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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사람 이방익 표류현장을 가다
[제주사람 이방익 표류현장을 가다] (7)복건성 성도 복주
해 넘겨도 고향 못간 표류민들 품었던 고찰 그대로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입력 : 2018. 08.05. 2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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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로 불타 없어진 대웅보전 자리에서 바라본 법해사 관음각. 사진=진선희기자

푸텐 등 거쳐 복건성문 안 법해사로
945년 건립 흥망 거듭하며 천년 세월
명·청건축물 모인 삼방칠항 걸었을까
이방익 의복 보며 눈물 흘렸던 사연은

복건성(福建省, 푸젠성)의 성도인 복주(福州, 푸저우)시에 도착한 날은 태풍 '마리아'가 휩쓸고 간 직후였다. 복건성 일대 인명 사고와 태풍 피해가 컸다는 소식이 들렸지만 거리는 거짓말처럼 말짱해보였다. 도시를 상징하는 용나무, 열매 달린 망고나무가 가로수로 길게 늘어선 인구 757만(2016년 기준)의 복주시는 맑은 하늘을 보여주며 조선시대 제주사람 이방익의 표류 송환 노정을 따라가고 있는 취재팀을 반겼다.

▶복건성불교협회 사무실 활용 명맥="복건성에 이르니 법해사라는 절이 있었는데 나산당이란 현판이 걸려 있다. 작은 집으로 들어가니 관왕 화상이 윗자리에 앉혀져 있고 차례로 금불상을 앉혔는데 그곳의 관원들이 초하루와 보름에 와서 분향하는 모습이 우리나라와 진배없으니 중국 사람들이 불상 모시는 것이 극진함을 알 수 있었다."

이방익이 남긴 자료로 보이는 한글 '표해록'(권무일 해제)은 복건성 복주의 첫 인상을 법해사(法海寺)로 드러낸다. 천주부를 떠나 흥화부(興化府, 지금의 푸텐) 등을 거쳐 다다른 곳이었다. 연암 박지원의 '서이방익사'에도 '정월 초 5일 복건성에 들어서니 문안에 법해사라는 절이 있고'라는 대목이 나온다.

지난달 13일, 법해사는 복주 나산(羅山) 지역에 그 이름 그대로 있었다. 945년 건립된 목조 건축물인 법해사는 1000년 넘는 세월 동안 중수를 거듭하며 흥망을 반복했다. 흥복원(興福院)으로 출발해 송나라 때 법해사로 바뀌었고 12세기 초에 도교 사원으로 또 한번 명칭이 달라진다. 4채의 건물 중에서 2011년 2월 큰 화재로 대웅보전이 전소되는 아픔도 겪었다. 지금은 복건성·복주시불교협회사무실로 쓰이며 법해사의 명맥을 이어오고 있지만 관음각이 너무 낡아 붕괴 위험에 처한 모습이었다. 이방익에 얽힌 공간 하나가 스러질까 염려됐다.

'복주의 명함'으로 불리는 삼방칠항(三坊七巷)에서 위안을 얻어야 할까. 삼방칠항은 당나라 시기인 900년대부터 형성된 10개의 거리를 뜻하는 말로 훗날 붙여진 명칭이다. 명·청건축박물관이라고 칭할 만큼 중국의 역사문화가 살아있다. 높다란 빌딩을 배경 삼아 골목골목 자리잡은 가옥 270채 중에서 159채는 보존건축물로 지정되어 있다. 삼방칠항의 가운데 축인 1㎞ 길이의 남후가(南後街)는 이른 시간부터 방문객들로 붐볐다. 220여년 전 이방익도 이 동네 어디쯤을 걸었을지 모른다.

삼방칠항의 가운데 축인 남후가. 명·청건축박물관으로 불릴 만큼 중국의 살아있는 역사를 보여주는 거리다

▶"명나라 생각하고 경모하는 뜻일 것"=이방익 일행이 복건성의 정치·경제·문화 중심지였던 복주부에 당도한 때는 1797년으로 표류 뒤 해를 넘긴 시기였다. 하지만 해가 바뀌어도 돌아갈 날을 기약하기 어려웠다. 고향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은 이방익의 몸에 이상을 불러왔던 것 같다. 표해록에는 '2월 초 3일에 신병이 극심'하다는 문장이 보인다.

