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상문의 에세이로 읽는 세상] 오로라를 기다리며

[허상문의 에세이로 읽는 세상] 오로라를 기다리며
  • 입력 : 2019. 09.04(수) 00:00
  • 김도영 수습기자 doyoung@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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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여름 필자는 자연이 만들어내는 가장 아름다운 경이(驚異)라는 오로라를 만나기 위해, 지상의 마지막 남은 순백의 빙하를 찾기 위해 북극으로 떠났다. 오로라와 빙하 천국이라는 알래스카를 자동차로 달리면서도 나는 오로라를 볼 수 없을지 모른다는 초조감을 느꼈다. 지금 내가 타고 가는 자동차가 내뿜는 매연에 질린 오로라가 어찌 그 모습을 보여줄 것인가.

이렇게 생각하면서도 알래스카의 페어뱅크스를 지나 북극선 위 카츠브 지역까지 차를 몰고 신나게 달렸다. 그곳은 여름 석 달은 밤이 없는 지역이고, 겨울 두 달은 낮이 없는 지역이다. 어둠이 밀려와 세상은 고요해져 갔지만, 북극곰과 나무와 꽃들은 잠들지 못했다. 그들은 수런대며 이 세상과 인간에 대해 근심하고 있었다. 그들의 가장 큰 걱정은 인간이 이제 더는 자연과 함께 어울리며 살려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오로라는 라틴어로 '새벽'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오로라는 빨강 초록 노랑의 다양한 색채로 물감을 풀어 놓은 듯 칠흑의 하늘에 커튼처럼 펼쳐진다. 별이 빛나는 밤하늘 위에서 펼쳐지는 이 광경을 보고 있으면 누구라도 자연에 대해 경이로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이 신비하고 아름다운 자연 현상은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흉내 낼 수 없는 것으로 그린란드와 알래스카 같은 북극 지방에서만 간혹 볼 수 있다. 이런 신비롭고 아름다운 자연현상이 나타난다는 것은 이 지역이 아직 철저하게 원시적 자연 상태로 보존되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우리는 모두 한 조각 별이 되어 어둠 속에서 헤매고 있다. 한 많은 이승에서나 아득한 저승에서나 별이 되어 별의 언어를 주고받으며 다시 한 몸이 되고자 한다. 우리는 별에서 태어나 별로 살다가 별로 환생할지 모른다. 사백삼십 광년을 달려 이제 막 지구에 도착한 북극성처럼, 우리는 별이 되어 뒤늦게나마 서로의 헐벗은 영혼을 달래줄 것이다. 오로라는 슬픈 영혼을 달래주려는 또 다른 영혼의 불빛이다.

그 옛날에는 모두가 하나였다. 밤하늘에 모인 별들이 하나가 되어 서로를 다독이고 있듯이, 강을 만나면 물이 되어 함께 건너고자 했다. 하늘과 별, 강과 물, 모두가 하나였다. 바람이 불어도 우리는 함께 넘어지고 함께 일어났다. 번개와 홍수도 우리를 갈라놓지는 못했다.

알래스카에서는 쓰러진 나무는 쓰러진 대로 썩은 나무는 썩은 대로 또 다른 생명을 탄생시킨다. 인간 삶의 적층(積層)이 어떻게 쌓여 왔고 어떻게 무너져 내리고 있는가를 보여준다. 무너진 아름드리 큰 나무에서 나이테가 선명하게 드러나 있다. 나는 그를 통하여 세월과 기억의 적층을 읽을 수 있었다. 나이테에는 지난 시간의 아픔과 슬픔이 담겨 있다. 나이테는 자연의 역사이고 인간의 역사이다.

지구온난화 현상으로 전 지구가 폭염에 휩싸여 있다는 소식이다. 알래스카와 북극 지역도 섭씨 30도를 오르내린다. 이곳 기상관측 이래 최고의 더위라고 한다. 북극 지역의 이상 기후에 에스키모 후예인 원주민들도 공포에 떨고 있다. 수백 년 동안 자연 상태를 유지하던 만년설과 빙하가 녹아내리고, 집을 잃은 곰들은 여기저기 헤매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이 모든 것은 인간이 스스로 만든 재앙이다.

<문학평론가·영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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