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 장편 연재] 갈바람 광시곡(34)

[강준 장편 연재] 갈바람 광시곡(34)
  • 입력 : 2019. 10.17(목) 20:00
  • 편집부 기자 hl@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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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 작/고재만 그림

12-2. 괸당들이 사는 법



"중국인들이 이렇게 투자를 하는 이유는 단순히 영주권을 얻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이익을 창출하기 위해섭니다. 제주에 유입되는 중국인들을 이용하여 이득을 얻기 위한 것인데 이것은 투기입니다."




다른 토론자들의 의견을 메모하던 문대호는 입 주변 근육의 긴장을 풀려는 듯 입을 크게 벌렸다가 오므리며 마이크를 앞으로 당겼다.

"외국인 토지 소유의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국가가 중국이고 또한 중국 자본에 의한 대규모 개발이 자연경관과 환경 훼손 문제, 숙박과 카지노 중심의 개발프로그램 등 지역 사회에 갖가지 이슈가 되면서 부정적인 여론이 형성되고 있습니다.

실제로 중국인이 취득한 토지 현황을 살펴보면, 2010년부터 증가세를 보이다가 2015년에는 다소 감소하는 경향을 보이는데, 이는 토지개발의 시세차익을 노려 처분하기 때문이라고 판단합니다.

삽화=고재만 화백

중국인들이 이렇게 투자를 하는 이유는 단순히 영주권을 얻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이익을 창출하기 위해섭니다. 제주의 경제를 위해서가 아니라 제주에 유입되는 중국인들을 이용하여 이득을 얻기 위한 것인데, 이것은 투기입니다. 투자란 자본을 투입하여 일자리를 만들고 경제를 활성화하여 거기에 따른 이익을 취하는 것인데, 중국 자본은 난개발로 환경을 파괴하고 땅값을 올리고 일자리를 빼앗고 시세차익을 노리는 투기입니다. 거기에 행정 당국은 취득세, 교육세 등 지방세, 농어촌특별세, 재산세 등 각종 세금 감면 혜택을 주고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문대호의 질문에 여창희가 불편한 기색을 감추면서 마이크의 버튼을 눌렀다.

"중국 자본의 투기성 논란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아직까지 사업권을 넘기거나 사업을 중도 포기하는 조짐은 전혀 없습니다. 불량 기업을 구별하기 위해 외국자본의 투자유치 초기 단계에서 투자업체의 신용상태, 투자 의지, 사업계획의 실행성 등을 전문기관에 의뢰해 평가하고 있습니다. 중국기업을 포함 외국인 기업들에 대해 더 많은 인센티브를 주고 있다는 오해가 일부 있는데 이는 실상과 다릅니다. 국내기업과 동일하게 국내법을 준수하고 사업을 운영하고 있고 동등한 대우를 하고 있습니다."

발제자는 도정의 정책 브레인임을 과시하듯 행정당국자의 입장을 대변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후줄근한 갈중이를 입고 차례를 기다리던 곶자왈 지킴이 대표가 마이크의 버튼을 누르며 질문을 했다.

"중국인들의 토지매입은 대부분 경관이 뛰어난 지역 혹은 상품적 가치가 있는 장소를 중심으로 매입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중산간 지역은 제주의 환경과 경관의 가치를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공간이고 특히 곶자왈 지역은 제주의 지하수와 생태, 제주환경의 생명이자 미래발전에 있어서 중요한 환경자원으로의 가치를 갖고 있음은 누구나 공감하고 있는 사실 아닙니까? 이를 마구잡이식으로 개발하면 생명수 고갈 등 파국을 불러올 것인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에 대해서도 발제자는 원론적인 답변을 내놓았다.

