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호의 월요논단] 비엔나의 도시 브랜드, 클림트의 '키스'

[김영호의 월요논단] 비엔나의 도시 브랜드, 클림트의 '키스'
  • 입력 : 2019. 08.26(월) 00:00
  • 김도영 수습기자 doyoung@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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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서 두 번째 긴 강 다뉴브의 하류에 자리한 인구 190만의 고도 비엔나. 트램과 지하철 그리고 버스노선이 기본이고 공용 자전거와 바이크가 있어 교통이 편리한 도시다. 구도심을 둘러싸고 있는 링 거리를 따라 세워진 다양한 양식의 건축들은 이 도시를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소의 하나로 부르기에 손색없다. 괴테와 모차르트 동상은 이곳을 살다 간 주인공들을 기억하고 있다. 도심 전체에 흩어진 수많은 뮤지엄들은 관광객들을 불러 모은다. 그 중 마리아 테레지아 광장에 자리한 자연사박물관과 미술사박물관은 합스부르크 제국의 꿈과 영예를 품은 이 도시의 자랑거리다.

하지만 비엔나에 향기를 퍼트리는 장소는 따로 있다. 벨베데레(Belvedere) 궁전이다. '아름다운 경치'라는 의미의 벨베데레는 왕궁을 개조해 만든 복합건물로 1800년대 후반부터 1900년대 초반의 미술품들을 소장하고 있다. 이 궁전이 향기의 진원인 이유는 바로 귀스타브 클림트의 명작 '키스(The Kiss)'가 이곳에 소장되고 있기 때문이다. 화가와 에밀의 초상으로 알려진 이 그림은 루브르의 모나리자 이상으로 대중적 인기를 모은다. 이 작품이 큰 사랑을 받고 있는 이유는 그림의 주인공이 비엔나를 살았던 인물들이자, 오스트리아의 혁신적 근대 미술사조로서 유겐트 스틸(영 스타일)의 대표작이라는 점을 들 수 있다. 그러나 정작 이 작품이 매혹적인 것은 몽환적이며 위험하고 치명적인 사랑의 비밀을 품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거기서 개인사를 넘어 비엔나의 역사와 시대를 관통해 온 보편적 삶의 단면을 본다.

클림트의 '키스'는 원근이 없는 텅 빈 공간을 배경으로 주인공과 그의 소울 메이트 에밀의 '영속적인 사랑의 순간'을 묘사한 것이다. 일체가 된 두 몸은 금빛의 강렬한 색면과 섬세한 디테일의 무늬로 장식되어 있다. 클림트가 일구어낸 저부조의 새로운 채색 기법은 화면에 영원한 사랑을 갈구하는 욕망의 시선을 자극하고 있다. 그러나 그 욕망은 위험이 따르는 것임을 말하려는 것일까. 꽃밭의 끝이자 '절벽의 경계'에 인물을 배치시킨 구도는 이 작품의 비밀을 암시한다. 위험하고 치명적인 인간사의 메시지다. 클림트는 이 비밀을 또 하나의 작품 '유디트(Judith)'에서 노골적으로 폭로하고 있다. 팜므 파탈(femme fatale), 성적 매력으로 남성을 파멸적인 상황으로 이끄는 여자를 말한다. 입술을 살짝 벌리고 뒤로 젖힌 고개에 시선을 아래로 드리운 그림 속 인물의 표정은 매혹적이다. 그러나 여인의 오른손에 들린 홀로페르네스(Holofernes)의 머리에 이르러 그림 속 메시지는 반전을 이룬다.

클림트의 작품 앞에서 우리는 생각한다. 한 점의 그림이 이렇게 도시를 빛내게 할 수 있을까. 우리는 제주를 대표하는 작품을 가지고 있을까. 지역의 장소성와 시대성을 품으면서도 인간 심리의 보편적 가치를 담고 있는 예술작품을 발굴하는 것이 오늘 우리들에게 주어진 당면 과제의 하나로 보인다. <김영호 중앙대 교수·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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