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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 장편 연재/갈바람 광시곡
[강준 장편 연재] 갈바람 광시곡(7)
편집부 기자 hl@ihalla.com
입력 : 2019. 04.11. 20: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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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 작/고재만 그림


3-1. 꿈 그리고 별



장대비 한 번 시원하게 내리지 않고 장마가 끝났다. 낮 동안 달구어진 도시는 한밤 습한 바닷바람에도 식을 줄 몰랐다. 사람들은 열대야로 잠을 설쳤지만 삼총사는 섬을 탈출할 설렘으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

삽화=고재만 화백

용찬이 방학하는 뒷날을 거사일로 잡았다. 그들은 약속한 시간에 각자 백빽을 하나씩 둘러메고 목포행 대합실에 나타났다. 종필은 와이셔츠, 마이(양복)에 구두를 신고 무스로 머릿발을 세워 한껏 멋을 냈다.



"고백할 게 있는데 사실 나 서울에 여자 친구 만나러 가"
"세 명이 가니까 친구들 데리고 나오라고 연락했지
내일 광화문 이순신 동상 앞에서 만나자고 했으니까 기대해"




3등실 칸에 들어서자 퀴퀴하고 역겨운 냄새가 후각을 강하게 자극했다. 삼총사는 일찌감치 자리 잡고 듬성듬성 누워있는 사람들을 건너서 구석에 자리 잡았다.

배는 항구를 벗어나자마자 심하게 흔들렸다. 신나게 떠들던 종필은 객실 바닥에 드러눕더니 꼼짝을 안 했다. 금산과 용찬도 어지러움울 느끼며 바닥에 몸을 뉘었다.

이윽고 웩하는 소리와 함께 종필이 속에 있는 것을 게워냈다. 곁에 있던 사람들이 코를 막고 얼굴을 찡그리며 자리를 피했다. 용찬은 휘청거리는 몸을 가누며 화장실에서 막대 걸레와 쓰레받기를 가져다 토사물을 치웠다.

"촌놈, 너 배 처음 타보지?"

금산이 웃으며 묻자, 종필은 눈 감고 벽에 기댄 체 고개만 끄덕였다. 용찬이 걸레질을 하며 말했다.

"난 어렸을 적 갠짜구(건착선) 타고 놀고, 땜마(거룻배) 낚시하며 자라서 멀미 같은 건 안 해."

"나도 4년이나 부산항 드나들어서 끄떡없다."

제주 바다를 벗어나자 배의 흔들림은 잦아들었다.

종필이가 정신이 드는지 눈을 뜨고 멋쩍은 표정으로 웃었다.

"머린 아프지만 속은 시원하네."

금산과 용찬이 안쓰럽게 바라보는데 종필이 의외의 반전을 만들었다.

"고백할 게 있는데 사실 나 서울에 여자 친구 만나러 가."

금산은 어처구니없는 표정으로 종필을 나무랐다.

"허풍 떨지 마라. 니가 여자 친구가 어디 있어. 임마?"

여유를 찾은 종필이 배시시 웃으며 상체를 세웠다.

"한 달 전에 이호 해수욕장 갔다가 수학여행 온 여학생을 만났거든. 우리 친구들 몇 명이서 즉석 미팅을 했어. 그래서 내 짝이 서울 오게 되면 연락하라고 주소를 줬어."

그 말에 금산의 얼굴빛이 달라졌다.

"그래서 연락했어?"

"응. 세 명이 가니까 친구들 데리고 나오라고 편지했지. 내일 광화문 이순신 동상 앞에서 만나자고 했으니까 기대해."

응큼한 종필이 얄미웠지만 자신들을 배려한 마음에 용찬도 너그러워졌다.

"정말 서울 여학생들이랑 미팅하는 거야?"

종필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랑하듯 말했다.

"정아, 그년 웃을 때 보조개가 죽여줘. 흐흐흐."

한참 재미있게 이야기하는데 옆에 누워있던 중년의 아저씨가 벌떡 일어나더니 인상을 쓰며 노려봤다.

"거 좀 조용히 해. 시끄러워서 잠 못 자겠네.

그 말에 삼총사는 재빠르게 바닥에 몸을 뉘었다.



정박해 있는 고깃배들 호위를 받으며 여객선은 개선장군처럼 항구로 들어갔다. 날이 저물어서야 목포항에 도착했다. 하나둘씩 불을 켜는 가로등을 따라 목포역에 가보니 서울행 기차는 3시간 뒤에나 있었다.

