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일보 홈페이지에 오신것을 환영합니다.

본문으로 바로가기

실시간뉴스

기획특집
강준 장편 연재/갈바람 광시곡
[강준 장편 연재] 갈바람 광시곡(37)
편집부 기자 hl@ihalla.com
입력 : 2019. 11.07. 20:00:00
  • 글자크기
  • 글자크기
  • 홈
  • 메일
  • 스크랩
  • 프린트
  • 리스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밴드
  • 구글

강준 작/고재만 그림

13-1. 하나도 프로젝트



생명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공중도덕이나 준법정신 따위가 안중에 있을 리 없었다. 생활이 불안하고 각박한 상황에서 타인에 대한 친절에 마음 쓸 여유도 없다. 내가 편하면 그만이고 안 지켜도 된다는 사고방식이 만연했다.




아침에 안개가 끼는 날은 중 대가리 터진다는 속담이 있는데, 햇볕은 따가웠으나 바람은 아주 부드러웠다.

용찬은 아침 일찍 차를 몰아 하나도 도항선이 드나드는 항구로 갔다. 밤중에 문대호에게서 랴오닝 회장이 제주에 왔다는 전화가 걸려 왔다. 공항의 보안 당국자에 확인해보니 전날 입국자 명단에 리밍타오(李明都)가 있었다.

평일인데도 하나도에 가려는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었다. 도항선에 오르니 객실에는 알록달록한 아웃도어 복장을 한 관광객들로 가득 찼다. 선내가 시끄러웠다. 마치 싸우는 사람처럼 고성을 지르며 소란스럽게 떠드는 것은 중국 단체관광객들이었다. 곁에서 눈치를 주어도 그들은 염치없이 떠들었다.

삽화=고재만 화백



중국인들이 이렇게 공중질서와 윤리 규범을 지키지 않은 것은 그들의 역사, 살아온 환경과 무관하지 않다.

그들이 주장하는 4,600여 년의 역사 중 4,200여 년을 주변국들의 침략과 지배를 받아왔다. 그들은 늘 침략에 대비해야 했고 피난길에 올라야 했다. 남을 믿을 수 없으니 자기중심적이었다. 그들은 세계의 중심(中國)이고 나머지는 다 오랑캐다. 사방으로 동이(東夷), 서융(西戎), 남만(南蠻), 북적(北狄)에 둘러싸여 있다. 그런 생명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공중도덕이나 준법정신 따위가 안중에 있을 리 없었다. 생활이 불안하고 각박한 상황에서 타인에 대한 배려에 마음 쓸 여유도 없다. 규칙 따위는 번거로운 것이고 필요에 따라 바꿀 수 있고 내가 편하면 그만이고 안 지켜도 된다는 사고방식이 만연했다. 가족들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 하나라도 더 얻기 위해선 억척스러워야 하고 남들보다 목소리도 커야 했다.

그나마 2008년 베이징 올림픽과 2010년 상하이 엑스포를 준비하며 문화와 예절을 중시하고 새로운 기풍을 수립하는 5대 문명 활동을 전개했다.

그 가운데 '줄 서는 예의'를 중요 활동의 하나로 정했다. '줄 서는 날'을 따로 정하고 베이징 전역에서 수십만의 자원봉사자를 모집했다. 그들을 버스정류장이나 공원, 번화가 마켓 등 약 2,000군데 공공장소에 보내어 100만 시민을 줄 세우는데 성공했다. 이런 활동이 상하이나 광저우 같은 도시로 확산되면서 서서히 시민 의식이 생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우리나라처럼 SNS를 활용할 수 있는 인터넷 기반시설이 널리 깔린 것도 아니어서 개인주의적 무질서 유전자가 몸에 밴 14억 인구를 하루아침에 공익 캠페인으로 계도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하나도 포구에 내리자 얼른 눈에 들어오는 것은 곳곳에 걸린 색색의 생경한 현수막들이었다.

'하나도를 사수하자, 중국자본 물러가라''섬에서 내쫓기면 어디 가서 뭘 먹고 살란 말이냐.'

청년회, 부인회, 노인회, 해녀회, 향우회, 결사단 등에서 내건 구호들이 하나도의 현실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런데 같은 배를 타고 온 깍두기 머리의 건장한 청년들이 행동대장인 듯 한 사내의 지시에 재빨리 달려가더니 칼로 줄을 끊고 현수막들을 철거하기 시작했다. 관광객들이 그 광경을 보며 지나가는데, 어디선가 한 청년이 뛰어와 이들의 행동을 제지했다.