표류 기록마다 날짜가 조금씩 다르지만 그가 일행들과 복주 일대에 머문 기간은 적어도 한달이 넘는다. 2월 보름이 끼어있던 때였는데 이방익은 보리가 익어 누르고 백초가 무성해 "우리나라 사오월 같았다"고 했다. 남방 기후와 문화를 몸소 체험한 셈이다.

복건성·복주시불교협회사무실로 쓰이고 있는 법해사 입구.

복주부에서 이방익은 뜻밖의 일을 겪는다. 거리에 모인 사람들이 이방익 일행이 쓴 관을 보고 가만히 다가와 가져가려고 한다. '서이방익사'에도 그 정황을 두고 "어떤 이는 우리의 의복을 입어보고 서로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으며, 또 어떤 이는 옷을 안고 돌아가 가족들에게 보여주고 돌아와서는 가족과 돌려보면서 소중하게 감상하였다고 말하였다"고 적었다. 이에 대해 당대의 '대문호' 연암은 장주(장州, 장저우)에 '당나라 시대에 신라가 조공하러 들어간 땅'인 신라현이 있어 그 후예들의 고국에 대한 향수로 해석했지만 더 따져봐야 한다.

반면 이방익은 표해록에서 "의심컨대 명나라를 생각하고 귀하게 여겨 다투어 경모하는 뜻일 것"이라고 여겼다. 명나라 유민들이 자신들의 의복에서 지금은 사라진 나라의 기억을 일깨웠을 것이란 해석이었다.

자문위원=권무일(소설가) 심규호(제주국제대 석좌교수)

"목적없는 우연적 사건 표류… 중·한 양국 소중한 유산으로"

유걸 복건성지방지편찬위 부주임

"표류는 목적이 없는 우연적인 사건이지만 그것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더 넓은 차원에서 중·한 교류의 의미를 갖는다는 점에서 영광스럽고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지난달 13일 복주시에 있는 복건성지방지편찬위원회 회의실. 유걸(兪杰) 지방지편찬위원회 부주임은 제주 방문단을 통해 이방익의 표류 배경을 알게 되었다며 이같이 밝혔다. 부임한지 6년이 되었다는 그는 해외 방문단을 맞이한 일이 이번이 처음이라고 했다.

그는 '구사일생'이란 말부터 꺼냈다. 이방익 일행이 먼 바다를 표류하다 살아남아 중국을 거쳐 자기 나라로 무사히 돌아간 사연을 두고 하는 이야기였다.

"바닷물이 있는 곳에 화인(華人) 즉 중국 사람이 있고, 화인이 있는 곳에는 마조신앙이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마조 때문에 그런 기적이 일어났다고 봅니다."

바닷길을 지켜준다는 마조 전설 속에 등장하는 말못하는 여인인 임묵은 실존 인물로 복건성 보전(?田, 푸텐) 미주도(湄洲島)가 고향이라고 전해진다. 유걸 부주임은 마조를 통해 이방익과 중국, 복건성과 제주의 인연이 시작되었음을 말하려 했다.

그는 한문 자료로 접할 수 있는 연암의 '서이방익사'로 이방익 표류기를 살펴본 듯 표류 기록에 등장하는 청나라 당시의 송환 노선을 언급하며 그중 몇 가지 특징을 소개했다. '평설 이방익 표류기'의 저자인 권무일 작가의 제안을 듣고 따라 이방익이 머물렀던 곳으로 추정되는 하문시 향산암사 주자서원의 복원 필요성을 해당 관청에 전하겠다는 그는 "주자서원 보호는 우리의 의무"라고 덧붙였다. 천주의 명승지 낙양교에 대해서는 '인민의 힘'으로 지어졌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방익이 조선으로 돌아간 후 표류와 관련한 기록을 남겼습니다. 그것이 오늘날 중·한 양국의 소중한 유산이 되었는데 앞으로 이를 통한 문화 교류가 깊고 넓어지길 바랍니다."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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