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나연의 문화광장] 예술의 달에 내린 거대 쥐의 저주

[이나연의 문화광장] 예술의 달에 내린 거대 쥐의 저주
  • 입력 : 2019. 04.16(화) 00:00
  • 김경섭 기자 kks@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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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에 도착하자마자 바젤아트페어와 아트센트럴을 돌아보고 이튿날엔 빅토리아 하버에 갔다. 그런데 하버 인근을 꼼꼼히 둘러봐도 마땅히 있어야 할 것이 보이질 않는다. 지금 현대미술씬에서 가장 잘 나가는 팝아티스트인 카우스(KAWS)의 대형 풍선설치 '홀리데이 컴패니언'이 항구의 바다 위에 띄워져 있어야만 했다. 석촌호수에도 온 바 있는 이 글로벌 스타는 대체 어디에 간 거냐고 구글에게 물어보니 일주일 일정으로 설치되긴 했으나 기상 악화 탓에 이틀 만에 철수했단다. 날씨가 다이나믹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제주에서 야외설치를 무려 물 위에 띄워본 경험이 있는바, 갑작스런 태풍을 맞이한 대처는 태풍이 지날 때까지 작품을 물 밖에 꺼내두었다가 재설치 하는 것이었다(산지천 수문을 열어야 하니 작품을 철수하라는 전화를 작품 설치 이틀 만에 동사무소에서 받아본 적이 있나요?). 홍콩은 간간이 비소식이 있긴 했지만 대체로 쾌청해서 더욱 의문이었다. 기상 악화는 납득할만한 답변이 아니었다.

저녁 식사를 하며 홍콩의 친구들에게 '홀리데이'의 실종에 대해 물었다. 그들이 전해준 흥미로운 의혹은 이렇다. 컴패니언이라는 이름을 가진 카우스의 캐릭터는 언뜻 보면 미키마우스처럼 보인다. 그래서 홍콩아트씬에서는 '대형 쥐의 저주'라 불리는 이야기가 돌았다. '홀리데이'를 설치한 날 홍콩에서는 이상한 대형사고가 일어난다. 느리기로는 따라갈 수 없는 대중교통수단인 2층 트램이 늘 그렇듯 천천히 운행되는 중에 옆으로 넘어졌다. 기사밖에 타고 있진 않았지만, 한밤의 인적없는 도로에 옆으로 누운 트램의 사진은 뭐랄까, 줄타기에 실패한 곡예사처럼 부끄럽고 쓸쓸한 동시에 위험해 보였다. 다음 사건은 더욱 기묘했다. 지하철이 충돌한 것이다. 마주 오는 두 개의 지하철이 부딪친 장면은 훨씬 심각해보였다. 이 두 사건은 정말이지 홍콩에서 흔히 일어나는 사고가 아니라서 미술계 정보로만 세상을 보는 작가들은 대형 쥐가 홍콩에 저주를 내렸다고 결론 내렸다. 이같은 의혹은 정부관계자들 사이에서도 제기됐을테고 결국 유명세와 관광수익을 포기하고 더 큰 저주를 막기 위해 철수를 감행했을 것이라는 얘기다.

말이 안되는 것 같지만, 저녁 식사 내내 이 미신같은 이야기에 완전히 설득당했다. 홍콩의 3월은 미술의 열기로 가득 하다. 홍콩 바젤 아트페어를 위시로 세계 정상급 갤러리들이 대표작가를 내세운 공들인 전시를 여는 것은 물론, 미술 기관들도 3월을 위한 특별한 전시를 마련한다. 전세계의 컬렉터와 아트딜러, 작가 등 미술계 관계자들이 이 기간엔 모두 홍콩에 모여있는 덕에 한국에서도 보기 어려운 미술계 친구들을 홍콩에서 만난다. 늘 신비롭기만 한 예술과 홍콩이라는 국제도시가 만나 역동성을 만들어낸다. 역동성 안에서 오늘의 사건 사고는 일어난다. 트램은 넘어지고 아트페어에는 100억 원이 넘는 작품들이 여기저기로 팔려갔다. 지하철은 부딪쳐도 전세계에서 5일짜리 행사를 보기 위해 해외에서 4만 명이 몰려왔다. 알 수 없는 사건과 알만한 기록들이 갱신되면서 홍콩의 3월을 채워갔다. <이나연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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