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경자의 하루를 시작하며] 갈등

[허경자의 하루를 시작하며] 갈등
  • 입력 : 2019. 11.20(수) 00:00
  • 김도영 기자 doyoung@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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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늘해진 날씨 만큼이나 요즘의 경제상황은 냉랭하다. 장기간 지속되는 미중무역갈등이나 한일경제보복분쟁 같은 국내외적 이슈는 차제하더라도 언론마다 쏟아내는 부정적 경제전망들로 인해 향후 제주경제에 대한 도민들의 걱정과 우려가 점점 깊어만 간다.

내가 근무하는 회사도 예외는 아니다. 전기, 소방, 통신분야 설계 감리 등의 엔지니어링이 주업종이다보니 건설경기의 위축에 일거리가 확연히 줄었다. 그동안 제주에서 추진되던 헬스케어단지 신화역사공원 등 대규모 사업이 수년째 중단중이고 신규 프로젝트 역시 땅값 상승과 인허가의 난제로 추진이 불투명해지고 있다. 언제쯤이면 경기가 풀릴 것인가. 이는 기업뿐 아니라 농어업에 종사하는 모든 이들의 걱정이고 바람이 돼 버렸다. 유례없던 건설 호경기와 이주열풍으로 최고의 전성기를 보냈던 제주도, 그로인해 도민들의 경제체감온도는 더더욱 낮을 수밖에 없는지 모른다.

이런 복잡함 속에서 나는 속없는 일일지도 모르는 행사를 가졌다. 주5일제로 생성된 이틀간의 휴무와 하계 집중휴가 성과자에 대해 포상을 위한 사진콘테스트를 개최한 것이다. 혹자는 휴가를 가는데 무슨 성과냐 라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열심히 일한자여 떠나라'에 설레였던 우리가 아니던가. 직원들에게 '신나게 노는 자여 일도 잘 한다'라는 또한번의 설렘을 전하고 싶어 오래전에 시작한 이벤트다. 재미있고 활기차게, 건강하고 행복하게 잘 놀다온 인증샷을 모아 임직원이 감상하고 포상하는 한 시간의 만남, 우리는 지나간 휴가의 아쉬움보다도 앞으로 다가올 휴가를 고대하는 훈훈함으로 희망의 싹을 틔워냈다.

오래전 경영책임을 맡으며 그저 어머니 마음으로 시작했던 시시콜콜한 일들, 나는 그들로 인해 가족친화기업이라는 선물도 받았고 분에 넘치는 칭찬도 들었다. 하지만 영리추구가 우선인 기업에서 업무이외의 여러 이벤트를 지속적으로 실현한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회사가 자진해서 휴가 계획을 받고, 맘편히 쉬도록 업무적 배려도 해야 한다. 휴가사진도 접수해 심사하고 모두가 감상할 수 있는 자료를 만들어 행사기획도 세워야 했다. 게다가 직원들 대부분이 남성 엔지니어인 회사에서 스스로 휴가사진 올리기를 바란다는 것은 매우 어색하고 낯선 문화였었다.

올해는 유달리 내 고민이 많았다. 경기침체의 중압감과 빈약한 매출을 목전에 두고서 직원들을 쫓아다니며 사진콘테스트에 참여하라 권유하는 것이 정말 잘하는 일인지, 매출감소 등의 위기극복 방안을 내보라 하는 것이 맞는 것은 아닌지 나는 답을 찾지 못하고 헤맸다. 그러나 심사를 진행하면서 처갓집을 방문하고, 아이들을 보살피고, 홀로 여행을 떠났던 직원들의 사진첩 모습에 어느새 나는 행복을 느끼고 있었다. 앞이 보이지도 않는 경제난국이라는데 사장이라는 사람이 이래도 되는 건가 내 스스로 경계심도 가져봤지만 사진 속 그들은 연실 나를 보며 웃었고 나는 어느새 그들의 미소로부터 힘을 얻고 있었던 것이다.

'작은 것을 아껴 큰 것을 이루자, 배움에 투자해 사람을 키우자, 보이지 않는 공익을 꾸준히 실천하자'. 기술자도 아닌 사람이 엔지니어링회사에 들어오면서 가졌던 각오, 그렇게 임해보자 내가 할 수 있는 그때까지. 스치는 갈바람이 싸늘했지만 나는 훈훈한 11월 속에 있었다. <허경자 ㈜대경엔지니어링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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