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경자의 하루를 시작하며] 오늘 하루, 나는 일을 했는가

[허경자의 하루를 시작하며] 오늘 하루, 나는 일을 했는가
  • 입력 : 2019. 08.28(수) 00:00
  • 김도영 수습기자 doyoung@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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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여름 나는 치과 순례로 휴가를 대신했다. 바쁘다는 핑계로 내 몸 하나 변변히 건사하지 못한 것이다. 급속히 얼어붙은 한일관계에 유례없는 폭염과 태풍, 지속되는 경기부진으로 기업상황이 녹록지 않은데 회사 대표라는 사람이 병원순례라니 참으로 면목없는 일이었다. 서늘해진 날씨에도 땀방울이 등줄기를 타고 내렸다.

요즘은 만나는 사람마다 경제이야기다. 저조한 경기 흐름에 불안해 했다. 올 2분기 제주지역의 수출도 지난해 대비 감소됐다고 한다. 고용상황 역시 악화되어 실업율도 증가했다는 발표다. 관광산업의 부진과 농수축산물의 생산활동 위축으로 지역의 장기침체가 우려되자 제주도의회에서도 실효성 있는 도민체감형 활성화 대책을 제기하고 나섰다. 불과 얼마 전 건설 호경기 및 이주민 증가로 식당이나 편의점 등이 북적거리고 거리가 활기찼던 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언제쯤이면 경제상황이 좋아질 것인지 경기 흐름이 회복세를 이룰지 만나는 이웃들의 마음이 가뭄을 만난 농심과도 같다.

기업의 책임을 맡은 나는 걱정이 더하다. 대표라는 직함을 얻은 지 어느새 5년, 일거리가 줄어드는 현실을 걱정하다 '리더 반성문'이라는 책 한 권을 잡게 됐다. 그동안 나는 어떤 리더였던가. 기업의 수장으로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행동을 했던가. 불확실한 경기 흐름의 타개책을 고민하는 나에게 저자는 자발적 성찰의 경종을 울린다. 조직의 성과는 그 조직을 이끄는 리더의 크기와 비례한다고, 아는 것과 안다고 착각하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다고, 적어도 리더라면 자신을 아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강렬한 화두가 나를 폭염에 가두었다.

살아오면서 갖게 된 여러 종류의 직함들, 그것은 직함이라기보다 커리어우먼에 대한 동경과 미진했던 사회적 역할에 대한 갈증에서 출발한 볼품없는 동네 감투였다. 그러나 빈약했던 그 직함 이면에 묻어있던 순직한 열정의 흔적들로 나는 용기내어 기업의 대표를 맡았고 심신을 투사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경영이란 진실로 어려운 일임을 철저히 깨닫는다. 생각했던 것보다 매우 복잡한 영역인데다 광범위한 책임소지의 절대구간임을 인지하게 되었던 것이다. 환경의 변화와 상관없이 직원들의 생계를 보장해야 하는 소리없는 전쟁터, 동전의 양면같은 영리와 나눔을 조화롭게 운용해야 하는 공익실천의 발원지, 구성원의 복지수위는 지속적으로 높이고 이윤은 그 이상으로 극대화해야 하는 모순성이 살아 숨쉬는 곳, 성실하고 정직하게 준비했어도 언제든 실패에 직면할 수 있고 늘 유연하게 대응하면서도 언제나 긴장의 끈은 놓지 않아야 하는 내면적 억압이 상존하는 곳이었다. 언젠가는 마무리 되는 프로젝트가 아니라 끊임없이 전진하고 도약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끝이 없는 길, 기업인의 자발적 도전과 이성적 실천만이 그 바탕에 전제되어야 했다.

경기침체와 회사에 대한 걱정으로 나는 반성문을 쓴다. 기업의 책임자로 나는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가? 매출목표 달성을 성과의 전부로 정의하고 해석하지는 않았던가. 회사구성원들이 스스로 실행 가능하도록 최선의 동기부여를 실행했는가. 마더쉽(mothership)이란 명제 아래 매순간 쏟아낸 나의 관심과 열정이 경영자의 상위역할이라 자만하지는 않았던가.

경영서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나니 어느새 선선한 9월이 코앞에 와있다. <허경자 ㈜대경엔지니어링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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