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바다와 문학] (8)한기팔의 '서귀포'

[제주바다와 문학] (8)한기팔의 '서귀포'
"다시 바다를 보기 위해 여기에 섰다"
  • 입력 : 2019. 06.14(금) 00:00
  •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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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 마을인 서귀포 보목. 한기팔 시인은 '고향이 아니어도 한 번은 오고 싶던 고향'이라고 바다를 품은 '서귀포'를 노래했다.

관광개발 속도 내던 70년대
조그만 바닷가서 만난 풍경

고향 자연 감각적으로 노래

높다란 야자수가 늘어선 남국 서귀포는 '낭만 제주'를 표상하는 공간이다. 도심 어디쯤 앉아 커피를 홀짝이다 보면 번다한 일상을 저절로 내려놓게 된다는 이들을 봤다.

한기팔(1937~ ) 시인의 첫 시집 '서귀포(西歸浦)'(1978)는 적어도 뭍사람들이 그같은 서귀포를 꿈꾸게 할 만한 시편들이 들었다. 서귀포 태생 서예가 소암 현중화 선생이 한자로 쓴 글씨가 표지에 박혀 서·귀·포 세 글자가 주는 감흥이 더하다.

'버릴 것은/ 죄다 버리고 왔다.// 물굽이를 건너며 바다에 두고 왔다.// 여기는/ 솔동산 입구/ 알 것만 같은 사람들이 바람결처럼/ 무심히 지나간다.// 고향이 아니어도/ 한 번은/ 오고 싶던 고향// 눈을 감으면/ 기억에도 없는 한 사나이가/ 노을처럼 서서/ 바다를 보고 있다.'('서귀포·1' 전문)

보목동 출신 시인은 대학 시절 제주를 잠시 떠났던 일을 제외하면 서귀포에서 줄곧 창작 활동을 펴왔다. 문예창작과에 입학했고 그림까지 익혔던 그는 낙향해 감귤 농사를 지으며 서귀포의 중·고교에서 미술을 가르쳤다.

세로쓰기 시집 '서귀포'는 그가 '서귀포라는 조그마한 바닷가에 살면서 내 나름으로 바라본 하늘이며 바다, 그리고 밤부두를 떠나는 윤선소리며 말없이 피었다 사라지는 꽃구름'을 품고 있다. 시집 말미 '서귀포'라는 장으로 묶인 9편의 시는 그 '조그마한 바닷가'에서 만난 풍경이 비교적 또렷하다.

시인에게 서귀포는 바람이고 바다다. 그 둘은 저 먼 곳의 존재에 닿을 수 있는 매개다. 그래서 감정이 흔들린다. '우람한 몸집의 폭력/ 그 앞에 있으면/ 나의 마음은 조금씩 동요되기 시작한다.'('바다' 중에서)

시인이 문단에 발디딘 1970년대는 제주관광개발에 속도가 붙고 감귤산업이 주목받던 때다. 제주도를 국제관광지로 만드는 청사진인 제주도관광종합개발계획이 나왔고 공항과 항만, 도로·전기·통신 등 사회기반시설 확충이 대대적으로 이루어졌다.

이 시기부터 제주 작가들이 '제주의 정체성에 많은 관심을 갖게 되면서 제주인들의 삶과 역사가 구체적으로 문학을 통해 조명'(김병택) 된다. 한 편의 시를 쓴다는 일이 '냉엄한 자기성찰과 깊은 이해'였다는 한기팔 시인은 그 무렵 감각적으로 고향의 자연을 노래했다. 자꾸만 바다를 다시 보러 나서는 시집 '서귀포'의 시적 화자들은 가파른 현실을 방증하는 건 아닐까. 시인이 소년기에 겪은 4월이 뒤이은 시집들에 찬찬히 떠오르는 걸 보면 말이다. 시집 '바람의 초상'(1999)에 실린 '사월에' 한 대목을 옮긴다. '사월이 되면/ 이 섬에선/ 해석되지 않은 일 많다/ 종아리라도/ 한 대 얻어 맞고 싶은 일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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