"제주는 환경이 기본이어서 환경영향평가 심사가 까다롭습니다. 다른 시도는 각자 계획에 의해 정부가 만든 기준에 맞추면 완료되지만, 제주도는 제주특별법에 상대, 절대 보전지역 등 자체적으로 규정을 만들었습니다. 다른 시도의 환경영향평가는 30만㎡이상이면 반드시 해야 하지만, 제주도의 경우에는 5만㎡이상이면 환경영향평가위원회 심의를 받은 후 타 시도에 없는 도의회 동의절차를 이행하게 됩니다. 제주지역은 또 모든 토지의 생태, 경관, 지하수 상태에 따라 1~5등급으로 분류하는 GIS(지리정보)시스템을 통한 엄격한 환경보전 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그게 너무 낮게 책정되어서 실효성이 없지 않습니까?"

"제주도의 환경정책은 '선 보전 후 개발의 원칙'이 있습니다. 환경과 경제통합의 원칙인데 개발 하려는 이익과 보전가치에 대한 밸런스를 맞추자는 것입니다. 이렇게 운영하다 보니 환경은 실제로 국내 육지부에서 온 기업들이나 외국의 투자자들이 가장 고충을 호소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팔짱을 끼고 느긋하게 장내에 모인 사람들을 살피며 토론을 듣다가 가끔 코웃음을 치던 탐라대학교 교수가 사회자로부터 소개받고 토론에 나섰다.

"현실적으로 JDC와 같은 공기업뿐만 아니라 각종 민간자본에 의해 지역경제 활성화 명목아래 개발이 추진되면서 유네스코 3관왕으로서 실천해야 하는 환경보전에 대한 의지와 노력과는 반대로 개발 사업을 추진하는 정책적 모순성을 갖고 있는데 발제자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또한, 중국인의 부동산 투자는 이전까지는 매입실적이 미비하고 매입토지의 위치도 해안지역에 편중되는 경향이 있었으나 2010년부터는 특히 제주시 신시가지 지역 주요 도로에 인접한 토지를 집중적으로 매입하고 있습니다. 중국인의 소유 토지가 아직 1%도 안 된다고 하지만 지역의 노른자 땅만 콕 집어 매입하는 현실을 무시한 평가 아닙니까?"

구체적 내용을 들고 질문하자 여창희가 한 발 물러서는 태도를 보였다.

"중국인들은 대부분 주거시설용으로 토지를 매입하고 있으나 호텔, 팬션, 식당 등을 매입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부동산 이민 투자의 부작용에 대해 행정 당국도 이를 분석하고 후속 대책을 마련 중에 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것은 투자 지역을 특정주거지역으로 한정하고 5억 원 외에 다량의 채권을 구입하도록 하는 것과 아랍에미리트처럼 영주권자들에게 일정기간 이후에 수수료를 받고 재심사를 받게 하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이어서 프런트 토론이 이어졌다.

'송악산 일대의 거의 대부분 지역을 중국인이 매입한 것으로 드러났다. 송악산 일대는 알뜨르 비행장을 비롯하여 동굴 진지 등 일제강점기의 군사유적뿐만 아니라 한국전쟁의 군사유적이 많이 남아있는 한국 근대사의 축소판으로서 매우 중요한 지역인데 무슨 저의가 있는 건 아닌가?'

'섭지코지 일대도 중국 자본에 넘어갔다.'는 등의 문제점이 제기되었다.



"저는 제주에 온 지 11년 째 되는 이주민입니다. 나이 들면 제주에 살려고 중산간에 있는 땅 약 삼만 평을 구해 놓았어요. 그때는 쓸모없는 잡종지였지만 그 땅값이 올라가니까 나를 악덕 투기업자로 매도하는 거예요."



세미나가 끝나자 대호는 도의회 주변의 카페로 용찬을 데리고 갔다.

"여 교수는 아직도 박 지사와 함께 일하나?"

"전형진은 도지사 후보자 추천서부터 정책공약개발, 후원금 조성까지 관여해. 그리고 기초마을 단위, 직능별 단위의 탄탄한 조직과 도의회의 지원세력을 가지고 있어서 그의 영향력은 대단해요. 설령 그가 미는 후보자가 낙선하더라도 당선자는 그의 힘을 빌리지 않으면 아무 일도 할 수 없어요. 여기 공무원 사회는 지연, 혈연, 학연 등의 네트워크로 꽉 조여진 구조란 거 모르세요?"

