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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바다와 문학] (9)구소은 장편 '검은 모래'ⓛ
"바닷물이 짜다고 누가 그랬는가"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입력 : 2019. 06.21.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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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도 앞바다에서 물질하는 해녀들. 1989년에 흑백으로 촬영된 사진이다.

우도에서 日 미야케지마로
바깥 물질 떠난 구월네 가족

두 검멀레섬 바다에 달린 생

그들은 생계를 위해 고향을 떠나 낯선 바다에 뛰어들어 물질을 했다. 국내에 번역 출간되 김영·양징자의 '바다를 건넌 조선의 해녀들'(2004)에 따르면 국내는 1859년 경상도 목도(牧島)로 나간 일이 처음이고 일본은 1903년 미야케지마(三宅島)가 최초라로 전해진다. 출향 해녀는 해마다 증가해 1930년 3860명에서 1932년에는 5078명으로 늘었다. 1932년 제주도해녀어업조합원수가 8862명이었는데 57%에 해당하는 인원이 제주섬 바깥으로 물질을 갔다.

구소은(1964~ )의 장편소설 '검은 모래'(2013)는 그 해녀들의 사연이 그려진다. 제1회 제주4·3평화문학상 수상작으로 제주 우도와 미야케지마 등 시공간을 넘나들며 구월에서 미유까지 4대에 걸친 한국근현대사 속 개인들의 운명을 좇고 있다.

"구월은 태어나면서 나라를 잃은 신세였고, 태어나면서부터 잠녀였다. 제주에서 태어난 잠녀의 운명을 지고 살아갈 그녀의 인생이 얼마나 고단할 것인지는 불보듯 뻔했다."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니요, 죽는다고 해도 해결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던 시절이었다. 검은 모래로 덮인 우도 검멀레 해안을 끼고 살아가는 구월의 어머니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물질에 나섰다가 구월을 낳았다. 잠녀의 일상에서는 언제든 벌어질 수 있는 일이었다. 구월의 어머니는 제주에서 여자로 나면 천형으로 삼고 살아갈 것이 많다고 여겼다. 9월에 세상 밖으로 나와 얼렁뚱땅 구월이란 이름을 얻은 핏덩이 딸자식을 가련하고 애처롭게 볼 수 밖에 없었던 이유다.

소설은 1926년 기미가요마루를 타고 어머니를 따라 처음 일본으로 물질갔던 구월이 '돈 많이 벌어 고향으로 오자'며 남편 박상지, 딸 해금, 아들 기영 등 온가족과 일본으로 이주하면서 무대가 옮겨진다. 구월에게 바깥 물질의 기억은 고통스러웠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오사카로 향하는 뱃길에서 제주 해녀 누군가가 우도 출신 강관순이 노랫말을 지었다는 '해녀항일가'를 나지막이 부른다. '우리는 제주도의 가엾은 해녀들/ 비참한 살림살이 세상이 안다/ 추운 날 더운 날 비가 오는 날에도/ 저 바다의 물결 위에 시달리던 이내 몸'. 1941년 구월이네 가족이 오사카에서 열차편으로 도쿄에 간 뒤 거기서 나흘을 기다려 증기선을 타고 36시간 걸려 도착한 섬은 미야케지마였다.

"누가 그랬는가, 바닷물이 짜다고. 그 물을 먹어본 사람이라면 바닷물은 짠 것이 아니라 쓴 것임을 알게 되리라." 구월의 딸 열세 살 해금은 새로이 둥지를 튼 섬에서 어머니에게 물질 수업을 받으며 그런 생각을 한다. 우도처럼 검멀레가 흩뿌려진 미야케지마는 그들의 인생이 바다에 달려있음을 또 한번 일깨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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