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후 작가의 시(詩)로 읽는 4·3] (27)꿩마농 고장-노형 1948년 11월 19일(금)(김성수)

[김관후 작가의 시(詩)로 읽는 4·3] (27)꿩마농 고장-노형 1948년 11월 19일(금)(김성수)
  • 입력 : 2019. 09.26(목) 00:00
  • 김경섭 기자 kks@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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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슴이,

살아 숨어서 꽃피우는 데는 최적이라는 걸 봐왔습니다, 그네들

또한 모를 리가 아니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불, 불부터 놓았습니다

-숨어 앉은 꿩은 절대 쏘지 않는다

꿩 한 마리 날아올랐습니다, 탕

그이 또한 사람 속에 사람이 숨는 것이 최적이라고 여겼을 겁니다 그러나 저 꿩 한 마리처럼 목숨은 사람으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라 총구멍으로부터 나온다는 걸 너무 늦게 알았습니다, 탕

내게 작은 아버지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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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은 처연(凄然)하다. 봄이 오면 유채꽃과 진달래가 피어나고 4·3은 찾아온다. 달래도 지천이다. 달래를 제주에서는 '꿩마농'이라 부른다. 올레를 걷다 보면 사방에 눈에 띄는 것이 꿩마농이다. 고유의 독특한 향을 품고 올레꾼들의 발길을 붙잡는다. 들고 간 배낭을 얼추 채우면 저녁거리는 거뜬히 해결된다. 노형(老衡)의 유래는 '뇌형(瀨形)'에서 온 것으로 전해진다. 지형이 '배와 같고 큰 못에 배를 띄우고 노를 젓는 형태'라 하여 붙여진 명칭이다. 한라산을 배후하여 남쪽으로는 어승생과 한라산을 등지고 있으며 배의 노(櫓)를 젓는 형태를 이루고 있다. 숨어있는 꿩은 절대로 쏘지 않는다. 꿩이 날아오르자 총구멍이 불을 뿜는다. 시인의 작은 아버지도 총탄에 쓰러졌다. 어디 시인의 작은 아버지 뿐인가? 4·3으로 인해 희생자만도 노형에서만 550명이 넘는다. 가장 피해가 많은 마을이다.1948년 11월 19일, 주민들은 정실마을이 불타는 것을 멀리서 바라보면서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이날 오후 토벌대원들은 마을로 들이닥쳐 마을 전체를 불바다로 만들어 버렸다.

당시 노형은 원노형·월랑·정존·광평·월산 등 5개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었다. 주민들은 5·10선거를 맞으면서 투표를 거부하기 위해 주변 산으로 피신했다. 월랑주민들은 '조리물'로, 정존주민들은 '고냉이동산'으로 가서 며칠씩 숨어 지냈다. 그날 제9연대 병력이 월랑마을 첫 동네로 들이닥쳐 마을을 불태우기 시작했다. 보이는 대로 쏴 죽였다. 다음 군인들은 정존·광평마을로 가서 방화와 학살을 계속하였다. 다음 날에는 노형 모든 마을이 불에 타 잿더미가 되었다. 마을이 소각된 후 주민들은 이호·도두 등 해안마을로 소개되어 삶을 이어갔다. 그곳에서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또 다른 죽음이었다. 제2연대의 이호·도두에서의 학살을 두 눈으로 본 주민들은 깊숙한 산간지역으로 숨어들어간다. 주민들은 1949년 봄, 정존에 성을 쌓고 복귀한다. 성에는 마을별로 네 구역으로 나눠 살았다. 성 가운데는 경찰출장소도 설치돼 돌담을 쌓고 경찰이 주둔했다. 주민들은 마을 성에서 약 5년간을 함바집을 짓고 살다 각 마을로 복귀한다.(김관후 작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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