기차표를 끊고 저녁을 먹기로 했다. 배 안에서 도시락을 사 먹었지만 한창 먹을 나이라 성이 찰 리 없었다. 역전 식당가로 걸음을 옮겼다. 종필이 앞장서서 걷더니 맛집을 정했다.

"야, 목포 하면 홍어와 세발낙지 아니가? 가출한 기념으로 쐬주도 한잔 빨아야지."

식당 문을 여니 지렁내 같은 홍어 삭은 냄새가 마중을 나왔다.

탁자가 대여섯 개 놓인 자그만 홀에는 먼저 온 일행이 있었다. 웃고 떠드는 모습이 평범한 사람들 같지 않았다. 팔에 새긴 문신이며 깍두기 머리, 우락부락한 근육질이 영락없는 조폭 똘만이들이었다.

구석 자리에 앉아 식사를 주문하자 종필이 소주도 시켰다. 쾌쾌하면서도 톡 쏘는 홍어가 맛있다며 종필과 금산이 소주를 세 병이나 비웠다. 그게 화근이었다. 옆자리 일행들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알코올에 이성이 마비된 종필이 목소리를 돋우어 호기를 부렸다.

"이 집 전세 냈나? 좀 조용히 합시다."

용찬이 놀라 옆 테이블의 동정을 살폈다. 일행 중 키가 제일 작은 사람이 의자를 소리 나게 밀치며 일어서서 노려봤다.

"야, 아그들아 니들 몇 살인데 술 쳐먹음서 성님들한테 개기냐. 응?"

"좀 조용히 하자는 게 무사 잘못 됐수가?"

사투리가 섞여 나온 게 우스웠지만 용찬은 위기감을 느끼며 얼른 일어서서 넙죽 허리를 굽혔다.

"아이구. 죄송합니다. 신경 쓰지 마십시오."

그러자 금산이 일어서며 용찬을 나무랐다.

"야, 시끄러워서 시끄럽다고 했는데 뭐가 죄송이냐?"

그 말에 상대편 일행 네 명이 모두 일어섰다.

"느그들 어디서 왔으까?"

종필도 일어서서 반격 자세를 취하며 대꾸했다.

"제주에서 와수다. 무사(왜)?"

"이런 섬 존마니들아, 눈탱이는 섬에 두고 왔냐?."

"어떤 씹새가 잠자는 사자의 코털을 건드려 싸스까이?"

지켜보던 주인이 달려와 막아섰으나 이미 상황은 수습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소주병을 던지면서 일행들이 달려들었다. 용찬은 겁이 나서 후다닥 화장실로 내뺐다. 이런 일은 처음이었다. 화장실 문을 잠그고 벌벌 떨었다. 홀에서 한창 깨지고 부서지는 소리가 나더니 이내 잠잠해졌다.

용찬이 슬며시 나가봤더니 험상궂은 손님들은 사라지고 없었다. 금산은 앉아서 코피를 닦으면서 대짜로 누워있는 종필을 흔들었다. 종필이 일어나 두리번거리다 용찬을 발견하고는 어이가 없는지 씩 웃었다.

주인은 이런 일이 다반사인 듯 태연하게 부서진 물건과 깨진 식기들을 정리하며 투덜거렸다.

"에고 초저녁부터 무슨 재수 대가리여? 신고했는디 이놈의 경찰은 왜 안 온당가?"

그 말에 금산이 눈치를 주더니 빽을 들고 뛰쳐나갔다. 종필도 주인이 주방으로 들어간 틈을 타서 소지품을 챙기고 후다닥 문밖으로 나갔다. 용찬도 빽을 메고 눈치를 보며 슬금슬금 뒷걸음질 치는데 주인이 불러 세웠다.

"학생, 그냥 가려고? 이 난리 친 거 안 보여? 부서진 유리창에 의자도 두 개나 나가고, 깨진 그릇에 양쪽 식사값은 물어줘사 쓰지. 안 그런가?"

용찬은 얼른 지갑을 꺼내 여행비로 거둔 돈에서 적당히 반쯤 꺼내 건넸다. 액수를 확인한 주인은 당최 말도 안 된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우리도 먹고살려고 이짓까리 허는디 이것 갖고는 택도 없어야. 응. 보아하니 학생이구만. 정 그렇다면 경찰서에 같이 가야?"

