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영택의 한라칼럼] 송죽매와 신성 3총사를 흠모하며

[문영택의 한라칼럼] 송죽매와 신성 3총사를 흠모하며
  • 입력 : 2019. 09.03(화) 00:00
  • 김도영 수습기자 doyoung@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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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강평국 선생도 독립유공자로 선정됐다. 후손 없는 강평국 투사를 위해 신성여고 동문들이 나서 뜻을 이뤘다.

1909년 개교한 신성여학교를 1회로 졸업하고 1919년 경성여고보(현 경기여고) 사범과 재학중 3·1운동에 앞장선 강평국·고수선·최정숙 등 신성의 삼총사를 회상한다.

제주교육사에서 최초의 여교사로 기억되는 이름 강평국. 졸업식에서 일본국가 제창에 대한 거부감으로 최정숙과 함께 귀향한 그는, 일본과 친일자를 응징하는 반역자 구락부에 여성으로 유일하게 참여한다. 의술을 배우고 일본을 알기 위해 적진에 뛰어든 최초의 해외 유학생이었던 강평국. 그는 33년의 짧은 생을 살았음에도 다양한 방법으로 독립운동을 펼쳤던 제주의 선인이다.

가파도 출신으로 제주 여의사 1호였던 고수선은 임시정부 군자금 송금과 사회사업 등으로 1980년 대통령 표창과 제1회 만덕봉사상을,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는다. 1954년 국회의원 입후보 시절, 암탉이 울면 나라가 망한다는 한 남성후보의 공격에 "암탉이 울어야 새벽이 오고, 개명사회가 열리는 법이다"라고 일갈했던 이가 '운주당 고수선 할망'이다.

3·1운동시 일경에 체포된 최정숙은 서대문형무소에서 8개월의 옥고를 치렀다. 36세의 늦은 나이에 경성여의전에 입학한 후 의사가 되어 의원을 개원, 의료봉사에도 헌신했다. 1954년 신성여고 초대교장으로 봉직하던 최정숙은, 1964년 전국 최초의 여성 교육감에 선출된다. 또 한 분, 20년의 나이차를 뛰어넘어 신성 삼총사와 활동한 조천 출신 김시숙(金時淑)은 40세에 근대학문을 시작, 1925년 최정숙·강평국 등과 더불어 제주여자청년회를 조직하여 여성운동을 주도했던 인물이다.

신성 삼총사보다 10년 먼저 독립의지를 불태웠던 송죽매 3총사인 송산 김명식·죽암 고순흠·매원 홍두표. 1910년 나라를 잃자 비분강개한 그들은 사립 의흥학교가 있던 조천 연북정에서 국권회복을 위하여 신명을 바칠 것을 맹세하는 송죽매 결의형제(松竹梅 結義兄弟)를 맺는다. 이들은'하늘과 땅에 맹세하노니 저 해와 달은 증명하리니(천지위서天地爲誓 일월위증日月爲證)'라는 혈서를 적어 절개를 지키기로 약속하였다. 이를 세한삼우(歲寒三友) 송죽매의 혈맹결의라 전한다.

송산은 일본의 와세다 대학으로, 죽암은 경성전수학교(서울대 법대 전신)로, 매원은 메이지 대학으로 진학한다. 학업을 마친 송산과 죽암은 약속을 지켜 평생 항일운동에 헌신하나, 매원은 젊어서 생을 마감해야 했다. 탐라기년을 편찬한 김석익 등 여러 인사들이 만시(挽詩)를 지어 그의 죽음을 애도한다.

'매원은 사람됨이 정직하고 강계한 지사였다. 일본에 유학하여 당시의 준재들과 나라 잃은 비분을 토로하였다. 허로증을 얻어 돌아와 27세에 요절하였으니…'라고.

위의 3총사 중 유일하게 서훈 받지 못한 이가 홍두표이다. 고운 뜻을 펼치기도 전에 요절한 그의 죽음이 더욱 애석하다. 살아생전 조국의 독립을 위해 애쓴 매원 홍두표의 이름을 기억하는 것 또한 서훈 못지않게 우리가 해야할 일이리라.

<문영택 (사)질토래비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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