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춘자 할머니와 제주 4‧3 그리고 사진

김춘자 할머니와 제주 4‧3 그리고 사진
4·3평화재단에 ‘함명리예배당’ 헌당 사진등 기탁
사료적 가치 높아…"나무 한그루라도" 성금도
  • 입력 : 2019. 09.09(월) 10:27
  • 조상윤 기자 sycho@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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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사연을 간직한 함명리예배당 헌당식 사진.

제주4‧3의 아픔을 간직하고 살아온 4‧3유족인 팔순할머니가 4‧3당시 사진과 성금을 기탁해 화제가 되고 있다.

제주4·3평화재단(이사장 양조훈)은 4·3유족인 김춘자 할머니(80)가 최근 평화재단을 방문해 70년을 간직해온 사진 6점과 성금 100만원을 기탁했다고 9일 밝혔다.

제주시 화북 거로마을 출신인 김 할머니는 4·3 당시 9세의 어린 몸으로 아버지와 작은아버지, 막내고모가 총살당하고, 쌍둥이었던 다른 작은 아버지는 육지 형무소로 끌려가는 아픔을 겪었다. 김 할머니의 아버지와 여중생이던 막내고모는 1949년 2월 20일 도두리 궤동산에서 주민 70여명과 함께 집단 총살당했다. 김 할머니에겐 아버지와 막내고모의 죽음을 슬퍼할 겨를도 허락되지 않았다.

농업학교에 재학 중이던 영특했던 쌍둥이 작은 아버지 한 분은 고산동산 근처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고, 행방을 알 수 없던 다른 작은 아버지는 인천형무소로 끌려가 수형인이 돼 있었다.

아들과 딸 등 자식 4명의 비극을 겪은 할아버지(김광수)는 9세 손녀에겐 아버지 역할을 대신했다. 할아버지는 돌아가실 때까지 아들과 딸의 모습이 담겨진 사진들을 고이 간직하며 때론 눈물을 흘렸다.

이번에 4‧3평화재단에 기증한 할아버지의 유품 사진 6점은 제주공립농업중학교 졸업기념 사진, 화북보통학교 졸업기념 사진, 제주 함명리 예배당 헌당식 기념촬영 사진 등이다.

이 중에도 1949년 9월 14일 촬영된 함명리 예배당 헌당식 사진은 사료적 가치가 높다. 경찰간부와 지역유지, 마을 주민들이 참석해 찍은 예배당 헌당식 사진은 그 지명 유래부터 아픈 기억이 담겨있다. 1949년 2월 봉개마을을 초토화시킨 장본인인 2연대 함병선 연대장과 작전참모 김명 대위는 나중에 봉개마을을 재건하면서 자신들의 이름을 조합해서 마을 이름 자체를 ‘함명리’로 바꿔버렸기 때문이다.

이런 수모를 견딜 수 없었던 마을 주민들은 훗날 본래의 이름 ‘봉개리’를 되찾았다.



김 할머니는 사진을 건네며 “늘 4‧3평화공원에 모셔져 있는 아버지, 작은아버지, 고모님 위패에 위안을 받는다”며 “이렇게 사진을 기증하니 4‧3평화기념관과 4‧3평화공원에 더욱 애틋한 마음이 든다”고 말했다. 이어 성금 100만원을 기탁하면서 “4‧3영혼들의 안식과 평온을 위해 평화공원에 작은 나무 한그루라도 보태고 싶은 마음에 조그만 정성을 보탠다”고 덧붙였다.

양조훈 이사장은 “사료적 가치를 지닌 사진과 성금에 너무 감사드린다”며 “사진은 온라인 이용자들이 볼 수 있도록 디지털 스캔을 통해 아카이브 자료로 등록하고 성금은 4‧3평화공원 평화의 숲에 쓰일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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