사 살인 피의자 석방… 경찰 '당황'

제주 보육교사 살인 피의자 석방… 경찰 '당황'
18일 제주지법 '증거 불충분'으로 구속영장 기각
피의자 "지금 너무 힘들다"고 밝힌 후 현장 떠나
경찰 "사건 종결 아니다… 증거 보강해 해결할 것"
  • 입력 : 2018. 05.19(토) 02:06
  • 송은범기자 seb1119@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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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새벽 0시53분쯤 2009년 보육교사 살인사건 피의자로 지목된 박모(49)씨가 석방돼 입감됐던 제주동부경찰서 유치장을 빠져나가는 모습. 송은범기자

제주 보육교사 살인사건의 피의자로 지목된 박모(49)씨가 석방됐다.

 제주지방법원 양태경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18일 오후 11시30분쯤 강간살인 혐의로 박씨에게 신청됐던 구속 영장을 기각했다. 이는 박씨가 지난 16일 오전 8시20분쯤 경북 영주에서 강간살인 혐의로 체포된 지 60여시간 만이다.

 구속 영장이 기각되면서 제주동부경찰서 유치장에 수감돼 있던 박씨는 곧바로 풀려날 수 있었지만 자동차관리법 위반 혐의로 납부하지 않은 벌금 50만원 때문에 석방은 다소 지연됐다.

 결국 영장 신청이 기각되고 1시간 23분이 지난 19일 0시53분쯤 박씨는 유치장을 나설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마음 고생이 심했을 것 같은데 심경이 어떠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지금 너무 힘들다"고 답했다. 이후에는 제주동부경찰서 정문에서 미리 기다리고 있던 지인의 차량에 탑승해 현장을 빠져나갔다.

 '증거 불충분'을 이유로 법원이 구속 영장을 기각하면서 혐의 입증에 자신감을 보였던 경찰의 입장이 난처하게 됐다.

 양태경 부장판사는 "박씨의 주장이나 변명에 모순되거나 석연치 않은 점이 일부 있기는 하지만 경찰이 제출한 자료들을 종합할 때 박씨의 택시에 피해자가 탑승한 사실에 대한 소명이 부족하다"며 "현 단계에서 박씨를 구속해야 할 사유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어 양 부장판사는 "피해자가 실종됐던 2009년 2월 1일 새벽에 제주시 애월읍 일대에서 피의자의 택시와 같은 차종의 차량이 CCTV에 찍히긴 했다"며 "그러나 이 영상에 나온 차량이 피의자의 택시와 동일한 것으로 단정지을 수 없다"고 설명했다.

 특히 경찰이 유력한 증거라고 밝혔던 '미세 섬유'에 대해서도 법원은 증거 능력이 부족하다고 봤다.

 양 부장판사는 "박씨의 택시 안에서 당시 피해자가 입었던 무스탕 털과 유사한 섬유가 발견됐고, 피해자의 우측 무릎과 어깨에서는 박씨가 당시 입었던 진청색 남방과 유사한 섬유가 발견됐다"며 "하지만 이러한 증거는 피해자 혹은 피의자의 것과 동일한 것이나 아니라 '유사'하다는 의미에 그친다"고 증거로 채택할 수 없는 이유를 말했다.

 이 밖에도 법원 경찰이 실시한 거짓말탐지기와 POT(긴장정점), 뇌파검사 등에 대해서도 형사소송법상 증거능력으로 인정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밝혔다.

 앞서 제주지방경찰청 장기미제수사팀은 이번 사건의 재수사를 결정하고 동물 사체를 이용한 실험을 통해 사망 시점을 재구성했으며, 이를 토대로 당시 수집됐던 증거들을 재분석해 박씨를 체포했다.

 

19일 새벽 0시53분쯤 2009년 보육교사 살인사건 피의자로 지목된 박모(49)씨가 석방돼 입감됐던 제주동부경찰서 유치장을 빠져나가는 모습. 송은범기자

이에 대해 제주지방경찰청 장기미제수사팀은 "9년 전 발생한 미제사건에 대해 과학수사 기법을 동원해 재수사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고, 기존 증거를 재분석해 추가 증거를 수집하는 등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며 "이번 구속영장 기각이 사건의 종결은 아니기 때문에 향후 관련 증거를 보강해 사건 해결을 위해 더욱 노력하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한편 박씨는 지난 2009년 2월 8일 제주시 애월읍 고내리 고내봉 옆 배수로에서 목이 졸려 숨진 채 발견된 보육교사 이모(당시 27세·여)씨를 살해한 혐의를 받은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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