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희식의 하루를 시작하며] 만추(晩秋)의 단상

[부희식의 하루를 시작하며] 만추(晩秋)의 단상
  • 입력 : 2019. 11.13(수) 00:00
  • 김도영 기자 doyoung@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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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간만에 지기지우(知己之友)와 함께 탐라 계곡으로 가는 산행에 나섰다. 좁다란 하천길에는 낙엽이 널브러지게 쌓여 있어 걷는 걸음마다 가볍고 상쾌하다. 땅위에 구르는 낙엽들은 뿌리로 돌아가려고 마지막 숨을 고르고 있는듯 하다. 관음사에서 들려오는 목탁 소리는 연신 나무가지에 부딪쳐 빗물인양 계속 쏟아지고 있다. 저만치에선 장끼 한 마리가 푸드득 적막을 흔들며 날아 오른다. 불현듯 철따라 형형색색으로 바뀌고 청정한 4면의 바다와 푸른 산, 아열대에서 한대의 식물까지 서식하는 한라산 식물원, 해양어족 자원과 까맣게 그을린 현무암석, 제주만의 특색을 지닌 문화와 역사 등 천혜의 아름다운 이곳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감사하고 가슴이 설렌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마음의 편한 구석이 한 군데도 없는듯 하다. 오늘을 사는 민초들은 인생에 대한 관심과 식견이 높다는 평을 듣는 것을 보면 상호 이해하며 더불어 사는 삶의 지혜를 모아야 한다. 민초들은 합리적인 눈, 생산적인 눈, 미래지향적인 눈을 견지하고 있어 정공법에 의한 대도정치, 대인정치, 대국정치를 펼쳐야 한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양심이란게 있다. 양심이 무너지면 죄의식이, 죄의식이 없어지면 수치심이, 수치심이 없어지면 염치가, 염치가 없어지면 체면이, 체면이 없어지면 그 사람은 이미 사람이 아니다. 체면이 없는 사람은 규범을 모르고, 규범을 모르는 사람은 도덕과 기본 예의와 기초 질서를 모른다. 지금 우리의 심성이 어느 지경에까지 무너졌는지 스스로 진단해 봐야 한다. 우리 가슴 속에는 세 가지의 목소리가 숨어 있다. 첫째는 성현의 목소리요, 둘째는 이기적인 인간의 목소리요, 세번째는 악마의 목소리다. 이 세가지 목소리가 양심의 힘으로 항상 잘 조율이 돼 나온다. 그러나 양심이 죽으면 악마의 소리가 인간을 지배하게 된다.

우리에게 가장 시급한 과제는 죽어가는 양심을 살려내는 일이다. 양심이 건강하게 회복되면 죄의식, 수치심, 도덕심, 규범, 기본 예의, 기초 질서 등 모든 질서가 되살아난다. 양심 회복은 어떻게 할 것인가. 그것은 오로지 그 사람의 마음에 달려있다. 양심의 모습은 정직이다. 정직성이 없는 우정은 거짓이다. 정직하지 못한 인격은 믿을 수가 없다. 정직하지 못한 상품은 사기다. 정직하지 못한 신앙은 진실한 신앙이 아니다. 정직하지 못한 토목공사는 이내 붕괴되고 만다. 정직하지 못한 사랑은 가짜 사랑이다. 정직하지 못한 대화는 말장난 뿐이다. 정직하지 못한 인간관계는 오래 가지 못한다. 정직하지 못하면 절대 좋은 물건을 만들 수 없다. 정직하지 못한 교육은 참 인간을 길러낼 수가 없다. 정직하지 못한 정치는 이내 국민들로부터 버림을 받는다. 정직하지 못한 작가는 아름다운 예술 작품을 창작할 수가 없다.

양심의 참된 모습은 성실이다. 자사(子思)의 중용(中庸)에는 불성무물(不誠無物)이란 말이 있다. 매사에 성실성이 없으면 제대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는 뜻이다. 성실성이 있으면 모든 것을 이뤄낼 수 있다.

내년에 이곳 한라산 기슭에도 따뜻한 해연풍이 불어오기를 기대해 본다. <부희식 제주교육사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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