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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관후 작가의 시(詩)로 읽는 4·3] (43)낭그늘, 둥글게 말아-자리왓에서(김병심)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입력 : 2020. 01.23.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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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먼저 떠난 어미처럼

4·3난리통, 땅바닥 떨어진 마을 포대기에 들쳐 업고

아직 안 끝나신가 마을 밖 기울 거리던 팽나무



강씨, 문씨 집성촌이

나뭇가지 잘라 지팡이 선물한 오랜 친구 왕 할아버지 서당까지도

양배추 밭으로 청보리 밭으로 갈아엎어졌어



어디선가 몹쓸 바람이 분 거여

난리가 다시 처진 모양이여



인기척 끊긴 마을

산담 너머 더욱 숨죽이는 목소리

누가 들을까 나지막이 엎드린 봉분들



자식새끼마저 깃들지 않는 올레가 무슨 소용이냐

자리왓 마지막 생존자

어머니 따라 서둘러 떠난 길

붉디붉은 땡볕 황토길

배웅 나온 팽나무

두 손 둥글게 말아 아버지 머리에 월계관 씌워 주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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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왓은 애월읍 어도2구의 자연마을이다. 남평문씨 일가가 집성촌을 이루어 살기 시작한 이래 30여 가호(家戶)에 150여 주민들이 살던 전형적인 중산간 마을이었다. 마을 가운데 신명서당이 있어 글 읽는 소리가 끊이질 않았고, 뛰어난 인재가 많이 배출되었다. 어도2구는 열루왓, 자리왓, 고도리왓, 몰팟, 상수모를, 화전동의 7개 자연마을로 형성되었다. 마을 촌장들이 자리왓 팽나무 아래 모여서 대소사(大小事)를 의논하며 살던 마을이었다.

1948년 11월 23일~25일 3일간 소개하라는 명령이 내려졌다. 초토화 작전으로 마을은 폐허로 변했다. 주민들은 마을이 재건된 후에도 어도1구에 대다수가 새로운 보금자리를 마련해 자리왓은 현재 '잃어버린 마을'로 남아있다. 당시 지리왓 중심지였던 왕돌 거리에는 큰 팽나무가 남아있고, 곳곳에 좁고 구불구불한 올레터와 집터 흔적임을 말해주는 대밭들이 남았다. 주민들은 봉성리 입구 신명동에 터를 잡아 살기 시작한 후 자리왓 등으로 전혀 돌아오지 않았다. 애월농협 봉성지점에서 한라산 방향으로 들어서면 갈림길이 나오고, 남서쪽 방향으로 올라가면 팽나무가 있는 왕동거리가 나타난다.

(김관후 작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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