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영의 건강&생활] 나의 미래가 우울하다면

[이소영의 건강&생활] 나의 미래가 우울하다면
  • 입력 : 2019. 10.09(수) 00:00
  • 김도영 기자 doyoung@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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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르신 환자 분들을 볼 때 자주 떠올리는 생각은 그 분들이 그간 어떤 길을 걸어왔든지에 상관 없이, 인생이라는 장거리 레이스의 종착점에 가까이 간 분들이라는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길의 방향도, 길의 끝이 어딘지도 모르는 긴 여정의 순례자이다. 나 또한 그런 순례자의 한 사람이기에, 환자분들께 경외감과 부러움을 함께 느끼곤 한다. 길고 험한 등산로를 오를 때 나보다 훨씬 높이 가 있거나 아니면 벌써 하산 중인 사람을 볼 때 드는 감정과도 비슷하다.

그런데, 실제 삶에는 마라톤이나 등산으로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함과 어려움이 있다. 마라톤을 달리는 사람들이 중도 포기하고 싶은 생각을 언제 가장 강하게 느끼는지, 그리고 실제로 포기하는 일은 어느 시점에 발생하는지에 대한 통계나 연구가 있는지 찾아 본 일이 있다. 마라톤을 뛸 때는, 레이스의 절반을 넘었을 무렵부터 육체적 고통이 점점 극심해질 수록 그만두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한다. 흥미로운 것은 결승선이 가까워지면 다시, 포기하는 사람이 급격히 줄어들어 결승선을 코 앞에 두고 포기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는 점이다. 슬프게도, 인생이라는 레이스에서는 눈에 보이는 결승선이 존재하지 않아서인지, 나이가 들 수록 자살률이 계속해 증가하는 양상을 보인다.

죽음이 갖는 영향력 혹은 자살이 언론에서 다뤄지는 방식 때문인지, 일견, 자살이 비교적 젊은 나이의 사람에게 발생하는 일이 아닌가 착각하기 쉽다. 하지만 자살률은 사실 나이에 따라 선형으로 증가한다. 자살을 실행에 옮기는 사람의 삼분의 일 이상이 노년층이라는 통계는 아마도 우리가 애써 외면하고 싶은 사실일 지도 모른다. 내가 주어진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가 나이가 들 수록 더 우울해지고, 희망을 잃게 되고, 오히려 삶보다 죽음을 더 생각하게 된다면 그보다 더 좌절스러운 일이 어디 있을까.

무엇이 노년기의 인간을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으로 내모는 것일까. 자살의 원인에는 너무나 다양한 배경과 요인들이 존재한다. 정신과적 질환으로는 우울증과 가장 큰 관련이 있고, 이 외에도 심리 사회적인 요인, 생물학적 요인 등이 작용한다. 타 국가와 비교했을 때 노인 자살률을 포함, 전체 자살률이 단연 높다는 우리 나라의 특수성은 아마 심리 사회적인 요인에서 찾아야 타당할 것이다. 급격히 이룬 정치, 경제, 사회적 발전으로 인해 현재 노년층이 겪어야 했던 적응의 부담 그 자체와 미처 노후를 충분히 대비할 기회가 없었던 세대의 대다수가 직면한 경제적 어려움 등이 그것이다.

노년층의 위기는 젊은 세대에게 '남의 일'이 아닌 내가 나서 해결해야 할 과제다. 그것이 나와 다른 종류의 사람들이 겪는 일들도, 내가 이미 지나버린 소아기에 발생하는 일도 아니고, 내가 제 수명대로 살아남는다면 겪게 될 '나의 미래'이기 때문이다. 내 생의 마라톤 레이스를 뿌듯한 기분으로 마무리 할 수 있다면 그보다 행복한 일이 있을까. 노년 자살을 더 이상 쉬쉬할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공론화 하고 노인 복지에 실효성 있는 대책을 마련하는 일이 절실한 이유다. <이소영 정신과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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