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후 작가의 詩(시)로 읽는 4·3] (21)다랑쉬굴ㅡ이동순

[김관후 작가의 詩(시)로 읽는 4·3] (21)다랑쉬굴ㅡ이동순
  • 입력 : 2019. 08.15(목) 00:00
  •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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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주공산

하도 처참해서

바람도 숨죽이며

저 캄캄한 동굴 속에

지난날 토벌대에게 학살당한 주검들 있나니

제주도 구좌읍 중산간지대

다랑쉬굴에는

행여 연기라도 새어나갈세라

불빛이라도 보일세라

조심조심 밥 지어먹었을 가마솥 두 개

깨어진 항아리

요강단지

녹슨 비녀

늘 끼던 안경 혁대 신발들 옆에

서로 부둥켜안고 숨져간

하얀 해골들 누웠나니

비 오고 바람 부는 수십 년 세월

하도 억장이 막혀

혼령도 저승길 못 가고

지금껏 굴 주변을 울며 헤매이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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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름 위로 쟁반같이 뜨는 달의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 지은 이름 '다랑쉬'. 높은 봉우리라는 뜻을 지닌 '달수리', 한자식으로는 '월랑봉(月郞峰)'으로 불리기도 한다. 382.4m라는, 한라산에 비해서는 턱없이 낮은 높이지만, 제주 사람들에게는 '오름의 여왕'이라 불린다. 1948년 12월 18일 무장대는 세화리를 습격했다. 대대적인 수색에 나선 토벌대는 천연동굴을 발견했다. 토벌대는 수류탄을 굴속에 던지며 나올 것을 종용했다. 메밀짚과 잡풀로 불을 피워 동굴에 집어넣자 매캐한 연기가 번졌다. 모두 연기에 질식해 숨졌다. 아홉 살 난 어린이 1명과 여자 3명이 포함돼 충격을 주었다.

44년이 흐른 1992년 4월 2일. 다랑쉬굴 속에서는 11구의 유해가 '솥과 사발, 녹 먹은 탄피 몇 개' 등과 함께 발견되었다. 제주4·3연구소에 의해 비극의 현장이 드러났다. 입구 직경이 60~70~㎝로 기어 들어가야 할 만큼 좁지만, 그래서 더욱 몸을 숨길 수 있는 자연 동굴에서 먹고, 자는 피난생활을 한 것이다. 어떤 시신은 허리띠만 남아 있는 백골 상태로 변했다. 여자의 시신에는 비녀가 꽂혀 있었다. 주변에는 안경과 단추, 버클, 썩다 남은 옷가지, 가마솥, 숟가락, 곡괭이 등 102점이 유물이 발견됐다. 그런데 공안당국과 행정기관이 희생자를 두 번 죽이는 일이 벌어졌다. 유족들과 협의를 거치지 않고 시신을 산천단 화장터에서 불살라버렸다.

<김관후 작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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