"야 너희들 뭐야?"

그러자 예닐곱 명이나 되는 사내들이 달려들어 대답 대신 청년을 제압했다. 청년은 악다구니를 쓰며 반항했지만 속수무책이었다. 드러누워 발악하는 청년을 등치 좋은 네 명의 어깨들이 손발을 잡고 부동산 사무실 간판이 붙은 건물로 데리고 갔다. 나머지 어깨들은 수거한 현수막을 한곳에 모으고는 불에 태웠다. 기름 성분이 묻은 천이라 불은 매캐한 연기를 내며 쉽게 탔다. 뒤늦게 또 다른 청년 한 명이 달려와 쌍욕을 퍼부으며 항의를 했으나 상황은 종료된 후였다.

용찬은 이 광경을 구경하는 관광객들 틈에 끼어 몰래 사진 몇 장을 찍었으나 끼어들고픈 생각은 애초에 없었다.



용찬은 언쟁이 벌어지고 있는 현장을 떠나 해안가를 따라 걸었다. 돌담으로 경계가 나누어진 밭에서 자라는 청보리들은 따스한 햇볕에 멱을 감고 있는 듯, 때맞추어 불어오는 바람에 싱그럽게 빛나는 나신들을 요염하게 흔들었다.

언덕 위에 오르니 숨이 가빴다.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니 멀리 한라산이 구름 속에서 비쭉 머리를 내밀고 있었다.

관광객을 실은 유람선이 푸르고 맑은 바다 위에 기다란 생채기를 내며 미끄러져 가고 있었다. 용찬은 카메라의 파인드에 눈을 붙이고 눈앞에 펼쳐진 푸른 보리밭과 숭숭 구멍 뚫린 현무암의 밭담, 햇살을 받아 더욱 짙어진 에머랄드빛 바다와 멀리 올망졸망 한가롭게 누워 있는 오름, 하얀 구름이 둥둥 떠가는 하늘을 한 컷에 담았다.

용찬의 입에서 '아름답다'라는 말이 절로 터져 나왔다.

섬을 한 바퀴 도는 데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출발했던 포구로 돌아오는데 뱃속에서 꼬로록 소리가 들렸다. 생각해보니 아침에 식빵이 없어서 우유 한 잔 먹은 게 전부였다.

시계를 보니 11시가 가까웠다. 용찬은 아점을 먹을 생각으로 두리번거리며 식당을 찾았다. 몸국, 깅이죽, 국수. 메뉴를 창가에 써 붙인 식당이 보였다.

열린 문 사이로 식탁에 앉아 채소를 다듬고 있는 아주머니가 보였다.

"식사 됩니까?"

"혼저 옵서. 물때가 다 돼 부난, 국수 밖에 안 되쿠다."

"예. 국수 좋수다."

아주머니는 다듬던 채소 차롱을 들고 주방으로 들어갔다. 주방이라고 하지만 식탁에 앉아서도 안이 훤히 내다보이는 구조였다.

"아주머니네도 땅 파셨어요?"

음식을 장만하는 아주머니 등에다 대고 물었다. 그 말에 아주머니는 못마땅한 듯 돌아서서 용찬을 노려보았다.

"무사 손님도 땅 사래 옵데강?(왜 손님도 땅 사러 오셨어요?)"

"아니우다. 땅 때문에 하도 시끄럽다기에."

아주머니는 다시 돌아서서 음식 만드는 일에 열중하며 대답을 했다.

"이거 조상님 누웡 이신 땅을 팔아ㅤㄷㅝㅇ 어떵허젠 햄신디사. 중국 어느 부재가 이 섬 몬딱(모두) 사켄허지 안 햄수가?"

"게난 하영들 팔아수가?(그래서 많이 팔았나요?)"

"팔안 나간 사름덜도 하우다. 누게 하나 거들떠보지도 않던 땅을 중국 사름들 드나들멍 열배 스무 배로 올령 사켄허니 동네 사름덜 눈깔이 뒤집혀 분 거우다. 여길 떠나믄 어디강 무신 거 허영 먹엉 삽니까? 바당 건너 삼미동 사람들도 땅 팔아먹은 거 후회 막심이엔 허는디. 여기도 강제 수용해 블건가 양?"

"영 아름다운 섬을 그럴 리가 이수가?

