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윤의 목요담론] 근원과 바탕 살피기, 찰기시(察其始)

[김태윤의 목요담론] 근원과 바탕 살피기, 찰기시(察其始)
  • 입력 : 2019. 12.12(목) 00:00
  • 김도영 기자 doyoung@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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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원이나 본래의 바탕을 자세히 살피는 것을 찰기시(察其始)라 한다. 장자의 아내가 죽었을 때 혜자가 문상을 갔다. 슬퍼하며 곡하고 있어야 할 장자가 그릇을 두들기며 노래 부르고 있었다(鼓盆而歌). 혜자가 장자에게 무정한 사람이라고 핀잔을 주니 장자가 말했다. 사랑하는 아내가 죽었는데 왜 슬프지 아니 하겠는가, 하지만 그 근원을 살펴보니(察其始), 아내가 세상에 오기 전에 있었던 본래의 곳으로 돌아갔으니, 너무 기뻐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고 했다.

자극과 반응 사이에는 시간적·심리적 공간이 있다. 그 공간은 사람마다 크기가 다르다. 자기 생각대로 반응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타인의 생각을 그대로 반응하는 사람도 있다. 어떤 자극에도 반응하지 않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사소한 자극에 즉각 반응하는 사람도 있다. 자동차를 운전하는 사람들이 하루에도 몇 번씩 경험하는 일이다. 자극에 대한 반응은 각자가 선택한 결과이다. 그 선택이 자신의 감정이나 행복, 그리고 성장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자극이 일어날 때, 자신의 심리 상태가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이목을 의식할 때 반응 정도가 다르게 나타난다. 동일한 자극에 똑같은 반응을 반복하고 있다면, 그 공간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다. 더 이상 마음의 성장이 없는 멈춘 상태이다.

자극에 대해 어떻게 반응하는지 살펴보기 시작했다. 자극과 반응 사이의 그 공간에서 무엇을 어떻게, 그리고 왜 그렇게 선택하는지, 그 근원을 깊이 들여다보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 왜냐하면, 세월을 더할수록 나의 마음도 그만큼 자라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가령, 화가 났을 때에 가슴이나 얼굴에 이상 현상이 나타날 때가 많았다. 평상시 보다 심박동이 빨라지고, 얼굴이 화끈거리며 붉어지게 된다. 과거에는 분한 마음을 달래기에 급했다. 스스로 분을 삭이지 못하면 타인에게 얘기하며 잊으려고도 했었다. 이제는 그 분한 마음의 근원이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는지 깊이 들여다보게 된다. 과거에는 타인이나 환경요인 때문이라 탓하며 이유와 변명을 밖에서 찾으려고 애썼다.

지금은 내 마음 속에서 무엇 때문에 시작되며, 무슨 요인이 이를 증폭시키며, 자신과 주변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게 될지를 추적하며 반응하게 된다. 전에는 미리 정한 원칙과 기준에 맞춰 구분하고 판단하기 일쑤였다. 이제는 고정된 원칙과 기준을 고집하지 않으며, 오히려 내 안에 있는 모순까지 찰기시하며 관리하게 된다.

마음의 평정을 유지함으로써 자기편의적, 자기중심적으로 해석하지 않으려 한다. 처음에는 결코 쉽지 않은 일들이었다. 지금은 자극이 일어날 때마다 반응에 앞서 나의 마음 바탕을 살피며, 조절하는 힘을 키워가고 있다. 그만큼 자극과 반응사이의 공간에서 여유마저 즐기게 된다.

물에 빠진 사람이 사납게 출렁이는 강물을 바라볼 수 있다면, 그는 이미 강물의 위험에서 벗어난 상태라고 한다. 자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그 시종(始終)을 깊이 살피며 선택할 수 있다면 결코 감정에 휘둘리지도 않으며, 후회하는 일도 하지 않게 된다. <김태윤 제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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