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호의 월요논단] 한국 근현대조각 100년사를 준비하자

[김영호의 월요논단] 한국 근현대조각 100년사를 준비하자
  • 입력 : 2019. 06.24(월) 00:00
  • 김경섭 기자 kks@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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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김복진(1901~1940)이 동경미술학교 조각과에 입학한 1920년을 기점으로 삼는다면 서구 근대조각이 우리나라로 유입된 지 어느덧 100년을 앞두고 있다. 한국 근대조각은 일제의 식민통치라는 비운의 공간속에서 싹을 틔우기 시작했다. 한국사의 맥락에서 이는 감추거나 부정할 수 없는 현실 조건이다. 하지만 1876년 개항 이후 나타난 시련과 갈등이 개혁의 원천이 되었던 것처럼 식민통치의 역사는 한국 예술의 뿌리를 형성하고 성장시킨 역설의 힘이었다. 예술이 시대의 아들이라는 점을 인정한다면 한국의 근대조각사에는 격변의 시대정신이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간파할 수 있을 것이다. 근대조각은 문자의 한계를 넘어선 조형 언어로서 우리의 근현대사에 숨 쉬는 미의식(kunst wollen)을 도출해 내는 원천이 되고 있다.

미술사의 계보와 그를 둘러싼 미의식에 대한 연구는 쉽지 않은 것이다. 계보학은 특정 경향이나 사조를 구성하는 인물간의 관계를 밝히는 학문으로 정착되어 왔다. 현대 계보학에서는 인물간의 관계를 밝히는 것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진리(의미, 가치, 본성)가 어떻게 구성되는지를 탐구한다. 푸코 같은 학자는 진리란 고정불변적인 것이 아니라 역사 속에서 의식의 성숙에 발맞추어 변화하는 것이며, 지식의 구성조건으로 당대의 권력이 만들어낸 법칙이나 규칙에 대한 분석을 시도한다. 결국 현대 계보학의 맥락에서 한국 근현대조각의 역사를 살펴보는 일은 변화해 온 권력의 장치로서 법률, 교칙, 규정, 교리 등에 대한 연구와 더불어 권력과의 관계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라 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우리가 마주하게 되는 것이 미의식이라 부를 수 있는 어떤 것이다.

미에 대한 기준이 시대에 따라 변화해 왔듯이 모든 시대와 장소를 관통하는 보편적 미의식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한국인은 일본인과 다르며 중국인과도 다른 속성을 지닌다. 이때 한국인의 미의식이란 일제, 해방, 분단, 전쟁, 파괴, 재건, 혁신의 물결 속에서 형성되어 온 한국인 고유의 어떤 정신이라 할 것이다. 한국의 근현대 조각가들은 변천하는 시대의 권력에 순응하거나 대응하면서 자신의 작품세계를 구현하기 위한 미의식을 세우는데 노력했다.

시하 서울시 중구에 자리 잡은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에서는 개관기념 특별기획전으로 '한국 현대조각의 단면'(6월 1일~7월 25일)이 열리고 있다. 한국 근현대조각 100년을 앞두고 한국 근현대조각의 계보와 미의식을 살펴보는 대규모 전시회다. 한국 현대조각의 시원인 1950년대 후반에서 오늘에 이르는 62명의 작가들이 3개의 섹션인 '비구상(추상)', '오브제·설치', '신형상'으로 나뉘어 소개되고 있다. 일제 강점기에 유입된 근대조각 파트는 영상자료로 제시된다.

한국 근현대조각의 계보와 시대별 작품에 담긴 미의식을 찾는 일은 우리의 문화지형의 현주소를 확인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일이다. 우리 모두가 함께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다. <김영호 미술평론가·중앙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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