"요즘 여기 사름덜 조드는(걱정하는) 게 일이우다. 물질을 허멍서도 물 위에 뜬 테왁처럼 마음에 바람이 들어가지고. 에이고 ㅤㅉㅡㅈㅤㅉㅡㅈ. 돈이 웬수주."

아주머니는 돌아선 채 넋두리를 계속 풀어놓았다.



그런데 리밍타오 오른쪽에 낯이 많이 익은 사람이 동행했는데,

용찬은 그가 전형진 전 지사라는 걸 일행이 지나가고 나서야 기억해 냈다.




국수를 먹고 식당을 나서는데 포구에 도항선이 도착해서 손님들이 내리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관광객들은 없고 정장을 입은 사람들 일행만 배에서 내렸다. 흰색 정장에 하얀 모자와 검은색 색안경을 쓰고 콧수염을 기른 사람을 건장한 보디가드들이 호위하며 걸어오고 있었다.

용찬은 그가 리밍타오라는 것을 직감했다. 주변 인물들을 찬찬히 살피다가 리밍타오 옆에 찰떡처럼 붙어 이야기하며 걸어오는 낯익은 얼굴을 발견했다. 그는 때로 뒤돌아서서 포구의 정경과 그 앞에 펼쳐진 본토의 모습을 가리키며 열심히 설명하고 있었다.

어깨를 젖히며 걷는 독특한 걸음걸이는 분명 왕금산이었다. 며칠 전 술에 취해 넋두리하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이 씩씩했다. 용찬은 얼른 카메라를 꺼내 몰래 몇 컷을 찍었다.

리밍타오는 주변 경관을 살피며 오른손 엄지를 세우며 '띵 하오','뷰티플', '굿'을 연발했다.

일행이 다시 돌아서서 다가오자 용찬은 손을 들어 금산에게 반가움을 표현했다. 금산은 힐끗거리며 쳐다보다가 가까이 다가와서야 용찬을 알아보고 손을 들어 화답했다. 그런데 리밍타오 오른쪽에 어디서 본 듯한 사람이 동행했는데, 용찬은 그가 전형진 전 지사라는 걸 일행이 지나가고 나서야 기억해 냈다.



"형. 지금 어딨어?"

전화기를 타고 들려오는 대호의 목소리는 들떠 있었다.

"지금 사무실."

"성공이야. 화질도 깨끗하고 부인할 수 없는 증거 잡았어."



룸 베이징에 몰래 설치해놓은 카메라의 영상을 가지고 대호가 사무실 문을 두드렸다.

대호는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를 정도로 긴장한 얼굴로 들어오더니, 의자에 앉아 노트북에 USB를 꽂았다.

"어제 하나도에서 전형진이 랴오닝 회장을 대동하고 나타난 걸 봤어."

"정보 들었어요. 왕금산이 안내했죠?"

"소식 참 빠르네."

"자 봐요, 두목회의 계략이 적나라하게 나타난 증겁니다. 이거 하나면 두목회가 어떻게 도정을 농단해 왔는지 실상을 고발할 수 있어요."

영상의 배경은 어두웠으나 카메라의 위치가 좋아서 두목회 멤버들의 얼굴들이 확연하게 구별되었다.

"전 지사 말 들어봐요. 이 사람 랴오닝 그룹과 밀착 돼 있는 것이 확실해."

화면을 보는 용찬의 눈빛이 빛나기 시작했다.

"자 여기서부터 봐요."

대호가 마우스를 조작하며 화면을 어느 지점에 고정하자 전형진이 나타났다.

<강준 작가 joon4455@naver.com>

강준 장편 연재/갈바람 광시곡 주요기사
[강준 장편 연재] 갈바람 광시곡(38) [강준 장편 연재] 갈바람 광시곡(37)
[강준 장편 연재] 갈바람 광시곡(36) [강준 장편 연재] 갈바람 광시곡(35)
[강준 장편 연재] 갈바람 광시곡(34) [강준 장편 연재] 갈바람 광시곡(33)
[강준 장편 연재] 갈바람 광시곡(32) [강준 장편 연재] 갈바람 광시곡(31)
[강준 장편 연재] 갈바람 광시곡(30) [강준 장편 연재] 갈바람 광시곡(29)
  • 글자크기
  • 글자크기
  • 홈
  • 메일
  • 스크랩
  • 프린트
  • 리스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밴드
  • 구글

의견 작성 0 / 1000자

댓글쓰기
  • 등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