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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압록강·두만강을 가다] (11·끝)두만강 르포
잠들 수 없는 강… 기회의 땅 부상 위한 개발열기 '꿈틀'
이윤형 선임 기자 yhlee@ihalla.com
입력 : 2018. 10.30. 2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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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영토인 방천 용호각 전망대에서 바라본 3국 국경지대. 두만강을 경계로 오른쪽이 북녘땅, 왼쪽이 러시아 하산 지역이다. 상단에 북한과 러시아를 연결하는 철도가 보인다.

북·중·러 국경선 맞댄 '방천'
용호각 전망대 등 집중 투자

중, 동해로 나가는 출구 막히자
'차항출해' 전략 수립 개발 의욕

압록강과 두만강은 국경의 강이다. 두 강을 경계로 북한과 중국은 장장 1400㎞에 이르는 국경을 맞댄다. 그런데 두만강 하류에 이르면 중국의 국경은 막힌다. 동해 바다를 지척에 두고서다.

탐사단의 두만강 유역 답사는 지난 8월30일 방천(防川)에서 시작됐다. 제주도와 제주도개발공사가 후원한 이번 백두산 탐사의 마지막 일정이다. 두만강(길이 547㎞)은 압록강에 이어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긴 강이다. 북한과 중국, 러시아 3국의 국경을 흐른다.

두만강 하류에 위치한 방천은 중국 대륙의 최동단 마을이다. 중국에서는 가장 먼저 해돋이를 볼 수 있는 곳이다. 조선족 민속마을로서 '동방의 첫 마을'이라 불린다. 방천은 지금 남북한과 중국, 러시아, 일본 등 동북아시아가 주시하는 곳이 됐다. 북·중·러 3국의 국경선이 교차하는 지정학적 위치 때문이다.

두만강을 경계로 북녘 땅이 지척이다.

길림성 훈춘시 방천은 북녘땅 경흥에서 두만강을 건너온 조선인들이 처음 자리잡고 마을을 개척했다. 기근이 들 때마다 두만강을 건너갔다. 일제시대에도 이주행렬은 이어졌다. 당시에는 '버들방천'으로 불렸다. 1938년 장고봉 사건 이후 일제가 사람들을 강제로 이주시켜 폐허가 됐다가 광복 후 마을을 재건하면서 '변방의 산천'이란 뜻의 방천이 됐다고 한다. '닭 울음 소리에 3국이 깨어나고 개 짖는 소리에 3강이 놀라며, 꽃이 피면 이웃 나라에도 향기 풍기고 웃음소리 3국에 울려퍼진다'는 말이 전하는 바로 그곳이다.

훈춘시 경신진에서 남동쪽 약 60㎞ 떨어진 이 작은 마을은 2007년부터 본격적으로 개발되기 시작했다. 3국이 만나는 접경지라는 입지로 인해 대규모 투자와 개발이 이뤄지고 있다. 동북지방의 국제적인 관광거점으로 키워나가려는 의도다. 13층에 높이가 65m에 달하는 용호각 전망대는 그 상징이다. 전망대는 북한 중국 러시아 3국 변경지점에 3국을 조망할 수 있도록 세워졌다. 2010년 9월에 착공하여 2012년 8월에 개방됐다. 새해 첫날이면 이곳은 해맞이 객들로 북적인다.

도문시와 북한 남양역을 잇는 인도교 옆으로 새로운 다리 건설이 한창이다.

용호각 전망대는 북·중·러 삼국의 교차지점이다. 전망대에 서면 동해쪽으로 북한과 러시아를 잇는 '나진-하산철교'가 보인다. 왼쪽이 러시아 하산, 오른쪽은 북녘땅 함경북도 두만강시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멀리 동해 바다가 보이고, 나진-선봉경제특구가 지척이다.

하지만 중국은 방천에서 바다, 즉 동해로 나가는 꿈을 멈춰야 했다. 북한과 중국은 1962년 국경 경계선을 합의하면서 홍토수를 두만강 발원지로 정했다. 두만강은 여기서부터 천리길을 내달리면서 북중 경계를 이룬다. 그렇지만 여기까지다. 북중 경계를 이루며 흘러온 두만강물은 방천에서부터 북한과 러시아 땅으로 흘러든다. 강물은 쉼 없이 흘러 동해바다에 이르는데도 중국은 방천에서 국경선이 막히는 바람에 바다로 진출할 수 없다. 동해 바다까지의 거리는 15㎞ 정도에 불과하다. 중국으로서는 두고두고 통탄할 일이 아닐 수 없다.

인도교에서 바라본 남양역 건물에 김일성·김정일 초상화가 뚜렷하다.

1991년 8월7일 당시 이붕 국무원총리는 방천을 방문했다가 "도문강은 동으로 흐르고/ 토자패 앞에서 길이 끊겼네/ 초소에 올라 창해를 바라보니/ 다시 또한 옛일을 돌아보게 되네"라는 글귀를 남겼다. 토자패는 1886년 당시 청나라 북양사 대신 오대징과 연해주성 성장이 방천에 세운 국경경계비다. 바다가 지척인데도 갈 수 없는 아쉬움, 베이징조약으로 연해주 땅을 러시아에 넘겨준 심정이 잘 드러난다.

1860년 베이징 조약은 동북아시아에 있어서 중국과 러시아 한반도의 지리적 경계를 바꿔놓았다. 특히 중국으로선 이 조약으로 인해 동해 바다로 진출하는 교두보를 잃었다. 반면에 당시 러시아는 블라디보스토크가 있는 연해주를 얻었다. 한겨울에도 얼지 않는 부동항을 얻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우리로서도 약소국의 비애를 느낄 수밖에 없다. 연해주는 발해의 강역이었다. 게다가 러시아는 두만강 하류의 녹둔도까지 자국 영토로 편입시켰다. 녹둔도는 이순신 장군이 여진족과 싸우며 지켰던 조선시대 내내 우리 고유의 영토였다.