"괸당 문화 알지. 지역 토호들의 생존방식이지."

"괸당 중에서도 성골이어야만 선거에서 이길 수 있어요."

"성골? 신라시대 골품제 말이야?"

"우스갯소린데 보이지 않은 힘이 존재해요. 성골은 제주에서 나고 대학까지 나온 사람이고, 형처럼 제주출신이지만 육지물을 먹은 사람은 진골이라 해서 애써 한 단계 밑으로 봐요."

"열등감에서 나온 시기심이로구만?"

"순수한 토종끼리 뭉치자는 좁쌀 심뽀죠."

"그럼 전형진은 성골이고 박 지사는 진골이네?"

"박 지사가 성골들의 도움을 받는 거죠. 헌데, 두목회를 등에 업고 랴오닝이 하나도 섬 전체를 매입한다는 소문이 파다해요."

"소문과 추측만으로 기사를 쓸 수는 없어."

"내 안테나에 랴오닝 회장이 금명간 하나도를 방문한다는 정보가 잡혔어요."

"나도 랴오닝이 해외로 사업을 확장한다는 정보는 들었어."

"하나도를 매입해서 하나랜드를 만든대요. 취재 잘 해보세요."

용찬은 중국인들이 이미 주민들과 접촉해서 하나도 사람들이 땅과 집을 팔고 섬을 떠나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

"그래? 기자보다 어떻게 정보가 빠르지?"

"우리끼리 통하는 네트워크가 따로 있어요."

끼리끼리는 알지만, 세상에 밝혀지지 않은 일들이 너무 많다. 그것은 그들만의 정보망을 통해서 자기들끼리만 공유하는 또 다른 세계다. 그래서 정보화, 개방화의 시대에선 노는 물이 다르면 정보의 컨텐츠도 다르다.

"그 아름다운 하나도를 중국에 넘겨줘선 안 되지. 그러기 전에 두목회를 잡아야 할 텐데 무슨 증거 될 만한 것 얻을 수 없을까?"

문대호가 눈을 번쩍이더니 무슨 수가 떠오른 듯 무릎을 탁 쳤다.

"아, 있어요. 형, 룸 베이징 잘 알지? 두목회 모임이 있는 날 거기서 술 한 잔 사요."

베이징이라는 말에 정소영의 환히 웃는 얼굴이 떠올랐다. 용찬은 대호가 무슨 수를 꾸미는지 대충 짐작하고 그리하마고 했다.



도청 앞을 지나는데 정문 앞에서 혼자서 피켓 시위를 하고 있는 나이가 지긋한 사람이 눈에 띄었다. '자연녹지 웬말이냐, 농경지로 환원하라.''빽 있는 놈 개발허가, 줄 없는 놈 차별하나?'

용찬은 기자의 촉으로 필시 기사감이 될 것 같아서 도로변에 차를 세웠다. 다가가서 명함을 내밀며 대화를 시도했다. 용찬을 바라보는 그의 눈에는 곧 그러그렁 눈물이 맺혔다. 용찬은 도청 내에 커피를 팔고 있는 휴게실로 그를 데리고 갔다.

그는 무슨 부동산개발 회장 정기성이라고 적힌 명함을 내밀었다. 커피가 나오자 용찬이 두 잔을 양손에 들고 왔다.

"저는 제주에 온 지 11년 째 되는 이주민입니다. 젊은 시절 제주에 왔다가 나이 들면 제주에 살려고 중산간에 있는 땅 약 삼만 평을 구해 놓았어요. 그때는 쓸모없는 잡종지였어요. 헌데 요즘에 와서 그 땅 값이 올라가고 개발을 하려니까 나를 악덕 투기업자로 매도하는 거예요."

용찬은 정 회장의 말을 메모하며 물었다.

"위치가 어느 지경입니까?"

"서귀포 차이나타운이 들어서고 있는 삼미동 부근 땅입니다. 바다가 훤히 내려다 보이는 경치 좋은 곳이죠."

"선견지명이 있으셨던 모양이네요?"

<강준 작가 joon445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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