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후 작가의 詩(시)로 읽는 4·3] (4)경계의 사람-김석범(김수열)

[김관후 작가의 詩(시)로 읽는 4·3] (4)경계의 사람-김석범(김수열)
  • 입력 : 2019. 04.18(목) 00:00
  •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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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남쪽 사람도 북쪽 사람도 아니요

그러니까 나는 무국적자요

나는

분단 이전 조선 사람이요



제주4·3도 마찬가지요

반 토막 4·3은 4·3이 아니란 말이요

온전한 4·3은

통일된 조국에서의 4·3이요

그러나 제주4·3은 곧 통일인 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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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을 한다는 거?

저기, 저, 저 백비, 저걸 일으켜 세우는 거요

'화산도(火山島)'의 작가 김석범(金石範)의 문학은 기억과의 투쟁이었다. 4·3은 '말살당한 기억'이었다. 입 밖에 내선 안 되는 일이었고, 알아도 몰라야 하는 일이었다. 권력이 몰아붙인 '기억의 타살'이었고, 강요된 "기억의 자살"이었다. 김석범은 1925년 일본 오사카 출생의 재일조선인으로 4·3진상규명과 평화인권 운동에 매진해온 무국적자다. 1990년대 초까지 조선적(朝鮮籍)으로 살았다. 조선은 이미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 나라이다. 1957년 최초의 4·3소설 '까마귀의 죽음'을 발표했고, 1976년에는 역시 4·3사건을 주제로 한 대하소설 '화산도'를 일본 문예춘추사의 '문학계'에 연재하기 시작해 1997년 탈고했다. 그는 4·3을 지속적인 작품의 소재로 삼았으며 2015년 제1회 제주4·3평화상 수상자가 되기도 했다.

김석범은 4·3운동과 4·3문학에서 상징적 인물이다. 대한민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일본 국적도 아닌 무국적자인 김석범이야말로 경계인(境界人)으로서 월경(越境)하는 삶을 몸소 실천해 왔다. 원래의 조선적에서 한국 국적으로 바꾸지 않은 재일조선인(이들은 제도상 무국적이다)을 일본정부는 암묵적으로 북한 국적처럼 취급해왔다. 그는 한국인도, 북한인도, 일본인도 아니었다. 패전국 일본이 한국으로 귀국하지 않은 재일 한인들에게 일방적으로 부여한 '조선적'을 고집했다. 남·북·일 중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이 국적을 찾아 떠나도, 남과 북이 기회가 생길 때마다 그를 회유해도, 김석범은 분단된 나라 어디에도 속하길 원치 않았다. 그는 무국적자였고 존재하지 않는 나라의 백성으로 남았다. 그의 4·3문학에서는 미일 제국주의(帝國主義)의 탐욕에 맞서는 제주섬의 항쟁과 그 의미가 구체적으로 확인된다. 그의 문학에 구현되는 제주민중의 투쟁 양상과 평화 세상을 향한 염원은 구미중심주의가 지닌 왜곡된 편견을 드러내면서 동아시아적 가치를 여실히 보여준다. 따라서 김석범 문학을 살피는 것은 아시아·아프리카·라틴아메리카의 창조적 가치를 통해 세계문학을 재편해 나가는 노정에서 매우 유용한 작업이다. <김관후 작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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