북·중·러 3국이 만나는 방천에 세워진 용호각 전망대

바다로 나가는 출구가 막힌 중국은 이제 '차항출해'(借港出海) 전략을 내세우고 있다. 북한, 러시아 등의 항구를 빌어 바다로 나가자는 전략이다.

훈춘시와 북한 나진선봉지구, 러시아 삼국이 만나는 이 일대는 황금의 삼각주다. 두만강 변에 위치한 북중 접경도시인 훈춘에서 북한 최북단 항구인 나진항까지는 48㎞ 정도다. 중국으로서는 이곳 삼국 접경지대를 공동 개발해야만 동해 바다로 진출할 수 있는 만큼 경제개발과 개방에 대한 관심이 높다. 중국이 고속도로 건설 등 사회간접자본 시설에 집중 투자하는 것도 이런 의도가 있다. 나선 경제특구의 핵심 사업인 나진항 개발에 지속적인 관심을 갖는 이유이기도 하다.

북·중 접경인 두만강변 공원에 서 있는 '출해' 조형물.

이는 두만강 중류에 위치한 도문시에서도 뚜렷하게 느낄 수 있다. 도문시는 방천에서 자동차로 2시간 정도 거리다. 두만강 변경지점에 조성해놓은 공원에는 한 사내가 노를 젓는 조형물이 우뚝 서있다. 그 아래는 '출해'(出海)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바다로 나가고 싶은 열망을 조형물에 담아 표현한 것이다. 공원에는 조선족들이 삼삼오오 모여앉아 장기를 두는가 하면 담소를 나누기도 한다. 강변에는 한가로이 낚시하는 사람들로 평화로운 모습이다.

북한과 중국의 개방과 경제협력 움직임도 생생하게 포착된다. 도문시와 북녘땅 남양시는 1930년대 건설된 철도교로 연결된다. 길이 439m로 두만강에서는 유일한 철도교라고 한다. 양 지역 사이에는 인도교(1941년 준공)도 있다. 그만큼 도문과 남양시가 두만강변 양국의 관문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인도교 가운데는 북·중 경계라는 의미의 '변경선'이라는 글자가 뚜렷하다. 중국쪽 관광객들은 도보로 이곳까지만 갈 수 있다. 북녘땅 방향으로는 카메라 촬영이 금지된다. 휴대폰을 이용해서만 기념촬영이 허용된다. 강 건너 남양역 건물엔 김일성, 김정일 초상화가 걸린 모습이 뚜렷하다. 인도교 바로 옆으로는 새로운 다리 건설이 한창이다. 왕복 4차선 교량으로 북한의 개방에 대비하여 건설되는 중이다.

일제강점기 변경지역 유이민의 고단한 삶과 현실을 노래한 이용악 시인은 '두만강 너 우리의 강아'라는 시에서 나라 잃은 서러움을 묘사하면서 '잠들지 말라 우리의 강아'라고 했다. 두만강은 지금 잠들 수가 없다. 기회의 땅이 되기 위한 변화의 움직임이 꿈틀거리고 있다. <끝>

특별취재팀

다방면 걸쳐 양 지역 교류 필요
연변일보·박용일 민속학회장 간담

박용일 민속학회장

두만강을 경계로 북녘 땅이 지척이다(사진 상). 도문시와 북한 남양역을 잇는 인도교 옆으로 새로운 다리 건설이 한창이다(가운데). 인도교에서 바라본 남양역 건물에 김일성·김정일 초상화가 뚜렷하다.

탐사단은 지난 8월 29일 중국내 최초의 조선족 종합일간지인 연변일보 관계자 및 민속학자와 간담회를 갖고 양 지역의 관심사와 상호 지속적인 교류협력 발전방안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 간담회에는 연변일보 김천 부사장과 이영수 편집국장, 박용일 민속학회장이 참석했다.

한라일보와 지난 1993년 자매결연을 한 연변일보는 1948년 4월 1일 창간, 올해가 70주년이 된다. '독자감동의 시대를 여는 연변일보'를 모토로 다양한 기획을 통해 조선족 사회를 대변하고 있다. 연변일보는 중국 100대 신문(66위)에 선정될 정도로 지방지 가운데서도 대표성을 인정받고 있다. 한라일보와 연변일보는 앞으로 기자 파견 등 인적교류와 지면교류 방안도 추진한다. 김천 부사장은 "최근 연변자치주에서는 관광산업 활성화에 힘쓰고 있다"며 다방면에 걸쳐서 양 지역의 지속적인 교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용일 민속학회장은 조선족 사회변화상과 점차 잊혀져가는 조선족 민속문화에 대한 안타까움과 제주도와의 교류에 관심을 나타냈다. 박 회장은 중국 조선족 농부절을 총기획하는 등 자치주 내 대표적인 문화예술계 인사다. 중국 조선족 농악무와 전통음식, 세시풍속 등 그가 저술한 서적이 40여권에 이른다. 박 회장은 "오늘날은 세시풍속 등이 많이 변해 조선족 사회에서도 모르는 경우가 많다"며 "조선족 전통문화를 알리고 전승하는데 공을 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더 잊혀지기 전에 조선족 전통문화에 대한 연구를 포함 제주도와도 교류기회가 있길 기대한다"고 했다. 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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