용찬은 경찰서에 가면 혼자만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할 수 없이 전부를 건네고 사정을 하고선 겨우 만 원 한 장을 돌려 받았다.

'돈도 없는데 어떻게 하지? 서울 구경 포기해야 하나?' 용찬은 착잡한 마음을 안고 역으로 발길을 옮겼다.



"우리 학교 꼰대가 말하는데 앞으로 누구나 자가용 타고 다니는 시대가 온대.
그 말이 참말인가 보다. 억수로 차가 많네"




역 대합실 입구에서 종필과 금산이 기다리고 있었다. 종필은 붉은색 반팔 티로 갈아 입고 금산의 얼굴에 반창고를 붙여주고 있었다.

"쓰발 객기 부리다 새 됐다. 장소만 넓었으면 붙어 볼 만했는데. 한 놈은 줄행랑쳐 버리고."

금산이 얼굴을 만지며 웃었다. 종필은 턱이 아픈 듯 입을 벌렸다 다물기를 반복했다. 용찬은 그들의 시선을 피하며 지갑을 꺼내 속을 까발렸다.

"미안하다. 노잣돈 다 털리고 이거 하나 남았다."

그 말에 금산의 얼굴이 굳어졌다.

"이 미련 곰탱아, 돈이 없으면 어떻게 서울 가?"

"그럼 어떡해? 경찰서에 가자는데?"

"배 째라고 나자빠지지, 미성년자에게 술 팔면 영업정지 먹는다는 걸 몰라?"

그제야, 용찬은 '아 그 생각을 왜 못 했을까' 탄식하며 고개를 뒤로 젖혔다.

종필이 자책하는 용찬의 등을 툭 치며 말했다.

"짜식, 걱정 마. 서울에 우리 이모 살 거든. 부자니까 용돈 두둑히 줄 거야."



철거덕 거리는 기차 바퀴 소리가 두근거리는 심장과 함께 뛰놀았는데 소리의 감흥은 금세 사라졌다. 수다를 떨다가 피곤했는지 종필이 먼저 잠에 곯아떨어지고 의자에 깊숙이 기댄 금산이도 곧 코를 골았다.

기차는 어둠 속을 달렸고 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불빛만 간간히 보일 뿐이었다. 객차 안 사람들은 약속이나 한 듯 모두 눈을 감고 있었다. 용찬은 난생처음 타는 기차였다. 눈을 감았지만 서울 여행에 대한 기대감에 쉬 잠이 오지 않았다.

"여기는 용산, 용산역입니다. 다음은 이 열차의 종착역인 서울, 서울역입니다."

어느 틈에 잠이 들었는지 스피커 소리에 눈을 떴다. 기차는 서서히 멈춰 섰다.

객차 안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기지개를 켜고 하품을 하며 깨어났다.



서울은 콧속으로 스미는 냄새부터가 달랐다. 역사를 나오니 거리는 싱그러운 아침 빛을 받아 출렁거리고 있었다. 텔레비전에서만 보던 빌딩과 거리의 모습이 그림처럼 눈앞에 펼쳐졌다. 각양각색의 자동차들과 종종걸음으로 오가는 인파들, 웅장하게 펼쳐진 빌딩들이 서울임을 확인시키며 감탄사를 만들어 냈다.

입을 다물지 못하고 눈이 동그래진 종필이 혼잣소리처럼 중얼거렸다.

"와 서울 사름덜 어마저프게 하다이(놀랄 정도로 많다)."

금산과 용찬은 사투리가 촌스럽게 생각되었는지 마주 보며 웃었다.

종필도 무의식중에 뱉어낸 제주말이 쑥스러웠는지 용찬의 팔을 툭 치며 웃었다.

금산은 깨우침이라도 얻은 듯 사뭇 표정이 진지해졌다.

"우리 학교 꼰대가 말하는데 앞으로 누구나 자가용 타고 다니는 시대가 온대. 그 말이 참말인가 보다. 억수로 차가 많네."

"거 봐, 서울 오기 참 잘했지?"

종필의 공치사에 용찬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사투리를 쓰거나 사소한 일에도 서로 마주 보며 깔깔거렸다. 사람들과 부딪히고, 길거리 설치물에 걸려 넘어져도 웃음이 솟아났다. 그렇게 쉬며 놀며 물어물어 광화문에 도착했다.

<강준 작가 joon445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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