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희식의 하루를 시작하며] 침묵의 언어

[부희식의 하루를 시작하며] 침묵의 언어
  • 입력 : 2019. 07.03(수) 00:00
  • 김경섭 기자 kks@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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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성직자의 묘지를 찾은 바 있었는데 그 입구에는 두 개의 돌기둥에 라틴어로 불멸의 명언의 새겨져 있다.

한 기둥에는 호디에 미기(HODIE MIHI) 다른 기둥에는 크라스 티비(CRAS TIBI)라는 내용이다.

이를 우리 말로 번역하면 "오늘은 내 날이요, 내일은 네 날이다"가 아닐까. 오늘은 내가 죽어서 여기에 묻혀 있지만, 내일은 너도 죽어서 여기에 묻히리라. 이 명언에 담긴 침묵의 언어들을 다시 유추해 보면 다양하고 깊은 뜻이 숨어 있는 듯하다. "오늘은 내가 영광의 자리에 섰지만, 내일은 네가 영광의 자리에 서게 되리라" 또 "오늘은 내가 여기서 돌팔매질을 당하지만, 내일은 네가 여기서 돌팔매질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오늘은 내가 정년퇴임으로 공직에서 물러나지만, 내일은 너도 물러나리라".

인생의 어찌 이것 뿐이랴 "영고성쇠(榮枯盛衰)는 돌고 도는 삶이다" 생자필멸(生者必滅)과 제행무상(諸行無常)이라는 무설(無說)의 설법도 있지 않은가. 또한 살아온 삶과 살아갈 삶을 골똘히 생각해 보면 언제나 입장을 바꿔서 보고 생각하고 처신하라는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지혜도 함축되어 있는 듯하다.

사려니숲길에서 발길을 돌려 망망대해를 오가는 여객선과 어선들이 넘나드는 바다 풍광을 읽다보니 오만가지 상념에 젖는다. 그 중에서 눈길이 가는 곳은 등대이다. 등대는 바다에서 바라보는게 바르게 보는 앎이다. 빨간 등대가 있으면 왼쪽으로 입항하고, 하얀 등대가 있으면 오른쪽으로 입항하라는 안전운행의 신호체제이다.

우리네 인생 길도 등대가 선박 항로를 가리켜 주듯이, 자기 자신이 가야할 목적을 바르게 알고, 출발점 행동으로 삼아야 한다.

자기 자신을 바로 아는 일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고 하였고, 달레스는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은 남에게 충고하고 꾸짖는 일이고, 가장 어려운 일은 자기 자신을 바로 인식하는 일이라고 했다. 노자도 남을 바로 아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이고, 자기 자신을 바로 아는 사람은 총명한 사람이라 갈파했다. 인간사회가 존재하는 한 문제가 있는것은 당연한 일이고, 문제가 있으면, 과제와 해결방안도 있는 법이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추진해야 할 목적을 보는 안목과 혜안을 가지고 다음엔 지역집단 이기주의를 배제하고 끝으로 타당성, 객관성, 신뢰성, 실용성 등을 편견없이 따져 보면서 미래지향적인 혜안과 공동체 의식을 구축하여 새로운 삶의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러나 자기가 속해 있는 집단의 이익과 신의와 애향심만을 앞세워 일을 처리하다 보면 옳게 되는 일이 없다. 특히 집단 이기주의로 우리 마을에는 안 된다는 님비(NIMBY)현상으로 변하면 아무리 좋은 국책사업이라 하더라도 이뤄낼 수 없다. 또한 이득이 생길만한 시설은 우리 마을로 유치해야 된다는 핌피(PIMFY)현상도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나무는 자기가 키워낸 낙엽을 버리고, 그 낙엽을 자양분으로하여 더 큰 성숙의 삶을 열어간다. 자연의 순리 앞에 서서 '호디에 미기 크라스 티비'의 거울을 보며 성찰의 주인이 되면 어떨까.

<부희식 제주교육사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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